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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에서 꽃피운 아이슬란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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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에서 꽃피운 아이슬란드의 기적

입력
2016.06.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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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가 28일 프랑스 니스 알리안츠 리비에라에서 열린 유로 2016 16강에서 잉글랜드를 누르고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썼다. 사진은 라그나르 시구르드손의 동점골이 터진 뒤 환호하는 아이슬란드 선수들의 모습. 니스=AFP 연합뉴스
아이슬란드가 28일 프랑스 니스 알리안츠 리비에라에서 열린 유로 2016 16강에서 잉글랜드를 누르고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썼다. 사진은 라그나르 시구르드손의 동점골이 터진 뒤 환호하는 아이슬란드 선수들의 모습. 니스=AFP 연합뉴스

3년 전 쏟았던 눈물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오늘의 기적을 예감케 한 희망찬 밀알이었다.

‘얼음 왕국’ 아이슬란드의 돌풍이 유럽 전역을 넘어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28일(한국시간) 프랑스 니스 알리안츠 리비에라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유로 2016 16강전에서 2-1로 승리하며 대회 최대 이변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아이슬란드는 전반 4분 만에 잉글랜드 웨인 루니(31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페널티킥 실점을 허용하며 끌려갔다. 하지만 2분 만에 동점을 만들었다. 아론 군나르손(27ㆍ카디프시티)의 오른쪽 롱 스로인을 카리 아르나손(34ㆍ말뫼)이 헤딩으로 연결했고, 골문 앞으로 돌파한 라그나르 시구르드손(26ㆍ크라스노다르)이 밀어 넣었다.

기세가 오른 아이슬란드는 전반 18분 환상적인 삼각 패스를 받아 콜베인 시그도르손(26ㆍ낭트)이 오른발 슈팅으로 역전 결승골을 뽑았다. 이후 아이슬란드는 수비를 강화하고 역습을 노리는 전략으로 승리를 지켰다. 로이 호지슨(69) 잉글랜드 감독은 경기 직후 곧바로 사의를 표시했다.

아이슬란드의 돌풍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어느 정도 예고됐다. 당시 스위스, 노르웨이, 슬로베니아 등과 함께 E조에 속한 아이슬란드는 조기 탈락할 거란 예상을 깨고 조 2위를 차지해 최종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2013년 11월 열린 플레이오프 상대는 유럽 강호 크로아티아였다. 아이슬란드는 홈 1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겨 첫 월드컵 진출의 꿈에 부풀었지만 원정 2차전에서 0-2로 패하고 말았다. ‘아이슬란드 축구의 전설’로 통하는 아이두르 구드욘센(38ㆍ몰데)은 패배 직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며 “월드컵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못해 아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슬란드는 월드컵 탈락의 아픔을 딛고 유로 2016에서 재도전에 나섰다. 유로 지역 예선에서 강호 네덜란드를 두 번이나 격파하며 당당히 본선 티켓을 땄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3차전에서 오스트리아를 꺾고 유로 사상 첫 승을 기록한 뒤 16강에서 ‘종주국’ 잉글랜드마저 무너뜨리며 8강에 오르는 새 역사를 썼다. 아이슬란드의 8강 상대는 개최국이자 우승후보인 프랑스다.

아이슬란드의 기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지속적인 투자, 효과적인 정책의 결실이다.

인구 33만 명, 연평균 기온 3도, 국토의 80%가 빙하ㆍ호수ㆍ용암지대로 뒤덮인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슬란드는 2000년 초부터 사계절 내내 사용 가능한 실내 축구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했다. 인재풀이 좁은 한계를 넘기 위해 우수 지도자 양성에 눈을 돌렸다. 아이슬란드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코칭 라이선스 보유자가 848명(프로 13명, A급 196명, B급 639명)에 이른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유망주를 대상으로 수준 높은 트레이닝을 제공했다. 영국 BBC는 아이슬란드 선수들을 ‘인도어 키즈’라 부른다. ‘실내에서 훈련한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등록 선수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재능 있는 유망주 발굴에 집중한 결과 인도어 키즈는 아이슬란드 대표팀 주축으로 성장했다.

2013년 11월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던 구드욘센은 이듬 해 다시 복귀했다. 그는 20대 초ㆍ중반이 주축인 인도어 키즈들에게 우상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구드욘센을 보며 성장했다. 띠동갑 차이나 나는 구드욘센과 인도어 키즈는 환상의 호흡을 과시했다.

아이슬란드는 독특한 지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축구 역사상 유례 없는 공동 감독 체제다. 2011년부터 자국 출신 헤이미르 할그림손(49)감독과 스웨덴 출신 라르스 라예르베크(68) 감독이 대표팀을 함께 지휘한다. 할그림손 감독의 이력은 매우 특이하다. 본업은 축구 감독이 아니라 현직 치과의사다. 그는 1993년 선수생활을 하면서 여자 아마추어 축구팀 코치를 맡았고, 이후 여러 팀 지도자로 활동하다 아이슬란드 국내 아마추어 리그 사령탑까지 올랐다. 아이슬란드는 할그림손 감독에게 자국의 축구 저변을 넓혀달라는 주문을 했다. 할그림손 감독은 선수들 간의 조직력을 끌어올리고 라예르베크 감독은 전략 및 기술 향상을 힘쓰는 철저한 분업화 덕에 아이슬란드는 얼음처럼 단단한 팀으로 발전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거리응원을 펼치던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승리가 확정되자 열광하고 있다. 레이캬비크=EPA 연합뉴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거리응원을 펼치던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승리가 확정되자 열광하고 있다. 레이캬비크=EPA 연합뉴스

대표팀의 계속된 선전에 아이슬란드는 열광의 도가니다.

아이슬란드는 수도 레이캬비크 시내 곳곳을 폐쇄하고 거리 응원전을 펼쳤는데 합동응원구역에 모인 사람들만 1만 명이 넘었다. 잉글랜드전이 열린 니스를 찾은 아이슬란드 원정 팬은 약 3만 명으로 인구의 10%를 차지했다. 8강전을 앞두고 아이슬란드에서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현지 언론은 “기존 2만4,646크라운(약 23만 원)을 하던 티켓 가격이 8만9,925크라운(약 85만 원)까지 올랐다.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다”고 전망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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