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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관, 작가, 챔피언으로... '조연→주연'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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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관, 작가, 챔피언으로... '조연→주연' 날아오르다

입력
2018.11.10 09:00
수정
2018.11.10 10:0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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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능직→수사관 변신 임은정씨 

 법전 주경야독, 수사관 시험 통과… 강력사건서 실력 발휘 

 

 # 교열자→작가 활약 김정선씨 

 20년 넘게 원고 다듬은 베테랑 ‘내 문장이…’ 등 6만부 불티 

 

 # 캐디→챔피언 등극 전가람씨 

 고 3때 가세 기울며 선수 중단… 캐디 일하다 프로 도전ㆍ우승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수사관은 피의자를 조사할 때 먼저 그의 인생을 듣는다. '나쁜 상황에 내몰린 저마다의 이유'에 귀 기울이다 보면 조사가 훨씬 수월하다. 20여 년의 검찰 실무관 경력에 연륜이 더해져 얻은 수사비법이다. 서재훈 기자.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수사관은 피의자를 조사할 때 먼저 그의 인생을 듣는다. '나쁜 상황에 내몰린 저마다의 이유'에 귀 기울이다 보면 조사가 훨씬 수월하다. 20여 년의 검찰 실무관 경력에 연륜이 더해져 얻은 수사비법이다. 서재훈 기자.

돋보이지 않지만, 없으면 그 빈 자리가 허전한 사람이 있다. 맛깔스러운 연기력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조연, 합창에서 멜로디를 탄탄하게 떠받쳐 화음을 만드는 알토와 테너, 베이스가 그렇다.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조연은 언제 주연을 맡겨도 멋지게 제 역할을 해낸다. 오랜 기간 다진 내공 덕분이다. 그러다 한 발 앞으로 옮겨 직접 주연의 자리에 우뚝 서는 조연 혹은 조력자의 반란이 곳곳에서 화려하게 벌어진다.

임은정(49)씨는 1990년 검찰청 기능직 10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이후 24년간 검찰에서 담당한 일은 각종 업무 보조 역할이 대부분이었지만 사람 상대하는 일에 능숙했던 터라 피의자와 자주 부딪히는 초임 수사관을 보며 ‘나도 수사관 업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검찰 일선 수사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수사관으로의 전직. 조력자로 살아온 세월을 단숨에 뒤집어버릴 그의 꿈은 그러나 육아에 막혀 접어둬야 했다. 2012년 말. 고등학생으로 자란 아이들과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마침내 주연으로의 변신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국가공무원법 개정으로 직급이 통폐합되면서 시험을 통과하면 수사관으로 전직할 수 있게 되자 용기를 냈다. 시험 과목이 정해지기도 전 임씨는 장편소설 보듯이 법서를 읽어나갔다. 출ㆍ퇴근길은 물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면서도 온라인 강의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주말엔 대입 공부를 하는 아이들과 함께 독서실로 향했다. 형법과 형사소송법, 행정법을 4~9회독했고, 변호사시험 실기문제집으로 실전에 대비했다. 2014년 처음 실행된 검찰 기능직 공무원의 수사관 전직 시험에서 유일한 7급 합격자로 이름을 올린 그는 2018년 현재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검의 임은정 수사관이다.

서울 도봉구 북부지검 청사에서 최근 만난 임 수사관(7급 검찰주사보)은 짧은 수사관 경력(4년)에도 불구하고 강력범죄를 전담하는 수석검사실에서 일하고 있다. 검찰청에서 28년7개월 근무한 베테랑답게 발군의 실력을 보이며 주요 부서에 4년째 머물고 있는 것이다.

“실무관 업무와 차이가 있다면 직접 사건 속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옆에서 그 업무를 돕느냐 하는 거예요. 저는 피의자에게 소환 통보를 하고 조사할 때 머뭇거리지 않아요. 절차는 이미 알고 있으니 곧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실무관 시절 단순히 지시에 따라 수사기록을 입력하고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찰사건사무규칙을 찾아 확인하면서 일하던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굵직한 강력사건을 다수 맡았다. 중학생 딸의 친구를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과 수락산 등산객 살인사건, 오패산 사제총기 경찰관 살인사건 등을 직접 수사했다. 2016년 법무부장관 표창(인권수사관상)과 검찰총장 표창(강력업무 유공)을 받았다. 대검찰청 강력전담 우수 수사관 및 서울북부지검 각 형사부 우수 수사관으로도 선정됐다.

임 수사관(7급 검찰주사보)은 짧은 수사관 경력(4년)에도 불구하고 강력범죄를 전담하는 수석검사실에서 일하고 있다. “실무관 업무와 차이가 있다면 직접 사건 속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옆에서 그 업무를 돕느냐 하는 거예요. 실무관 시절 단순히 지시에 따라 수사기록을 입력하고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찰사건사무규칙을 찾아 확인하면서 일하던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서재훈 기자
임 수사관(7급 검찰주사보)은 짧은 수사관 경력(4년)에도 불구하고 강력범죄를 전담하는 수석검사실에서 일하고 있다. “실무관 업무와 차이가 있다면 직접 사건 속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옆에서 그 업무를 돕느냐 하는 거예요. 실무관 시절 단순히 지시에 따라 수사기록을 입력하고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찰사건사무규칙을 찾아 확인하면서 일하던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서재훈 기자

세월이 안겨 준 연륜도 ‘완벽한 주연’으로 변신하는 데 한몫했다. 늦깎이 수사관인 그는 변사체 검시를 하거나 강력범죄 피의자를 조사할 때 긴장하지 않는다. “죽임을 당한 피해자의 사체를 바라보면 가슴이 저며 와요. 마지막 순간 입었던 옷이나 주변 상황을 보면 자신의 죽음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살아 있고 수사관이니까 철저히 수사해서 저분의 억울함을 풀어줘야겠다고 다짐하죠.”

절차상 의무가 아닌 피해자 유족 조사를 고집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의 억울함과 상처를 기록에 담아 법정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죽을 때까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유족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기록에 담아주고 싶었습니다.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어요. 고인(故人)이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던 사람이고 그가 살아남았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을 테니까요.”

1일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검 청사에서 만난 임은정 수사관은 “명함만 바뀌었을 뿐 검찰 구성원으로서 사회를 밝히는 일을 한다는 점은 똑같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1일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검 청사에서 만난 임은정 수사관은 “명함만 바뀌었을 뿐 검찰 구성원으로서 사회를 밝히는 일을 한다는 점은 똑같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조력자에서 주연으로 변신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임 수사관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올 초 고려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하며 주경야독을 다시 시작했다. “피의자들이 범행에 이르기 전 적절한 보살핌이나 치료를 받았더라면 현재의 범행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린 피의자를 조사할 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첫째는 피의자 본인을 위해서고 더불어 잠재적 피해자인 우리가 아픔을 겪지 않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문성 갖춘 직원, 로스쿨 도전까지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밥상’을 차려놓는 숨은 조력자들은 로펌에도 포진해있다. 법정 드라마 ‘슈츠’에 등장하는 로펌 법률사무보조원(paralegal)처럼 깔끔한 업무처리 능력에 해박한 법지식을 갖춘 직원은 현실에도 존재한다. 정확하고 능률적으로 일하면서 눈치가 빠르고 사내 인간관계까지 두루 잘 대처하는 전문비서는 방대한 업무 속 촌각을 다투는 변호사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국내 한 대형로펌의 채용담당자는 “지원자들 스펙은 학점이 4.0에 근접하고 토익(TOEIC)은 930점 이상”이라며 “변호사들이 갖춘 리걸마인드(legal mind)와 전문성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절차적인 부분을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전문 비서들이 있다”고 전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일 잘 하는 비서들의 존재감이 묵직해지면서 슬슬 내공이 탄탄한 조력자들의 반발(?)도 일어난다. 과거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호칭이 하대라도 받는 듯 불편하게 느껴지고, ‘이제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하겠다’ 마음 먹는 것이다. 이 담당자는 “로펌에서 3~4년 정도 일한 뒤 다른 일을 해보고 싶거나 로스쿨 진학을 고려하며 퇴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수완 좋은 비서를 법률사무보조원(paralegal)으로 전환해 전문연구원 대우를 하는 로펌도 있다. 직원은 전문성을 인정받아 좋고, 로펌은 전문성 쌓인 직원이 빠져나가 발생할 손실을 막으니 좋다.

비교적 규모가 작고 관료화되지 않은 부티크 법률사무소(Boutique Law firmㆍ전문화된 소형 로펌)에서는 변호사와 직원이 상호 존중하며 호칭에 가로 막혔던 장벽을 해소하고 있다. 이상민 헬프미 변호사는 “직원 실력이 출중한데 장교와 부사관처럼 ‘변호사님’ ‘OO씨’라 부르는 대신 호칭을 ‘OO님’으로 통일했다. 스타트업이나 IT기업에선 흔한 일이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카페에서 만난 김정선씨는 “출판사 안팎에 마땅한 재교육 시스템이 없다 보니, 두루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간 제안에 응했는데 의외로 많은 독자가 찾아 읽어 주신 것뿐”이라며 “가끔은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다”고 몸을 낮췄다. 김혜영 기자
서울 마포구 카페에서 만난 김정선씨는 “출판사 안팎에 마땅한 재교육 시스템이 없다 보니, 두루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간 제안에 응했는데 의외로 많은 독자가 찾아 읽어 주신 것뿐”이라며 “가끔은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다”고 몸을 낮췄다. 김혜영 기자

 ◇출판계 숨은 실력자, 작가가 된 교열자 

최근 숨은 실력자의 내공이 빛나는 또 다른 분야는 출판계다. 편집자, 교열자의 글이 책으로 잇달아 출간돼 사랑받는다. ‘마녀체력’(남해의 봄날), ‘천년의 내공’(청림출판), ‘이번 달만 버텨 봅시다’(마음의 숲),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스윙밴드)의 저자가 모두 원고 좀 만지던 편집자 출신이다.

이 중 독자와 출판계의 눈길을 동시에 붙든 작가는 단연 김정선(52)씨다. 그는 20년 넘게 작가, 번역가의 원고를 다듬은 교정 교열 전문가다. 1993년 잡지사 ‘한국인’ 편집부에서 일을 시작했고, 2000년부터는 외주 교정자로 문학과지성사, 생각의 나무 등과 일했다.

그의 표현대로 교정자는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이다. 그러면서도 “흔적이 남지 않게” 일한다. 서가에 오를 책과 저자를 빛내는 묵묵한 조력자다.

그가 펴낸 책이 누적 6만부나 팔렸다. 2016년 나온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유유)다. 유명 저자를 모셔 와도 1만부를 찍기 어렵다는 최근 출판계에선 ‘사건’이다. 그 자신은 작가라는 호명에 손사래를 쳤지만, 조성웅 유유 출판사 대표는 “(출판계 불황을 생각하면) 예전 30만~40만부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편집자, 교정자, 기자처럼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책이 이렇게 많이 읽히니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편집, 인쇄, 디자인, 제본은 모두 일의 흔적이 남지만 교정 교열은 아니잖아요. 협회나 교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에 재교육 시스템이 부족해 편집자끼리 남아 세미나를 한다는 말도 들었고요. 안구건조증이 심해 잠시 일을 쉴 때, 처음 책 출간 제안을 받았어요. 혹시 일을 아예 그만두게 되더라도, 내가 일한 흔적을 남기면 다른 분이 참고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나온 처음 책은 2015년 출간 ‘동사의 맛’(유유)이다. 1만부가 읽혔다. 우리말 동사의 활용법을 다루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소설 같은 이야기 형식을 취했다. 그는 “글쓰기를 다루면서 정작 책은 재미없거나 베끼고 싶은 문장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도 문제라는 생각에 이도 저도 아닌 책을 써 버렸다“라며 몸을 낮췄다.

문장 다듬기를 본격 고민해 2016년 1월 내놓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도 비슷한 형식이다. 윤문 원칙을 다루되 에세이, 소설처럼 읽히는 글이 번갈아 나온다. 주인공과 이야기를 따라가면, ‘확신의 편에 서 있는 저자와 달리, 의심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교정자’의 직업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또 그가 각 원고와 문장을 얼마나 섬세한 자세로 마주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문장 다듬기에 정해진 답이나 법칙은 없어요. 모든 문장은 보기에 따라 이상하죠. 교정자는 단지 편집자를 도와 일반 독자 평균을 대표해 원고를 처음 읽는 사람이에요.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2017년 12월에는 인상 깊은 첫 문장과 단상을 다룬 ‘소설의 첫 문장’(유유)이, 올해 10월에는 리뷰 소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포도밭)가 출간됐다. 모두 작정하고 썼다기보다는 “깊은 우울에 빠졌을 때 써둔 글의 일부”라고 했다. 그는 “교정지를 몇 번씩 들여다보면서도 나온 책에 대한 개인적 애정은 주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며 나름의 스트레스를 받던 시간이 있었다”며 “일종의 출구로 내 독서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책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는 우울할 때 마다 도서관 구석자리에서, 24시 카페에서 꺼내든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리뷰를 소설 형식으로 풀었다. 각 문단 앞머리에 번호를 매긴 점이 독특하다.

“깊은 우울 속에서 자맥질할 때는 의미의 원근감이 사라지더라고요. 일의 경중 부여가 안 되고요. 빠져나올 유일한 방법으로 번호를 매겨 글을 쓰고 나열했어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갈 수도 있지만, 용의자로 내 삶이 지목당하면 개운치 않잖아요. 배운 것, 아는 것을 다 소환해 우울을 통과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는 “또 이상한 책을 내놓았다”며 “그냥 따라 읽다 보니 위안받게 되는 책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향후 집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교정 교열은 여건이 허락될 때까지 계속 하고 싶은데, 책 쓰는 건 잘 모르겠어요. 지금으로선 계획이 없고,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책을 또 낸다면 독립출판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해요. 제가 처음 일 배웠을 때처럼 수작업으로 제본까지 다 해 보면 어떨까 싶지만 인쇄 해줄 곳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캐디에서 챔피언으로 

빼어난 실력자가 잠시 조력자가 돼 아마추어를 빛나게 하는 일도 있다. 자신이 캐디로 일했던 골프장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쥐며 반전드라마를 써낸 전가람(23ㆍ연천군ㆍ탑앤탑골프)씨 이야기다.

전가람이 22일 경기 포천 대유 몽베르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개막전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 최종 라운드 3번홀에서 세컨 아이언샷을 하고 있다. KPGA 제공
전가람이 22일 경기 포천 대유 몽베르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개막전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 최종 라운드 3번홀에서 세컨 아이언샷을 하고 있다. KPGA 제공

전가람은 선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활동적인 성격인 그에게 정적이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골프는 그리 매력적인 스포츠가 아니었다. “골프가 싫다”는 말을 습관처럼 뱉었다. 연습을 게을리해도 어찌 된 일인지 시합 성적은 좋았다. 전씨 아버지가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골프를 시킨 이유다.

그러나 여느 프로들처럼 순탄하게 엘리트코스를 밟진 못했다. 경기일정 중 전화로 만난 전씨는 어린 나이에 인생의 굴곡을 겪은 탓인지 20대 초반답지 않게 달관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었어요. 가족들이 흩어져 살게 됐고 골프를 하기 어려워졌죠. 당장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치킨배달을 하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면 더 나은 수입을 기대할 수 있지만 선수였던 그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전씨는 “현실적으로 더 이상 골프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내 길이 아니다’ 라는 생각에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회상했다. 입대하기 전 돈 좀 모을 요량으로 골프장을 찾았다. 2015년 3월, 선수가 아닌 조력자 생활이 시작됐다.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출근했어요. 오르막 내리막 언덕을 20㎞씩 걷거나 뛰어다니며 12시간씩 일했죠. 퇴근 후 오후 8시 숙소에 들어가 씻고 저녁 식사를 하면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프로 선수들의 경기 속 전문 캐디의 역할과는 전혀 다르다. 전문 캐디는 선수 1명을 돕지만, 전씨는 손님 4명씩을 전담했다. 6시간 동안 골프채를 챙기고 공이 날아간 거리를 불러주려니 쉴 틈이 없다. 경기 진행이 더딜 땐 손님들에게 한두 마디 코치를 해줬다. 선수 출신인 전씨의 조언은 빛났다. 공이 잘 맞으니 진행도 빨랐다.

그가 고단한 조력자의 삶을 버틴 건 일당 때문이다. 6시간 동안 18홀을 돌면 12만원을 손에 쥐었다. 무리해 두 바퀴를 돌면 하루 일당으로 25만원을 벌었다. 한 달에 4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아마추어들을 위한 조력자로 몸을 낮춘 동안, 가슴 한 편에 열정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가끔 선수들이 경기하는 걸 보면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들이다’ 하고 넘겼지만,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캐디를 그만두고 시드전에 출전했습니다.”

그렇게 파이널라운드까지 가뿐히 마무리 지으며 같은 해 11월 퀄리파잉스쿨 61위로 투어 선수가 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올해 4월에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2018 시즌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 개막전에서 생애 첫 우승을 일궈냈다. 다름 아닌 자신이 캐디로 일했던 경기 포천 대유 몽베르 컨트리클럽에서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뜻밖의 기회로 반전 드라마를 쓴 것이다.

전가람씨는 스스로 인생이 ‘극적’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캐디백을 멨던 골프장에서 한 ‘마지막 도전’은 전씨를 프로 무대로 이끌었다. 경기 후 기념 촬영한 전가람, 이정환, 권성열, 김우현 선수. KPGA 제공.
전가람씨는 스스로 인생이 ‘극적’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캐디백을 멨던 골프장에서 한 ‘마지막 도전’은 전씨를 프로 무대로 이끌었다. 경기 후 기념 촬영한 전가람, 이정환, 권성열, 김우현 선수. KPGA 제공.

그는 캐디로 일하며 익힌 감각이 도움됐다고 말했다. “경기를 하다 보니 캐디를 하며 200m쯤 앞에 뭐가 있는지, 이 골프장은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잘 알았어요. 너무 잘 알아서 부담도 컸고요.” 챔피언으로 우뚝 선 그는 현실에는 순응하되 젊은이다운 패기는 잃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열심히 해야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고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가는 게 장기적인 꿈입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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