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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캐슬, 사실은?] ‘법알못’ 배심원 믿을 수 있나?... 법관 판단과 97% 일치

입력
2019.05.27 04:40
수정
2019.05.27 15:4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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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 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 분)가 이의를 제기하는 모습.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배심원들'에서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 분)가 이의를 제기하는 모습. CGV아트하우스 제공

"다들 정말 유죄라 확신할 수 있어요? 난 모르겠어요" (영화 '배심원들' 8번 배심원 권남우)

미국 법정 드라마나 영화에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검사나 변호사가 감정에 호소해 배심원단을 설득하거나, 배심원끼리 모여 유ㆍ무죄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1심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ㆍ무죄 및 양형 의견을 내는 국민참여재판이다.

그러나 도입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참여재판은 낯설다. 고도로 훈련받은 법관이 아닌, 법을 모르는 일반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가린다는 점에서 불신도 존재한다. 배심원들이 감정적 호소에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배심원이 되는 순간 눈빛이 바뀐다

대표적 오해와 편견은 배심원 자질 문제다. 과연 법을 알지 못하는 ‘법알못’ 배심원의 판단력에 피고인의 운명을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참여재판을 해 본 판사나 변호사의 말은 다르다. “저런 사람에게 무죄를 주면 어쩌나”, “형량이 너무 약하다”며 법원을 나무라던 이들에게 ‘남의 인생’을 좌우할 권한이 주어지는 순간, 이들은 그 무게 앞에서 진지해지고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부족한 것은 전문성뿐, 열의와 집중력도 법관 못지 않다.

참여재판 도입에 관여했던 차동언 변호사는 “배심원이 되는 순간 사람들 눈빛이 바뀐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결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데 대충할 수가 없다”며 “판사 한 명이 재판을 좌우할 때보다 국민이 참여할 때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법관들 말도 다르지 않다. 참여재판을 진행해 본 한 부장판사는 “재판 중 배심원들이 건넨 질문지에 예리한 질문이 많다”며 높게 평가했다.

영화 ‘배심원들’의 소재가 된 2008년 12월 존속살인 사건의 참여재판도 누명을 벗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24세 조모씨는 어머니에게 식칼을 휘두른 뒤 불 질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조씨 어머니가 생활고로 인한 불면증 탓에 술이나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었는데, 범행 당일 조씨가 수면제를 더 달라는 어머니 요구에 화가 나 다투다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최근 5년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박구원 기자/2019-05-2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최근 5년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박구원 기자/2019-05-26(한국일보)

조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어머니가 수면제를 더 먹지 못하게 약통에 남은 수면제를 한꺼번에 삼켜 그 후 상황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범행 현장에 발화ㆍ인화물질이 없어 방화로 보기 힘들고, 어머니가 진화를 시도하거나 구조를 요청한 정황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배심원단은 격론 끝에 존속살해 및 방화치사 혐의에 대해 6대 3 무죄평결을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검사 홍재덕(김의성 분)이 국민참여재판에서 증인을 신문하는 모습. 시네마서비스 제공
영화 '소수의견'에서 검사 홍재덕(김의성 분)이 국민참여재판에서 증인을 신문하는 모습. 시네마서비스 제공

◇배심원과 법관 판단이 어긋나면?

지난해 배심원과 법관의 판단은 97.2% 일치했다. 그러나 2.8%에선 결론이 달랐다. 배심원 평결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 밖에 없다. 법관들이 평결을 뒤집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2013년 안도현 시인 사건이 평결과 판결이 어긋난 대표 사례다. 안 시인은 2012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안중근 의사 유묵 도난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참여재판을 받았다. 쟁점은 의혹 제기에 대통령 자격 검증을 위한 공익 목적이 있다고 볼 지 여부였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 무죄의견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원이 평결에 구속받을 필요는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ㆍ3심은 안 시인 혐의를 무죄로 판결하며 배심원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대법원은 “전원일치 무죄평결로 인한 무죄판결은 더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참여재판 1심 판결이 2심에서 파기된 비율은 28.4%로, 일반 사건 파기율 40.5% 보다 훨씬 낮다. 배심원 판단이 대법원까지 그대로 가는 비율이 전문법관 판결보다 더 높은 셈이다.

◇배심원들이 무죄를 더 잘 준다?

참여재판의 다른 속설은 ‘무죄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속설은 일단 통계상으로는 입증되는 사실이다. 지난해 말까지 참여재판 무죄율은 10.9%로 일반재판(4.3%)보다 2배 이상 높다. 2008년 3.1%였던 참여재판 무죄율은 2013년 이후 10% 수준을 유지하다 지난해 20.6%까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애초 무죄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서 참여재판 신청이 많은 점도 있으나, 배심원 판단이 무죄로 기우는 경향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다만 무죄를 노리고 참여재판을 신청했다가 더 센 형량을 받을 수도 있다.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예컨대 정당방위 사건과 같이 법원과 일반인의 시각에 온도차가 있는 경우 상대적으로 무죄를 받기 수월할 수 있다”면서도 “배심원은 여론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성범죄 사건에 참여재판을 제안하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강애리 변호사도 “학대에 못 이겨 폭력을 행사한 피고인이 동정받을 여지는 있지만, 반대로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고 했다.

참여재판 활성화를 위해 피고인들에게 “최소한 손해는 안 본다”는 인식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기소되기도 전부터 피고인을 난도질하고 여론몰이 하는 행태가 변하지 않는다면 어떤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받으려 하겠냐”면서 “미국처럼 배심원 전원일치 무죄평결에 따른 무죄판결의 경우는 검찰 항소를 막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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