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봉기 실패, 미국은 이란에 집중… 과이도 “대화에 동의”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지난 18일 과티레에서 열린 반정부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과티레=로이터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의 균형 추가 급격히 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달 30일 ‘임시 대통령’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주도한 군사봉기가 실패로 끝나면서 반(反)정부 세력이 급속히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미국이 이란과의 갈등 때문에 적극 개입할 수 없게 된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야권은 즉각적인 정권 교체를 요구하던 입장에서 물러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를 신속히 해결할 수 없게 된 과이도 의장이 마두로 대통령과의 협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과이도 의장은 최근 한 연설에서 “거짓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정부와의) 대화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인터뷰에선 야권의 작전 능력이 비참한 수준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 한국일보] 베네수엘라 한 나라 두 대통령. 그래픽=신동준 기자

양측 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정부와 야권은 지난주 노르웨이 오슬로에 대표단을 보내 사전 회담을 진행했다. 과이도 의장도 같은 기간 국제접촉그룹(ICG)에 속한 유럽 외교관들과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최근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이 쿠바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 역시 베네수엘라 사태를 국제 외교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친정부 집회에 참석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카라카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월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뒤 강경한 태도만을 유지해 온 과이도 의장이 갑작스레 대화로 방향을 튼 건 극한 수세에 몰렸기 때문이다. NYT에 따르면 지난달 군사봉기 당시 과이도 의장과 함께했던 군부 인사 대부분과 정치인 상당수가 감금됐거나 쫓기는 신세가 됐다. 과이도 의장 본인도 체포되지 않기 위해 안전한 거처 여섯 곳을 전전하며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가 지리멸렬하다 보니 반정부 시위대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과의도 의장의 참모부장인 라파엘 델 로시리오는 “반란 실패 이후, 마두로를 제거하겠다는 목적은 더 멀어져 버렸다”고 털어놨다.

대외 여건도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군사봉기 실패 이후에도 야권은 미국의 군사 개입에 희망을 걸어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베네수엘라 사태는 미국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전쟁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뒷마당’쯤으로 여기는 지역에 군대를 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지지자가 21일 카라카스 국회의사당 앞에서 ‘트럼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나가라’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있다. 카라카스=로이터 연합뉴스

승기를 잡은 마두로 대통령은 야권 압박에 더욱 고삐를 죄고 있다. 전날 수도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앞에서 열린 친정부 집회에 참석해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겨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과이도 의장이 이끄는 국민의회를 무력화하고 정부에 유리한 국면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마두로 대통령의 상황도 녹록지만은 않다. 군사봉기 당시 비밀경찰(SEBIN) 최고 책임자가 반정부 선언을 발표하고 군인 수십 명이 망명을 택하는 등 세력이 약화됐다. 미국의 경제 제재 여파로 석유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카라카스 소재 여론조사기관 델포스의 펠릭스 세이하스 소장은 NYT에 “마두로 대통령은 경제 제재로 본인이 실각하기 전에 과이도 측을 탄압해 파괴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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