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공

능굴능신(能屈能伸)이란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굽히고 펼 줄 아는 능력’의 뜻이지만 때로는 상황에 따라 ‘비겁하게’ 굽히고 펼 줄 아는 능력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유비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대통령과의 TV 대담 진행자인 KBS 기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점도 있었다. 대통령이 설명하는데 말을 자르고 갑자기 다른 질문하는 일도 거리낌 없었다. 심지어 앞뒤 상황에 대한 인용 없이 ‘독재자’ 운운하며 불쑥 던진 물음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기도 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기자의 무례함과 문맥 없음을 비판하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는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서로 앙앙불락이다. 당연히 물어볼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고 언론의 자유며 사명이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억압되고 있을 때도 그렇게 물었느냐는 반문이다. 그리고 그쯤은 허용될 수 있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전에도 그랬어야 하는 일관성을 보였어야 한다. 그렇게 않았을 때 기회주의자가 된다. 그런 기회주의자들에게 능굴능신의 부정적 의미가 얹힌다.

기회주의자는 자신은 아무런 참여도 없이 방관하거나 심지어 비리의 주체에 아첨하며 이익을 탐하다 세상이 바뀌었을 때 타인들이 피땀 흘려 이뤄놓은 사회적 환경을 마음껏 누린다. 언론자유를 위해 조금도 헌신하지 않다가 언론자유가 주어졌을 때 망나니 칼춤 추듯 마음껏 칼 휘두른 언론인들 얼마나 많은가. 언론인이 아니라 언롱인(言弄人)일 뿐이다. 여전히 기회주의자들이 날뛴다. 그걸 걸러내지 못하는 사회도 문제지만 뻔뻔하게 고개 바짝 쳐들며 마치 자신들이 그런 환경을 만든 장본인인 듯 행세하기까지 한다. 양심과 인성의 문제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립하기 위해 검찰 개혁에 나서며 ‘순진하게’ 검사들과의 대화를 마련했다. 검찰개혁을 위해 판사 출신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고 검찰 내부에서 대통령의 인사를 성토하는 기류가 빠르게 퍼지자 대통령이 평검사들과의 공개대화를 추진했던 것이다. 검사들은 엘리트답게(?) 씩씩하고 당당했다. 그 기개면 검찰개혁이 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TV로 생중계된 이 대화에서 김영종 검사는 노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는 대통령 취임 전에 부산 동부지청에 청탁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왜 검찰에 전화를 했는가.”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박경춘 검사는 고졸인 노 전 대통령에게 대학교 학번을 거론하기도 했다. 박 검사는 “대통령님께서 83학번이라는 보도를 어디서 봤다.”라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생뚱맞았다. 망신을 주기로 작정하지 않고는 그 질문을 할 수도 없거니와 대화의 문맥에도 전혀 관계가 없었다. 무례를 넘어 오만불손의 극치였다.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따위는 개 준다는 태도였다. 오죽하면 대담 후 사람들이 ‘검사스럽다’는 말을 만들어 회자했을까. 그때 참석했던 ‘그 기개당당했던 검사들’이 이후 어떻게 지내왔는지 궁금하다. 내부에서는 검투사로 칭송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조직이니까.

이번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데자뷰(기시감)를 느낀다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 무례함이 집권 2년차에 노출될 정도면 수구의 저항이 노골화된 것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대담자는 당연히 물어야 한다. 이번 대담은 지난 정부에서 ‘당연시했던’ 사전 질문과 의견 조율 없이 전적으로 대담자에 맡겼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전에 조율했던 게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일이었다. 이전에는 ‘애완견’처럼 그리도 싹싹하던 이들이(이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담화나 대담 때 당시 기자들이 고분고분했다는 불평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단독 대담이 아니었으니 굳이 따질 일은 아니다.) 목줄을 풀어주니 달려들어 물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적절하지 않다. 기자는 물어야(問)하고 때론 물어야(咬)한다. 그러나 일단 물었으면 끝까지 들어야(聞)한다. 시청자와 시민은 들어야 할 권리가 있다. 그걸 기자가 독단적으로 자르는 건 인터뷰어로서 자질과 인성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힘은 묻고 따지는 게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공감하며 겸손한 태도를 갖춘 데 있다. 그런 그녀가 악과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맹렬하게 비판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다.

이러쿵저러쿵 말 많지만, 그게 민주주의다. 너그럽게 그리고 인내심을 갖고 봐야 한다. 그렇게 무례하게 물어볼 수 있는 모습이 가능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거면 됐다. 그만큼 발전한 거다. 인성이나 예의는 그 기자의 몫이다. 능굴능신의 긍정적 모습인지, 부정적 모습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니. 그녀는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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