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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비닐하우스' 속헹 사망 2년... 외국인 노동자들은 겨울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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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비닐하우스' 속헹 사망 2년... 외국인 노동자들은 겨울이 두렵다

입력
2022.09.20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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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서 사망 캄보디아인 속헹씨 사망 2년
경기 포천·남양주 농업 비닐하우스 단지 가보니
노동부서 금지한 가건물 거주하는 외국인 태반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 옆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숙소 내부 모습.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 옆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숙소 내부 모습.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더러운 화장실에서 풍겨 오는 냄새를 매일 맡으면서 잠들어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난 16일 경기 포천의 한 농장에서 만난 네팔 출신 외국인노동자 A(24)씨가 허름한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서툰 한국말로 이렇게 얘기했다.

A씨가 지목한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샌드위치 패널에 은색 차양막까지 있어 문을 열지 않으면 빛이 들어올 틈이 없어 보였다. 내부의 임시 컨테이너는 A씨와 동료 한 명이 하루 10시간 일한 뒤 잠을 청하고 생활하는 공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열악했다. 비닐하우스 앞으로 위태롭게 서있는 간이 화장실의 코를 찌르는 악취는 여름철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두렵다. 경기 북부지방은 한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날이 부지기수다. 겨울철 이상 한파로 최근엔 혹독한 추위가 더욱 빈번해졌지만, 이들이 머무는 숙소는 10도 안팎 정도였다.

비위생에 안전 문제에 노출된 외국인 노동자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여성노동자 누온 속헹씨가 제대로 된 난방시설도 없는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병을 앓다가 숨진 뒤 두 번째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본격적인 추위를 앞두고 한국일보가 15, 16일 포천과 남양주 일대 외국인 노동자 숙소를 돌아봤다. 속헹씨 사건 이후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대책이 잇따라 발표됐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은 열악했다.

이틀 동안 둘러본 외국인 노동자 숙소들은 A씨의 숙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멀리서 보면 농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쌓아두는 창고처럼 보였지만, 내부에 발을 들이면 사람이 거주하는 녹슨 컨테이너들이 흉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비위생적 환경은 물론 곳곳에 안전을 위협하는 물건이 방치돼 있었다. 남양주의 한 노동자 숙소에는 비닐하우스 바깥에 LPG 가스통이 별도 안전장치 없이 놓여 있었다. 캄보디아 출신 B(36)씨는 “숙소에 4명이 사는데 가스 냄새가 많이 난다"고 걱정했다.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 입구 배관에선 오염 가능성이 큰 지하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16일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 옆으로 허름해 보이는 샌드위치 패널 숙소가 있고, 옆에는 간이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이종구 기자

16일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 옆으로 허름해 보이는 샌드위치 패널 숙소가 있고, 옆에는 간이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이종구 기자


노동부의 점검 한계와 고용주의 편법

속헹씨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월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와 조립식 패널 등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다. 고용주가 이를 위반하면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불허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지만, 현장에선 편법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포천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 2명의 근로계약서와 외국인등록증에는 거주시설이 '주택'과 '빌라'로 적혀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가건물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을 고용하는 농장주가 허위로 거주지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한 농장주는 "농촌에선 아직도 외국인 노동자 태반이 불법 가건물에서 지낸다"며 "노동부 직원들이 현장 점검을 나온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현장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인력 문제로 전수조사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도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시키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고용주 승인을 받아야 이직이나 추가 입국이 가능한 노동자 입장에선, 고용주에 등을 돌리는 부담을 안고 불만을 제기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들은 매달 15만~ 30만 원의 숙소 이용료까지 임금에서 꼬박꼬박 제하고 있다.

16일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 옆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숙소. 창문도 없고, 옆으로는 쓰레기가 쌓여 있다. 이종구 기자

16일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 옆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숙소. 창문도 없고, 옆으로는 쓰레기가 쌓여 있다. 이종구 기자


올해도 열악한 환경에서 한파 버텨야 할 판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제2의 속헹씨 사건'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노동부의 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 주거 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69.6%가 가건물에 거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부 단속이나 점검과 병행해 지자체 차원의 노력이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도는 지난 7일 외국인 노동자 숙소 개선을 위해 현대화된 조립식 주택 400동을 공급하기로 했다. 매년 80억 원씩 투입해 100동씩 만들기로 했다. 지난 6월부터 ‘2022년 농촌지역 외국인 노동자 서포터즈 운영 사업’을 시작한 경기도도 도내 숙소·작업장 안전진단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또다시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거 기본권이 조속히 개선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비극적인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현장 점검과 함께 일부 고용주의 의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가 여성 외국인 근로자 2명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 농장 인근 가건물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이종구 기자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가 여성 외국인 근로자 2명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 농장 인근 가건물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이종구 기자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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