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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청색전화와 반값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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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청색전화와 반값 아파트

입력
2006.12.0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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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경제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전화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공급은 수요에 턱없이 못 미쳤고, 관공서 병원 고위공직자 주택 등에 우선 배정하고 나면 일반가정에 할당되는 회선은 얼마 안 됐다. 그나마도 권력자의 외압이나 담당 공무원의 비리로 빼돌려지기 일쑤였다. 일반인이 전화를 청약받기는 복권 당첨 만큼이나 힘들었다.

● 1970년대 200만원이 넘던 전화값

전화 실수요자는 9만원 설비비의 3~4배의 프리미엄을 주고 회선을 매입하거나 다량의 전화회선을 소유한 '전화상'에게 5만원 보증금과 3만원 사용료를 내고 회선을 임대해서 사용해야 했다. 서울시내에만 800개소의 전화상이 성업했고, '전화부인'이라 불리던 큰손은 무려 600회선을 세놓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전화(회선)값은 날이 갈수록 치솟았고, 전화 청약을 둘러싼 비리는 체제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대통령 박정희는 체신부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당시 체신부 공무원들은 회선 배정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이권을 쥐고 짭짤한 부수입을 챙겼지만, 날마다 걸려오는 권력자의 청탁전화에 시달렸고, 수시로 검찰의 철퇴를 맞았다.

체신부가 마련한 전화값 폭등 대책은 가입권 양도 금지, 공개 입찰, 사용료 대폭인상 등 세 가지였다. 가입권 양도 금지 방안은 전화값 폭등을 잠재울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실수요자가 회선을 얻지 못해 곤란을 겪을 수 있었고 사유재산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었다.

공개 입찰은 전화상에게 돌아가는 이득을 정부가 환수해 전화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회선 공급도 제대로 못하는 정부가 회선 장사를 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고심 끝에 정부가 내놓은 최종안은 1970년 9월부터 신규로 허가되는 전화 가입권의 양도를 금지하되, 기존의 가입권은 양도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전화 수요 자체를 억제하기 위해 '사용료 폭탄'도 터뜨렸다. 이후 양도가 금지된 신규 회선은 청색대장에 기록해 '청색전화', 양도가 허용되는 기존 회선은 백색대장에 기록해 '백색전화'라 불렀다.

● 반값아파트, 부동산폭등세 잡을까

회선의 공급은 별반 늘지 않은 채 제도만 바뀌자 대혼란이 야기되었다. 백색전화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고, 청색전화 배정을 놓고 비리와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가입신청하고 전화가 놓일 때까지 1~2년쯤 기다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명의이전 없이 청색전화를 사고파는 탈법도 기승을 부렸다.

반포아파트 32평형 분양가가 1,000만원에 못 미치던 시절, 영동전화국 관할 백색전화 가격은 222만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부유층은 자식 장가 밑천으로 백색전화를 한두 회선 사 두기도 했다.

청색전화 도입 이후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전화값 폭등세는 전화회선이 대량으로 공급된 1980년대 이후 잦아들었다. 지금 사용되는 전화 중 45만여 회선은 30년 전 200만원을 호가했던 바로 그 백색전화다.

토지를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으로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해 부동산 폭등세를 잡겠다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다. 청색전화로 백색전화 폭등세를 잡겠다는 야무진 발상이다.

전봉관ㆍ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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