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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은 인생의 전부… 헤어지는 게 아니라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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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은 인생의 전부… 헤어지는 게 아니라 독립”

입력
2018.11.0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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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가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위워크에서 열린 5집 '모노' 음악감상회에서 신작 소개를 하고 있다. 밴드는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12월31일 해체한다. 두루두루AMC 제공
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가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위워크에서 열린 5집 '모노' 음악감상회에서 신작 소개를 하고 있다. 밴드는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12월31일 해체한다. 두루두루AMC 제공

“스물일곱에 시작했어요. 2008년이었죠. 장기하와 얼굴들은 지난 10년 동안 제 인생의 전부였어요. 돌아보면 멋있게 (활동)한 것 같아요.”(장기하)

“한국에서 록밴드로 10년을 했고 이렇게 잘 끝내기도 희박한 확률이라고 봐요. 즐겁게 했어요. 꿈꿨던 것도 이뤘고요. 지난해에 결혼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진 않지만요. 하지만 재미있는 기억을 갖고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것 같네요.”(정중엽)

“영원히 헤어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여섯 명이 10년을 가족처럼 지냈죠. 이제 서로 독립하는 거라 생각해요. “(하세가와 요헤이)

12월 31일을 기점으로 해체를 선언한 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마지막을 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오히려 남은 두 달여의 활동을 더 뜨겁게 기대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1일 5집 ‘모노’를 냈다. 2008년 데뷔한 밴드의 마지막 앨범이다.

밴드의 해체는 신작이 나오기 두 달 전에 결정됐다. 장기하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위워크에서 연 새 앨범 음악감상회에서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앨범을 만들 순 없겠다 싶더라”며 “제 음악적 기준으로 정점일 때 헤어지고 싶었고 밴드 멤버들과 치열하게 논의한 끝에 (해체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음악적으로 자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밴드 특유의 익살은 신작에서 무르익는다. 특히 노랫말에 ‘찰기’가 더해졌다.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타이틀곡 ‘그건 니 생각이고’). 장기하와 얼굴들은 ‘입말’에 더욱 똬리를 튼 가사로 곡에 리듬감을 살렸다. 뿅뿅 거리는 오르간 소리에 실린 밴드의 ‘수다’ 같은 노래엔 묘하게 감칠맛이 돈다.

이 곡의 백미는 따로 있다.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 장기하는 원조 아이돌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히트곡 ‘환상속의 그대’ 일부를 곡에 삽입해 예기치 못한 재미까지 준다. 장기하는 “서태지 선배님 연락처를 수소문해 직접 연락했다”며 “데모(미완성)곡을 들려줬더니 ‘대박’이라고 해 활용하게 됐다”며 웃었다.

밴드의 마지막 앨범엔 여러 동료들이 힘을 보탰다. ‘용서받지 못한 자’ 등으로 유명한 윤종빈 영화 감독은 수록곡 ‘초심’의 뮤직비디오를, 방송인 유병재는 수록곡 ‘거절할 거야’의 뮤직비디오를 각각 찍어줬다. 모두 돈을 받지 않았다고.

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위워크에서 연 5집 '모노' 음악감상회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루두루AMC 제공
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위워크에서 연 5집 '모노' 음악감상회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루두루AMC 제공

마지막 앨범에 ‘초심’을 찾은 장기하와 얼굴들은 끝까지 엉뚱했다. 장기하는 8월 훌쩍 사막으로 떠났다. 새 앨범에 실린 9곡을 관통하는 화두가 ‘혼자’였기 때문이란다. 장기하는 “혼자 극단적인 환경에서 녹음해 보고 싶어” 미국 조슈아 트리 사막으로 향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사막에 도착한 장기하는 사막에 녹음 마이크를 꽂고 노래를 불렀다. 곡 작업을 위해 사막에서 야영도 했다. 고생해 담은 소리는 결국 하나도 쓰지 못했다. 사막에서 돌아오자마자 스튜디오에서 시험 삼아 한 곡을 녹음해보니 사막에서 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서였다. 장기하는 “사막에서 하도 혼자 노래를 많이 하다 보니 노래가 늘더라”며 “앨범에 그 소리를 싣진 못했지만 사막에서 맨살로 맞았던 바람 등 그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앨범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혼자’라는 앨범 화두에 맞춰 앨범 녹음을 ‘모노’로 진행했다. 여러 마이크로 연주 소리를 입체적으로 담는 게 아닌, 하나의 마이크로만 녹음하는 옛 방식이다. 장기하는 “1960년대 초반 모노 방식으로 녹음된 비틀스 1집 LP를 듣고 감동했던 추억이 새 앨범 작업하면서 떠올랐다”며 “직접 해 보니 소리에 군더더기가 없어 마음에 들었고 앨범 제목까지 ‘모노’로 정했다”고 작업 과정을 들려줬다. 예스러운 녹음 방식은 복고풍 멜로디로 빛을 발한다. ‘그건 니 생각이고’를 비롯해 1960~70년대 유행했던 디스코풍 멜로디가 인상적인 ‘거절할 거야’ 등이다.

마지막 앨범에 작별 인사는 빠질 수 없는 법. 수록곡 ‘별거 아니라고’는 밴드가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아름다웠던 사람이 그리운 나의 계절아”. 장기하는 이 곡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08년 ‘싸구려 커피’로 이름을 알린 장기하와 얼굴들은 홍익대 인디 음악신의 신화였다. 해학적인 노랫말과 판소리를 연상케 하는 구수한 멜로디로 대중음악에 새 바람을 불러왔다. 펑크 음악 아니면 ‘홍대 여신 음악’으로만 소비되던 인디신에 대한 편견도 깼다. 특히 우리말을 오선지에 오롯이 옮겨 우리말의 맛을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장기하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썼다는 점”을 지난 10년 밴드 창작의 자부심으로 꼽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12월 29∼31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장기하와얼굴들 마지막 공연-마무리: 별일 없이 산다’로 활동을 끝낸다. 향후 계획에 대해 장기하는 “정말 무(無)에서 시작하고 싶다”며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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