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의 악마, 그루밍 성폭력] <상> 심리치료 가장한 범죄의 덫
[저작권 한국일보]상담실 내 '그루밍 성폭력' 사건. 김경진기자

“우울증 치료 때문에 자주 찾았던 상담자가 그런 요구까지 할 줄 몰랐습니다. TV에 그 사람이 ‘심리 상담 전문가’로 나오는 걸 보곤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21일 A(30)씨는 지난 2013년 수도권의 한 심리상담센터를 찾았을 당시 이야기를 털어놨다. 잊고 싶으나 잊혀지지 않을, 악몽 같은 기억이다. 대학 졸업 뒤 직장 생활을 갓 시작했던 A씨는 학창 시절부터 앓아왔던 사회공포증을 치료하고 싶었다. 사회 생활하려면 대인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상담 받을 곳을 신중하게 골라 갔는데, 거기서 “증세가 심하다”며 다른 상담사 B(56)씨를 추천해줬다.

작은 오피스텔에서 마주한 B씨의 방식은, 되짚어 보면 참 교묘했다. 상담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B씨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A씨에 노래 부를 것을 요구하는 등 무리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A씨가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다”며 거칠게 다그쳤다. 거듭되는 강요에 억지로라도 맞추면 태도가 바로 바뀌었다. “잘 했다” “네가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는 칭찬을 쏟아냈다. A씨는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증세가 심하니 B씨에게 가라’던 말을 그 때까지는 더 믿었다.

◇상담 두 달째 ‘악몽’이 시작됐다

이런 식의 상담이 두 달째 이어지던 어느 날, ‘작업’이 시작됐다. B씨는 미리 준비한 각서를 내밀었다. ‘신체 접촉이 있더라도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머뭇대는 A씨를 B씨는 집요하게 설득했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 어루만져야 한다고, 그래야 죽어있는 감정을 일깨울 수 있다고, 반드시 필요한 치료 방식이니 나를 믿고 따르라고.

곧이어 요구는 기괴해졌다. B씨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A씨에게 속옷까지 벗으라고도 했다. A씨의 은밀한 부위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A씨에게 스케치북을 건네며 “거울에 성기를 비춰보며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A씨가 머뭇대고 망설이고 때론 저항할 때마다 B씨는 집요하게 설득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안의 수치심과 마주하고,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란 논리를 반복해서 주입했다. “기혼 여성보다는 젊은 20대 미혼 여성에게 효과가 좋은 방법”이라며 “남자친구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도 했다.

결국 A씨는 상담을 중단했다. 다행이긴 했지만, A씨는 다시 극도의 수치심과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경찰 신고는커녕, 주변에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다음해인 2014년 A씨는 결국 또 다른 상담사 박대령(42)씨를 찾아 정상적인 상담을 받고 나서야 차츰 안정을 되찾아갔다. 박 상담사는 A씨를 처음 봤을 때 “원래 심리적 상처가 있던 데다 폭력적인 치료방식에 노출되다 보니 자기 방어 능력조차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괜찮다지만 A씨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지금도 B씨와 비슷하게 보이는 50대 중반 남성을 만나면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공포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B씨가 심리상담사로 TV에 나올 때면 더 그렇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는 이들은 이미 심리적 약자다. 그래서 피해를 당해도 그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상담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에 B씨는 “내가 선택한 치료법은 모두 근거가 있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성기를 그려보라는 것에 대해 B씨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발행하는 책자에도 나오는 내용”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여성민우회 측 설명은 달랐다. 성기 그리기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알아가기 위해 홀로 해보는 성교육의 한 방법일 뿐 심리치료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민문정 여성민우회 대표는 “다른 사람, 특히 남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성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고 그림을 그린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B씨 주장을 일축했다. B씨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해선 더는 언급을 피하며 “치료에 대해 문제 삼을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상담실의 사이비 교주들… 밀실 속 성범죄

‘그루밍(Grooming) 성폭력’이란 가해자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길들인 뒤 저지르는 성범죄를 뜻한다. 그래서 보통 아동, 미성년자 상대 성범죄를 뜻한다. 하지만 최근엔 심리상담사, 정신과 의사 등이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또한 그루밍 성폭력이란 얘기가 나온다. 멀쩡한 성인이라지만, 심리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점에선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상담실 내 성폭력’ 문제는 2016년 3월 유명 심리상담사 C씨 사건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C씨는 상습적으로 상담하러 온 이들과 성관계를 맺은 뒤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같은 해 6월엔 심리상담센터 대표 D씨가 12명의 여성 내담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2018년 9월엔 ‘사이코 드라마’ 상담치료 기법으로 유명했던 E씨가 내담자를 숙박시설로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범죄 행위가 치료 행위라 주장했다. 역할극을 가장해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거나, 성범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나와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피해자들이 거부하면 “그래서 당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이라 몰아세웠다. “내가 너를 치료해주겠다” “내 말을 따라야 나을 수 있다”고 세뇌시킨 이들 상담사들은 일종의 사이비 교주였다.

상담실 내 성폭력을 저지른 이들은 역할극을 가장한 접촉,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성관계 등을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피해자들은 심리적 약자이기에 집요한 설득과 강요에 무너졌다. 동시에 심리적 약자이기에 피해 사실을 주변에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다. 알려 봤자 자신들만 불리해질 뿐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 둘만 있는 상담실에서 일어난다는 점, 더구나 치료법에 대해 얼떨결에라도 동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이 피해자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상담실 내 성폭력은 겉으로 드러나고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상담사들의 주먹구구 치료, 막을 방법이 없다

상담 전문가들은 상담의 전문성을 해치는 건 사설 상담센터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지금 한국에선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그 즉시 ‘심리상담사’로 변신할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상담관련 자격증은 총 2,400여개(2018년 9월 기준)에 이른다. 임상심리사, 청소년상담사, 전문상담교사 같은 일부 국가 자격을 빼곤 모두 민간 자격증이다. 민간 자격증이라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한국상담학회,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임상심리학회 같은 대표적 학회들이 주는 자격증은 교육받고 시험 치르느라 최소 2년에서 길게는 5년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역문화센터, 평생교육원 같은 곳은 10시간 정도 기본교육만 하고도 자격증을 바로 내 준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상담사가 될 수 있다.

상담센터도 신고만 하면 열 수 있다. 심지어 범죄 전력이 있다 해도 문제없다. 이 때문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심리 상담소를 두고 ‘점집이나 다를 바 없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A씨를 상담했던 B씨 또한 국가자격증은 물론, 국내 주요 학회의 자격증 취득자도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B씨는 수도권 일대에 심리상담센터 여러 곳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이상민 고려대 교수는 50대의 남성 상담자가 20대 여성 내담자에게 옷을 벗도록 하는 B씨 방식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내담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상담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된다는 상담의 가장 기본적인 대전제를 무시한 것”이라며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전문성에서도 상당히 문제가 있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신종치료법’을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전문 지식 없이 과학적 효과도 없는 방법을 자신만의 고유한 치료기법인 양 선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타로 점을 봐 주면서 진행한다는 ‘타로 상담’, 일부러 욕을 하라 부추기는 ‘욕테라피’ 같은 경우다. 한국상담진흥협회장인 권수영 연세대 교수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솔직히 상담사들끼리도 서로의 전문성을 의심한다”며 “상담사의 전문성을 검증하고, 비과학적인 상담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상담 관련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담자와 성적 접촉 자체를 처벌하는 미국

심리적 약자에 대해 상담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전이 현상’이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상대방에게 가감 없이, 일방적으로 다 털어놓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상담사에게 의존하려는 심리가 생겨난다.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감정이나 소망을 털어놓다 보면 자연스레 상담사를 부모 혹은 연인처럼 느끼고 기대려 드는 현상이다. 심지어 상담과정에서 상대방에게 강한 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상담실 내 성폭력은 이런 ‘관계의 불균형’을 악용하는 것이다. 한국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인규 전주대 교수는 “내담자가 사적인 감정을 보일 경우, 그 사적 감정이 상담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전이 현상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상담의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만에 하나 내담자 쪽에서 먼저 성적인 접촉을 요구해 온다 하더라도, 상담사가 이에 응하는 것은 일종의 정서적 착취행위로 엄격하게 금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 한국일보]내담자와 성적 관계에 대한 한국상담 심리학회 윤리 강령.김경진기자

이런 문제점 때문에 심리상담이 대중화된 미국의 경우 상담실 내 성범죄를 중범죄로 간주한다. 뉴욕주, 미네소타주 등 23개 주에서 내담자와 성적으로 접촉한 상담사를 처벌한다. 피해자가 심리적 약자임을 감안, 피해자의 동의 여부는 처벌할 때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성적인 접촉은 애초에 치료법도 아닐뿐더러, 치료법이라는 점에 동의해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따랐다 해도 그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잘못이라 본다는 얘기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이런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상담학회, 한국상담심리학회 등 주요 단체들도 ‘심리학자는 치료적 관계에서 내담자나 환자와 성적 접촉을 가져선 안 된다’는 규정을 만들어 두긴 했다. 하지만 아무런 강제성이나 실효성이 없는, 자체 윤리강령에 지나지 않는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한국일보는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루밍 성폭력'을 취재해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피해를 당하셨거나 주변의 피해사례를 아시는 분들은 webmaster@hankookilbo.com이나 사회부(02-724-2312~4)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한국일보 공식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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