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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가 기다려” 읍소 통했나… 이례적 영장 기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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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가 기다려” 읍소 통했나… 이례적 영장 기각 사유

입력
2018.12.08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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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대 ‘의문이망’ 언급… 고영한 “난 지시 관계에서 패싱”… 법원 ‘셀프 심사’ 한계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법조계에선 이례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에 치중한 ‘셀프 심사’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박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임민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고 전 대법관의 영장심사를 맡은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일 새벽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두 전직 대법관들의 영장을 기각했다. 두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에 있어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고 △주거지 압수수색 등을 통해 이미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진 만큼 구속사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고영한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고영한 기자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고영한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고영한 기자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두 전직 대법관들의 읍소가 영장전담 부장판사들에게 통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 전 대법관은 전날 영장심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관계에서 난 패싱(passingㆍ열외 취급)된 것 같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을 통하지 않고 임 전 차장에게 곧바로 지시를 했다는 취지다. 고 전 대법관은 또 “난 청와대를 상대로 한 재판거래 혐의가 없다”라며 다른 피의자들과 달리 자발적이거나 주도적으로 사법행정권을 남용하지 않았다는데 초점을 맞춰 변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고 전 대법관은 부사 법조비리 은폐 의혹 사건 개입 의혹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인정했다고 한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박병대(가운데)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박병대(가운데)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박 전 대법관은 기본적으로 혐의를 적극 부인하는 한편, 인정에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법관은 재판개입 혐의에 대해 심의관들은 보조자라 권한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은 행정처 의견을 포함해 모든 자료를 검토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재판개입 자체도 부정했다. 그는 또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각에는 어머니가 문에 기대서서 아들이 돌아오길 바란다’는 뜻의 고사성어 ‘의문이망(倚門而望)’을 언급하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에 임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 중 하나로 이례적으로 ‘가족관계’를 넣었다. 박 전 대법관이 “선배라는 인식을 떨치고 법에 따라 판단해주기 바란다”고 한 부분은 오히려 ‘전관예우’를 암시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법원의 ‘방탄’ 기각에 법조계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이미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여러 차례 포착됐는데도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기각 사유에 굳이 가족관계까지 넣은 건 기각을 위해 유리한 정황을 일부러 찾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성명서를 내고 “사법농단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이 불구속 상태에 있고, (다른 피의자들의) 진술이 오염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영장 기각은 추가적인 증거인멸을 방조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 꼬집었다.

다만 일각에선 ‘영장기각=무죄’가 아님에도 여론이 지나치게 구속 여부에 집착하고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죄가 있는 것과 구속 사유를 충족하는 것은 별개”라며 “영장을 기각했다고 해서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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