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의 주량)을 알라!
※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와인을 시음하는 방법. 왼쪽부터 색을 본다, 향을 맡는다, 맛을 본다. 와인 유튜버 저스트드링크 제공

와인잔에 와인을 3분의 1쯤 따른다. 하얀 배경을 놓고 잔을 기울여 와인 색을 확인한다. 잔에 코를 깊이 집어 넣어 향을 맡는다. 잔을 회오리치듯 두세 바퀴 돌린 뒤 향을 더 깊이 음미한다. 드디어 와인을 한 모금 머금는다. 아직 삼킬 때는 아니다. 혀와 잇몸에 와인을 골고루 퍼뜨려 맛을 느낀다.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듯 입에 공기를 들이마신 뒤 와인의 맛과 향을 다시 음미한다. 와인을 시음하는 교과서적인 방법이다(그러나, 와인을 교과서적으로 마실 필요는 없다. 각자 편하게 마시면 된다).

시음하는 방법에서 알 수 있듯, 와인은 색과 향과 맛을 음미하며 마시는 술이다. 가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런 와인에 물을 타서 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최근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쓴 ‘향연’을 읽다가 이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와인을 물(특히 소금물)에 섞어 마셨다고 한다. 와인을 위스키 마시듯 스트레이트로 마셨다가는 야만인으로 취급 당했을 정도라고 한다.

'향연' 장면이 그려진 도자기. 위키미디어 제공

서기전 416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리스의 비극 시인 아가톤의 집에서 모임이 열렸다. 소크라테스를 포함해 일곱 명이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를 뺀 참석자 대부분이 전날 마신 와인 탓에 숙취가 심했다. 이들은 상태가 안 좋으니 그날은 기분 좋을 정도로만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참석자들은 물에 희석한 묽은 와인을 마시면서 그날 주제인 사랑에 관해 밤이 새도록 토론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딱 한 잔만 마시겠다는 술 약속의 행방은 가늠할 수 없는 법. 처음 다짐과는 달리 이들은 모두 고주망태가 되었다. 오직 소크라테스만이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토론을 마쳤다. 그러고는 보통의 나날처럼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지덕체의 결정체, 끝판왕이다!

당시 이들의 모임을 ‘향연’, 즉 ‘심포지움’이라고 한다. 현대 들어 심포지움은 세미나 또는 학술대회를 뜻하지만, ‘함께 마신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심포시아(Symposia)’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향연은 ‘물 탄 와인을 함께 마시며 토론하는 모임’인 셈이다.

플라톤은 “심포지움에서 와인을 마시는 행위는 상대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시험할 수 있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의 열정, 사랑, 자부심, 소심함 그리고 무지와 탐욕을 시험하는” 일로 표현했다. 어쩌면 향연의 주인공은 와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왜 와인을 물에 희석해 마셨을까.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완벽하게 밀봉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던 탓에 와인이 공기에 쉽게 노출됐다. 와인이 산화되거나 부패하는 걸 방지하려면 포도의 당도를 올려 알코올 함량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무 진액이나 꿀, 허브 같은 여러 첨가물도 넣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상당히 높고 농도 또한 걸쭉할 수밖에 없겠다. 물과 섞지 않으면 도저히 마시기 힘들었을 것이다. 거꾸로 물 위생 상태도 문제였는데, 와인이 물을 소독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동상. 위키미디어 제공

사회적인 이유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과음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고대 그리스 역시 그런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그러니 와인을 물에 타지 않고 마시거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시는 사람을 야만인으로 여겼을 법하다. 재미있게도 아예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같은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를 이상적이고 품격 있는 술꾼, 즉 교양인의 ‘이데아’로 묘사했다. 아마도 소크라테스는 정신력도 대단했겠지만 알코올 분해 능력이 천부적이었으리라. 그는 술에 취한 적도 없고 숙취로 힘들어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술꾼 소크라테스는 크세노폰이 쓴 ‘향연’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와인은 사람들의 영혼을 상쾌하게 적셔주며 고통을 잠재우고 친밀한 감정을 촉발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와인을 마시면 몸과 판단력이 헝클어지고, 숨 쉬기도 힘들어지며, 의미 있는 말을 할 수도 없게 된다.”

한편,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주량에 감탄하는 사이, 밤새 술 마시고 다음 날 저녁에 들어온 남편을 본 크산티페의 심정은 어땠을까. 오늘 필자가 마시는 와인을 그녀에게 바친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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