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편성 줄이고 임금 깎고… 방송사 주 52시간제 땜질 대책

알림

편성 줄이고 임금 깎고… 방송사 주 52시간제 땜질 대책

입력
2019.05.30 04:40
23면
0 0
2016년 10월 tvN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가 드라마 촬영장의 살인적인 노동을 비판하며 숨졌지만, 열악한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혼술남녀' 방송화면 캡처
2016년 10월 tvN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가 드라마 촬영장의 살인적인 노동을 비판하며 숨졌지만, 열악한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혼술남녀' 방송화면 캡처

“현재 시스템에선 불가능합니다.”

SBS 드라마 ‘녹두꽃’ 방송을 앞둔 지난달 14일 기자들과 만난 신경수 PD는 제작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7월 1일부터 방송사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면 도입되지만, 현재로선 시기상조라는 내용이었다. 신 PD는 “(‘녹두꽃’의 경우) 전남 보성군이나 부산 등 지방촬영이 많아 이동시간이 긴 편인데, 모두 노동시간에 포함되기에 난감하다”며 “칼처럼 근무시간을 자르는 것은 고백하건대 너무 어렵다. 다만 법정 근무시간을 넘기게 되는 경우, 그다음 주에 촬영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안배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사가 7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앞두고 술렁이고 있다. 당초 드라마 업계는 노동시간에 제한이 없던 특례업종이었으나, 지난해 3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제외됐다. 이후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시행 유예기간을 거쳤으나 뾰족한 대책은 아직도 없는 실정이다.

방송사는 우선 드라마 개수를 줄이고 있다. 올여름 월화드라마 대신 16부작 예능프로그램을 한시 편성한 SBS가 대표적이다. 7월로 예정됐던 박진희와 봉태규 주연의 ‘닥터 탐정’ 방영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시청자 확보가 목적이라지만,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선제적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BS 관계자는 “주 68시간제에서 52시간제로 바뀌며 그동안 드라마가 서둘러 제작에 들어갔다”며 “7월부터는 반(半) 사전제작으로 할 수밖에 없기에, 촬영 기간에 여유를 둘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드라마 스태프에게선 불만이 터져 나온다. 벌써부터 현장에선 7월부터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재 월급은 장시간 밤샘 노동까지 계산된 금액이라는 것이 방송사의 논리라는 것이다. 한 프리랜서 PD는 “한 비(非)지상파 방송사가 7월부터 스태프 임금을 월급이 아닌 일급으로 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며 “그간 노동시간이 비상식적이었던 것인데, 제작 환경이 정상화됐다고 임금과 일거리를 줄이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MBC의 한 드라마본부 PD는 29일 노보에 “아직 드라마 PD에게 (주 52시간제 관련) 내려온 지침은 없다. 단지 ‘신고 당하지 않게 잘’하라는 주문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 한국일보]방송 제작인력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 그래픽=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방송 제작인력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 그래픽=강준구 기자

밤샘 노동 문제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난달 10일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스태프가 2월 27일부터 7일간 행해진 브루나이 촬영에서 151시간 30분 간 연속근무를 했다며 CJ ENM의 드라마 제작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을 고발하기도 했다. 제작사는 노동시간 산정 기준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28일 ‘아스달 연대기’ 제작발표회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 기술직은 일주일에 평균 87.8시간을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교양프로그램과 예능프로그램 기술직은 같은 기간 각각 평균 63.7시간과 62.1시간을 근무했다.

드라마와 함께 주 52시간제를 적용 받는 영화는 제작 환경 개선이 상당 부분 진척됐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표준근로계약서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영화 스태프는 74.8%에 달했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28일 서울 용산구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열린 ‘기생충’ 언론시사회에서 “2014년부터 영화산업노조를 중심으로 (표준근로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 2017년쯤부터는 확실히 근로 시간이나 임금이 잘 정착됐다”며 “방송계도 표준근로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들었는데, 영화계처럼 잘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노무사 모임인 노동자의 벗 소속 ‘비인간적인 방송 제작을 금지합니다(비방금지)’ 팀장인 김지영 노무사는 “방송사가 주 52시간제를 피하기 위해 탄력근로제ㆍ재량근로제 등 ‘꼼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린다”며 “드라마 스태프가 엄연한 근로자라는 사실을 방송사와 제작사가 더 이상 부인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