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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토킹에 벌벌 떠는데… 경찰은 “블로그 닫고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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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토킹에 벌벌 떠는데… 경찰은 “블로그 닫고 기다리세요”

입력
2017.02.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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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법 엄연히 있는데도

“직접 연락해 해결해 보라”

경찰, 소극 대처로 일관

피해자들 불안 더 커져

박모씨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A(27ㆍ여)씨 블로그에 온갖 욕설과 함께 ‘대기업 낙하산으로 취직했나’는 내용의 댓글을 100여개나 남겼다. 올해 2월에는 같은 내용의 메시지 150여통을 A씨 SNS에 보내기도 했다. A씨 블로그 캡쳐
박모씨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A(27ㆍ여)씨 블로그에 온갖 욕설과 함께 ‘대기업 낙하산으로 취직했나’는 내용의 댓글을 100여개나 남겼다. 올해 2월에는 같은 내용의 메시지 150여통을 A씨 SNS에 보내기도 했다. A씨 블로그 캡쳐

A(27ㆍ여)씨는 지난해 12월 한 달 사이에 경찰서 세 곳을 찾았다. 지난해 4월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일면식도 없는 박모씨가 온갖 욕설과 함께 ‘몸 팔아서 월급 300만원 대기업 낙하산으로 취직했나’는 내용의 댓글을 100여개나 남겨 ‘사이버 스토킹’으로 신고할 목적이었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은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 문언 음향 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것’(44조의 7)을 사이버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처벌 조항(74조)도 두고 있다.

경찰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직장 근처라 처음 찾은 대전 둔산경찰서는 “블로그가 뭐냐, 진술서를 이해하기 쉽게 써오라”고 A씨를 돌려보냈다. 서울 집으로 가기 전 방문한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집이나 회사 근처 경찰서로 가라”고 했다. 결국 집 근처 서대문경찰서까지 간 A씨는 “박씨와 직접 연락해 해결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충고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

경찰 말대로 A씨는 지난해 12월 23일 블로그를 닫았지만 박씨는 멈추지 않았다. 올해 2월 16~17일 이틀간 박씨는 A씨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전보다 모욕과 협박 수위가 한층 높아진 메시지를 150개 넘게 보냈다. 심지어 SNS에서 발견한 A씨 동생까지 언급했다. A씨는 “경찰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해결이 안돼 하루하루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했다.

41-경찰의 안일한 대응/2017-02-20(한국일보)
41-경찰의 안일한 대응/2017-02-20(한국일보)

익명에 숨어 온라인상에서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사이버 스토킹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엄연히 관련 법과 처벌 조항이 있는데도 경찰은 뒷짐만 지거나 수사에 소극적이라 피해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20일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관련 피해 상담은 49건이지만 실제 법적 대응에 나선 건 7건에 불과했다. “가해자와 사적으로 잘 풀라고 했다” “가해자가 직접 찾아오면 연락하라”는 경찰 대응에 실망해 신고를 접었다는 게 상담소 설명이다.

실제 B(23ㆍ여)씨는 지난해 1월 SNS를 통해 스토킹을 당했지만 신고를 포기했다. 한 남성이 B씨 SNS를 통해 알아낸 전화번호로 하루에 360통의 전화를 걸어 두려움에 떨었지만, 경찰은 “수사에 두 달 정도 걸린다”고 답한 게 전부다.

주로 여성을 상대로 벌어지는 사이버 스토킹은 온라인상 말장난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게 최근 사회적 분위기다. 이날 전주지법은 ‘결혼하고 싶다’ ‘집안을 망쳐버릴 수도 있어요’ 등의 이메일을 한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보낸 김모(24)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사이버 스토킹이 오프라인 스토킹에 비해 유형이 예측하기 힘들고 다양해 피해자에게 주는 고통이 클 수 있다”라며 관련 법률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게다가 범행이 사이버에서 그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6월 한 여성에게 문자메시지를 555차례나 보내며 사이버 스토킹을 하던 전모(28)씨는 급기야 여성 집 근처에 청색 테이프로 협박 글을 붙였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사이버 스토킹을 신고하려 해도 ‘이런 거까지 가져오냐’고 면박을 준다는 상담 사례가 많다”며 “이제는 온라인과 현실 경계가 무뎌진 만큼 사이버 스토킹의 심각성을 수사기관이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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