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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지시 반발해 고용부에 진정 냈더니… CCTV 아래 앉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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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지시 반발해 고용부에 진정 냈더니… CCTV 아래 앉게 해”

입력
2018.11.01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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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갑질 119’ 1주년 좌담회 

 업무서 배제하고 따돌리는 등 

 은근히 피 말리는 괴롭힘 늘어 

 녹음파일ㆍ근무기록ㆍ카톡캡처 등 

 최근엔 자료 많이 준비해 제보 

 갑질 근절 가이드라인 만든다더니 

 정부는 아직까지 감감무소식 

 100건 중 1건 지나친 경우 있지만 

 아직은 을질 문제 삼을 단계 아냐 

조윤희(왼쪽부터) 노무사, 이용우 변호사, 오진호 직장갑질 119 총괄스태프가 지난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대회의실에서 인상 깊었던 직장갑질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조윤희(왼쪽부터) 노무사, 이용우 변호사, 오진호 직장갑질 119 총괄스태프가 지난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대회의실에서 인상 깊었던 직장갑질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현실에서 근로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근로계약서 문구처럼 무미건조하고 자유로운 계약 관계가 아닐 때가 많다. 그보다는 수직적인 갑을 관계에 더 가깝다. 이런 사실을 상기시키는 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직장 갑질’ 사건이다. 최근 언론 보도로 폭로된 양진호 회장의 위디스크 직원 폭행 사건은 이런 갑질의 극단적인 한 예다.

노동ㆍ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이런 갑질의 바다 한 가운데 뛰어 들어 지난해 11월1일부터 1년간 ‘을’의 편에서 분투해 왔다. 직장갑질119에서 비상근으로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이용우 변호사와 조윤희 노무사, 그리고 직장갑질119 활동을 총괄하는 오진호 총괄스태프와 함께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1주년 기념 좌담회를 가졌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갑질 실태와 그 원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들어 봤다.

-1년간 직장인 갑질 피해 상담을 하며 인상 깊었던 사례를 들려 달라.

(오진호 총괄스태프ㆍ이하 ‘오’) “작은 회사에 다니는 한 60대 여성 청소노동자 분은 사장이 본인 집 청소는 물론, 개인적으로 임대사업을 하는 원룸 청소까지 시키고 월급은 한달에 고작 100만원을 줬다. 염전 노예가 따로 없었다. 딸을 통해 직장갑질119 상담을 한 뒤 사장에게 요구해 임금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상하고 부당한 청소 업무도 없앴다. 4대 보험에도 가입했다. 반면 끝이 개운치 않은 경우도 있다. 우체국에서 20년간 일하다가 퇴직해 경남 지역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일하는 분 사례인데, 얼마 전 손님한테 이유 없이 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사장 친구였다. 사장이 제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고, 제보자가 이를 거부하니 식사 시간에 먹다 남은 반찬만 내주는 식으로 괴롭혔다. 도와드리려 해도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어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됐다. 그러다 지난주 직장갑질119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목숨을 끊겠다’며 약 사진을 올리시더라. 다행히 저희가 그분 집 주소를 알고 있었고, 경찰에 신고해 약을 먹고 쓰러진 제보자를 병원에 옮길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갑질 이슈가 많이 터지면서 변한 것도 있을 것 같다.

(오) “일단 제보자들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증거 자료가 전혀 없이 하소연만 했는데, 이제는 녹음 파일, 근무기록, 채팅방 캡처와 같이 구체적인 입증 자료를 준비한 뒤 제보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이용우 변호사ㆍ이하 ‘이’) “업무 배제, 왕따와 같이 은근히 피를 말리는 직장내 괴롭힘이 늘고 있다.”

(조윤희 노무사ㆍ이하 ‘조’) “한 여성 제보자는 회사로부터 '육아휴직이 끝난 뒤 복귀하지 말라'는 황당한 지시를 받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했다. 그러자 담당 부장이 '그러면 법대로 하자'면서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기 전까지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고 꼼짝도 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며 폐쇄회로(CC)TV 바로 아래 자리를 줬다. 부장과 대화만 허락했고, 다른 직원과의 대화를 할 때면 직원들에게 모든 대화 내용을 녹음하게 시켰다."

-업종별, 규모별 특성도 있나.

(오) “폐쇄적이고 작은 집단이 갑질이 심하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요양시설 등은 원장 등이 소왕국을 구축해 각종 갑질을 일삼는다. 종교재단 시설은 연말에 후원행사를 한다며 강제로 티켓을 팔아오게 하고,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등 갑질이 심하다는 제보가 접수된다.”

(조) “특수고용노동자나 임시ㆍ일용직 분들도 갑질에 노출돼 있다. 판매할 물건을 일단 본인 돈으로 전부 구매하게 강요하는 식이다. 모 택배회사는 ‘월 400만원 수입 보장’이라며 사람을 모집한 뒤 정해진 배달 물량을 채우지 못하면 하루에 얼마씩 배상액을 받아 냈다.”

(이) “방송사 갑질도 심하다. 실제로는 고용 관계에 가까운데 명목상으로 프리랜서 계약을 맺어 갑질을 한다. 한 지상파 지역방송국의 시사교양 구성작가는 어느 날 아침 출근해 보니 자신을 대체할 후임 작가가 와 있었다고 제보했다. 20년 넘게 한 방송국에서 일했으니 근로자성이 강한데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퇴직금 한푼 주지 않고 모욕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자른 것이다.”

-이런 피해 사례들을 상담 만으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 “법률적으로 딱 떨어지는 고민 상담이면 좋은데, 임금체불건 등을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그런 사례가 많지 않아 한계를 느낀다.”

(오) “사업장 조사권한이 전혀 없는 직장갑질119가 갑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가기관은 대체 뭘 하는 건가 궁금해진다. 정부가 지난 7월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10월까지 갑질 근절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는데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 반짝 관심 아니었나 싶다.”

-상담을 하면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느낀 부분은 뭔가.

(이) “미투(#Me Too)가 한창이던 올해 초 직장내 성희롱ㆍ성폭력 사건 상담이 많이 접수됐다. 그런데 성희롱은 과태료 처분만 있고 형사처벌 조항이 없어 한계가 많다. 직장내 권력 관계를 감안해 남녀고용평등법에서라도 성희롱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직장 상사도, 사업주도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성희롱뿐만이 아니다. 직장 내 상하 관계는 일반 사인(私人) 간의 관계와 달리 굉장히 수직적인 조건에서 발생한다. 또 은폐하기 쉽고 피해가 크기 때문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조) “‘회사에서 이번 달에 월급을 안주고 연말에 다 몰아서 주겠다고 하는데 그래도 되나요’ ‘몸이 아플 때 연차 휴가를 써도 되나요’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고민 상담도 꽤 들어온다. 노동법의 기본만 알면 모를 수 없는 지식이다. 학교에서 이런 기본적 권리는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새는 ‘을질’이라는 말도 나왔다. 직원만 늘 피해자는 아닐 텐데.

(이) “상담 하다 보면 100건 중 1건 정도는 ‘(제보자 요구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싶은 때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99건은 내가 제보자 입장이라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분명한 갑질이다. 아직 을질을 문제 삼을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조) “갑질 이슈화를 계기로 사장이나 상사가 ‘기존에 내가 하던 행동이 갑질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 되돌아 보게 됐다. 이는 바람직한 변화라 본다. 부하 직원 눈치가 보인다는 불평인데, 아직 좀 더 부하 직원 눈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갑질 119는

2017년 11월1일 출범했다. 법률ㆍ노동ㆍ인권 전문가들 241명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직장갑질119’)과 이메일(gabjil119@gmail.com)을 통해 무료로 상담을 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접수된 갑질 제보 총 건수는 2만2,810건에 이른다. 한림대성심병원 근로자의 선정적인 장기자랑 등이 직장갑질119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어린이집 갑질근절 보육교사 모임’과 같은 업종별 모임, 노동조합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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