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2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2박3일 간 이란 방문을 위해 전용기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밀월관계를 배경으로 국제 중재자로서의 존재감 부각에 나섰다. 핵 합의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양국을 중재하기 위한 이란 방문이 첫 시험대다.

아베 총리는 12일(현지시간) 오후 테헤란에서 열린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중동지역 정세와 올해로 외교 관계 수립 90주년을 맞이한 양국관계 강화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13일엔 대미정책 등 실질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이니 최고지도자를 예방한다. 하메이니가 서방국가의 정상을 만난 것은 2017년 2월 스웨덴 총리의 예방 이후 2년 만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출국에 앞서 “중동지역의 긴장 고조가 우려되고 있다”며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가능한 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과 이란 간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로하니 대통령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긴장 완화를 위해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고 했다. 일본 총리의 이란 방문은 1978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 이후 41년 만이다.

아베 총리가 중재역을 자처한 것은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가서 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전날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약 20분간 전화 통화에서 이란을 포함한 중동 정세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석유 수입국인 일본 입장에서도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은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석유 수송선의 80% 정도가 이란 인근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이란 측에 2015년 핵 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준수 등 미국의 의향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에 경제제재 완화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당장의 방문 성과를 얻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외무성에서 “아베 총리가 서방국가의 대표로서 이란을 방문해 하메이니 최고지도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란 측도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는 단순한 메신저인지 미국에도 타협안을 설득할 수 있는 중재자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국내정치 일정도 아베 총리가 외교무대에 적극 나서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야당에선 이란 방문에 대해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정치쇼”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당초 다음달 참의원 선거에서 외교 성과로 내세우려고 했던 쿠릴 4개섬 반환 등 러일 평화조약 체결 협상이 난관에 부딪히자, 미일 밀월을 배경으로 북한과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과 이란 방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만약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 마련뿐 아니라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에서도 일본이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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