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문을 연 서울 한강로1가 바이닐 바 바이브드 블러바드는 이미 힙스터 사이에선 유명하다. 네온 간판이 전부지만, 주말만 되면 좌석이 가득 차 있을 정도다. 바이브드 블러바드 제공

“라 라 라 라 러브 송”

일본 리듬앤블루스(R&B) 가수 구보타 도시노부는 1996년 발표한 ‘라 라 라 러브송(La La La Love Song)’이 지금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지난해 백예린이 음악 공유 웹사이트인 사운드클라우드에 게재한 커버곡이 300만건 가까이 조회되며 이 노래가 20여년 만에 재조명됐다. 백예린의 ‘라 라 라 러브송’ 다시 부르기를 기점으로 한국에서 일본 시티팝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시티팝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 유행한 팝 음악이다. 재즈와 R&B, 디스코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가 일본 경제 부흥기와 맞물리며 독특한 느낌의 곡이 만들어졌다.

한국 2030세대는 지금 시티팝에 빠져있다.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음악 공간에서 당시 노래가 재발견되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행으로 전파되고 있다. 곡이 쉽고, 흥겹게 춤까지 출 수 있다는 점이 사랑을 받는 이유다.

시티팝은 주로 바이닐(VinylㆍLP)바와 라이브 펍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예전 유행했던 시티팝 앨범 대부분이 CD와 더불어 LP로 출시된 덕분이다. 시티팝의 시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듣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 합정동 만평과 지하철3호선 삼각지역 인근에 위치한 바이브드 블러바드(VIBD BLVD) 등 바이닐 바와 연남동에 위치한 라이브 펍 채널1969이 대표적이다. 대구의 바이닐 펍 쉘터 등 지방에서도 시티팝을 즐길 수 있다. 유재관 쉘터 대표는 “주로 힙합 등 흑인음악을 틀지만, 계절과 분위기에 맞춰 시티팝을 선보이기도 한다”며 “시티팝의 대부로 불리는 야마시타 다쓰로, 그와 함께 작업했던 오오누키 다에코의 음악 등을 주로 듣는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에 있는 쉘터는 재즈와 솔 등 흑인음악을 주로 다루지만, 종종 시티팝을 들려주기도 한다. 소울스케이프 등 유명 DJ가 공연을 열 만큼 이름난 장소이다. 쉘터 제공

국내 바이닐 바와 펍에서 일본 시티팝이 울려 퍼지기는 비교적 최근 일이다. 이들 바와 펍은 시티팝 뿐 아니라 여러 음악을 다룬다. 만평과 바이브드 블러바드는 시티팝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발매된 다양한 바이닐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채널1969는 인디밴드 공연도 자주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간판이 따로 없는 등 이곳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게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2030세대 사이에서 시티팝이 강세라는 점을 방증한다. 김다현ㆍ황성철 바이브드 블러바드 공동대표는 “시티팝은 이곳에서 선곡을 하는 여러 장르의 음악 중 하나”라면서도 “최근 많은 사람이 신청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시티팝을 모르는 사람도 금세 즐길 수 있다. 곡이 어렵지 않아 따라 부르기 쉽다. 시티팝을 즐기는 이들은 2030세대가 대다수였다. 채널1969에서 지난달 24일 열린 시티팝 공연 ‘디스 이즈 더 시티라이프’ 또한 청춘들을 위한 행사였다. 서울 연남동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지하통로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공연장에 수십 명이 춤을 추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 장기하와 얼굴들 전 멤버로 팬들 사이에서 ‘양평이형’으로 불리는 하세가와 요헤이와 최근 떠오르고 있는 타이거디스코가 DJ를 맡았다. 둘 모두 낯설면서도 귀에 감기는 시티팝 선곡으로 힙스터에게 사랑받고 있다.

서울 합정동 만평에선 매주 DJ 공연이 열린다. 화려하게 꾸며진 이발소 회전간판 등 이곳 인테리어도 볼거리다. 강진구 기자

이날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공연은 여느 페스티벌 못지 않게 뜨거웠다. 개성 강한 옷을 입은 청춘들은 시티팝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겼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지만, 앉아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홀로 ‘막춤’을 추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라 라 라 러브송’ 등 유명한 시티팝이 흘러나오면 너나 할 것 없이 큰 소리로 ‘떼창’을 부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각자 음악을 들으면서 놀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이날 처음 시티팝을 접했다는 김슬기(29)씨는 “일본 노래가 생소했지만, 한 곡에서 다양한 장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며 “일본어 가사도 의외로 귀에 거슬리지 않아, 앞으로 자주 찾아서 듣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시티팝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점이 큰 매력이다. 일본 버블경제 시대를 대변하듯 음향도 풍성하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듯 알려지지 않은 곡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티팝 공연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5년 전 처음 시티팝을 접했다는 홍성리(28)씨는 “1970년대 당시 주류 장르였을 만큼 듣기는 쉬운데, 지금 세대는 접해보지 않은 음악이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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