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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선 “퍽유” 온라인에선 “죽이겠다” 혐오에 멍드는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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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선 “퍽유” 온라인에선 “죽이겠다” 혐오에 멍드는 난민

입력
2018.12.31 04:40
수정
2018.12.31 14:5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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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난민 인정자ㆍ신청자들이 받고 있는 혐오 메시지. 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난민 인정자ㆍ신청자들이 받고 있는 혐오 메시지. 김경진 기자

“웨얼아유프롬(Where are you from)?”

난민 신청자 나데르(32ㆍ가명)씨는 몇 달 전 당했던 봉변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한창 날이 덥던 7월 중순 경기 안성시의 한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 있던 중년 남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온 것. 다른 사람에게 하는 얘기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남성은 ‘어디에서 왔냐고 묻잖아’라며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 그에게 다가왔다.

남성은 애초 나데르씨의 대답이 궁금한 게 아니었다. 출신국가를 말했지만, 그 다음에 돌아온 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시비. “당신에게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러냐,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응대에는 “퍽유(Fuck you)” “셧업(Shut up)” 등 영어 반, 한국어 반이 뒤섞인 욕설이 날아왔다.

소란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됐다. 참다 못한 나데르씨가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찍으려 하자 남성은 휴대폰과 손으로 그를 몇 차례 내리쳤고, 주변에 있는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 앞에서도 악다구니를 멈추지 않았다.

‘난민 혐오’ 정서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은 채 난무하고 있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이후 각종 가짜뉴스가 확산되면서, 난민 인정자와 신청자 가릴 것 없이 ‘낯선 이국인’을 향한 상스런 말과 행동이 거세지고 있는 것.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이 심각해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의 난민 혐오는 심각한 수준이다. 포털 기사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 등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은 물론이고 당사자에게도 직접 혐오 발언 메시지가 전해진다. 시리아 난민을 돕고 있는 ‘헬프 시리아’의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10월 본인을 ‘대한애국당 소속 청년’으로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야 시리아인 뒤질 준비해라’ ‘조선반도에서 나가라. 안 그러면 너를 죽이고 이슬람사원 폭파시키겠다’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수 차례 받았다고 했다. 이 남성은 모두가 볼 수 있는 SNS 게시물 댓글 창에서도 ‘한국에서 꺼지지 않으면 패러 가겠다’라는 협박을 일삼았다. 와합 사무국장은 “이런 말을 메시지, 이메일, 전화를 통해 자주 받는다”라며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오프라인이라고 다를 건 없다. 뜬금 없이 시비를 거는가 하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 난민인권운동가는 “어떤 시리아 난민은 제주 예멘 사태가 터진 뒤 평소 자주 다니던 가게 주인으로부터 갑작스레 ‘앞으로는 안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또 제주 거주 중인 예멘인들은 어딜 가나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고, ‘예멘’이라고 답하면 욕설과 함께 ‘돌아가라’라는 말을 듣는 상황.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아랍권 학생들이 아랍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그걸 듣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 당사자들은 올해 9월과 10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내 인권단체들 주최로 진행된 난민환영행사 이후 혐오 현상이 더욱 극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무대 위에서 발언한 몇몇 국내 거주 난민의 신원이 노출됐기 때문.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페이스북으로 욕설과 협박 메시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라며 “난민을 ‘밟아야 하는 벌레’에 비유하고, ‘너의 갓난 아기를 죽이겠다’ ‘너의 목을 딸 때까지 쫓아가겠다’ 등 협박이 이어져 난민 당사자들이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인권단체들이 적극 대응에 나섰다. 난민인권센터는 지난달 2일 난민혐오범죄대응단을 꾸리고 난민들로부터 혐오 범죄 신고를 받고 있다. 난민인권센터 관계자는 “혐오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는 국제법상 명백한 반인륜적 혐오 범죄에 해당할 뿐 아니라 현행법상 모욕죄, 명예훼손죄, 사생활침해죄, 공갈 및 협박죄 등에 해당한다”라며 “난민혐오범죄대응단은 이에 상응하는 법적 대응을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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