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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형제복지원, 국가 주도 대규모 인권유린”… 법리 탓 비상상고는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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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형제복지원, 국가 주도 대규모 인권유린”… 법리 탓 비상상고는 기각

입력
2021.03.11 20:00
수정
2021.03.11 20: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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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특수감금 무죄' 32년 전 판결 유지됐지만?
"이 사건 핵심은 인간 존엄성 침해" 명확히 규정?
대법 "피해회복·아픔 치유 기대"... 檢 "기각 아쉽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고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번 판결은 2018년 11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한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뉴스1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고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번 판결은 2018년 11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한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뉴스1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형사 재판이 32년 만에 대법원에서 다시 열렸으나, 법리적 이유로 끝내 당시 원장의 ‘특수감금죄 무죄’ 판단은 뒤집히지 못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핵심을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이자 헌법 최고 가치인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 범죄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정부의 진실규명 작업을 통해 희생자 및 피해 생존자의 명예와 피해가 회복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형제복지원 원장이었던 고(故) 박인근씨가 1980년대 말 ‘특수감금 혐의 무죄’ 판결을 받은 데 대한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비상상고 제도는 확정판결 중 ‘법령 위반’ 사항이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재심리를 구하는 절차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박씨의 특수감금죄 무죄 판결과 관련, 2018년 11월(야간감금 무죄 부분)과 2019년 2월(주간감금 무죄 부분) 두 차례에 걸쳐 비상상고를 각각 신청했다.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를 ‘유죄’ 판결로 바꾸어 달라는 취지였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87년 ‘부랑자 선도’를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인권을 유린했던,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국가폭력으로 꼽힌다. 10여 년 동안 이곳에 갇힌 인원이 약 3만8,000명에 달했고, 수용자에 대한 학대와 구타, 성폭행은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복지원 자체 기록만으로도 사망자는 최소 513명에 달했다. 원장 박씨는 1987년 특수감금 혐의 등으로 기소됐는데, 대법원에서 하급심의 ‘특수감금죄 유죄 또는 일부 유죄’ 판단이 두 번이나 무죄 취지로 뒤집히며 파기환송을 거듭하다 1989년 결국 징역 2년6월이 확정됐다. 법원 선고만 총 7차례 거치면서 그의 핵심 범행인 특수감금죄엔 무죄라는 면죄부를 주고,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한 ‘솜방망이 판결’이었다.

비상상고심에서 검찰 등은 “위헌ㆍ무효인 내무부 훈령을 적용해 특수감금죄를 무죄로 본 과거 판결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32년 전 대법원은 ‘부랑인 단속ㆍ수용’ 명목으로 1975년 발령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내세워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었다.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은 형법 제20조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당시 사법부 결론이었다. 해당 훈령은 단속 대상인 부랑자를 ‘배회한다’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등 모호한 문구로 규정했고, 당사자 동의 없이 수용시설 유치를 가능케 하는 등 위헌적 소지가 많았다.

형제복지원 설립부터 검찰총장 비상상고 기각까지. 그래픽=박구원 기자

형제복지원 설립부터 검찰총장 비상상고 기각까지.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러나 ‘2021년의 대법원’은 이 사건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인 것과 별개로, 법리적 사유를 들어 “비상상고를 인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이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적용한 법령은 내무부 훈령이 아닌 정당행위에 관한 형법 제20조”라며 “해당 재판을 비상상고 요건인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때’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훈령이 무효라 해도 이는 형법 제20조 적용을 위한 전제사실일 뿐, 적용 법조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비상상고 요건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이 사건이 ‘군사정권에서 자행된 국가 폭력’임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국가권위주의 체제에서 국가기관 주도하에 이른바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단속ㆍ수용했고, 대규모 인권유린이 행해졌다”며 “복지국가를 내세우면서도 아동ㆍ장애인을 포함해 빈곤이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부랑인으로 구분해 ‘단속’ 명목으로 사회에서 격리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국가는 형제복지원을 사회복지기관으로 인가해 ‘보호’라는 이름 아래 부랑인 수용을 위탁했으며, 박씨가 폭력적 방법으로 부랑인들을 감금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강제노역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도록 묵인ㆍ비호했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책임을 못 박음으로써, 피해 당사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의 길을 열어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대법원 재판부의 ‘기각’ 주문에 법정을 찾은 일부 피해 생존자들은 원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울부짖기도 했다. 다만 이들을 대리해 온 박준영 변호사는 “아쉬운 결과이기는 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국가에 의해 충분한 위로와 보상을 받길 원한다는 대법원 판단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검찰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라 검찰총장이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고, 원 판결을 시정하고자 비상상고를 제기한 사건인데 기각돼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지난해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도 언급했다. 대법원은 “뒤늦게나마 피해 회복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더 구체화된 피해 회복 조치가 취해지고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는 위로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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