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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의 대면 기피

입력
2015.06.0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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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보고서 사랑’은 유별나다. 국회의원 시절 자택 밖으로 잘 나오지 않던 터라 주로 집안 팩스로 보고를 받았다. 오랜 은둔의 습성은 대통령이 돼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관저에서 밤 늦게까지 부처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꼼꼼하게 읽는다고 한다. 궁금하면 수시로 전화기를 들어 시시콜콜 물어본다. 현안을 샅샅이 파악했으니 굳이 대면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에게 끝내 대면보고를 못해본 장관도, 대통령을 독대 못하고 그만둔 수석 얘기도 전한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 첫 환자 발생 6일 후 대면보고를 받았다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밝혔다. 웬일인가 했더니 그마저도 지난달 26일 국무회의 석상에서였다. 수십 명 회의에서 한마디씩 하는 걸 대면보고라고 둘러댔다. 이날 박 대통령은 메르스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3일 ‘메르스 긴급점검회의’에서 이뤄진 두 번째 대면보고라는 것도 영상회의였다. 결국 단 한차례도 대면보고를 받지 않은 셈이다. 메르스 사태에 대통령이 굼떴던 이유가 있었다.

▦ 세월호 참사 당일도 그랬다. 박 대통령은 그날 21회(국가안보실 10회, 비서실 11회)의 보고를 받았지만 모두 서면과 전화보고였다. 그러니 참사 발생 8시간이 지났는데도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구조하기가 힘듭니까”라는 엉뚱한 질문이 나온 거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장관들을 쳐다보며 “대면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박 대통령식 ‘불통정치’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 국가적 재난사태 대처에는 무엇보다 대통령과 각료들의 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 대면보고에선 상대방의 감정과 표정이 드러난다. 만나서 한두 마디만 나눠도 뭐가 문제인지 쉽게 파악이 된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서면이나 토론이 불가능한 전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면보고 기피는 박 대통령의 고질로 지적돼온 수첩, 불통, 비선, 밀실과 동의어다. 올해 초 ‘문고리 권력’논란이 불거진 후 조금 달라지는 듯했는데 메르스 사태에서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박 대통령에게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오전 청와대 위민관 영상국무회의실에서 열린 청와대-세종청사 간 국무회의에 참석,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오전 청와대 위민관 영상국무회의실에서 열린 청와대-세종청사 간 국무회의에 참석,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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