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중도입국 청소년
3만명 넘을 듯… 다문화가족 자녀와 달리 한국어 서툴러
미취학 비율 30% 넘어… 공교육 제도 편입 지원 필요
※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두 가지 측면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자신의 불편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서울온드림교육센터에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 온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교사와 대화하고 있다. 진달래 기자

“외국 사람이 왜 영어도 못해?” 중국 국적인 조선족 지희영(16ㆍ가명)양은 지난해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의사가 물어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저 외국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더니 의사는 지양에게 면박을 줬다. 주변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나이 지긋한 의사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은 지양은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섰다. 지양은 지금도 그 의사 질문을 정확히 모른다.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단어가 영어 의학용어였던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지양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많이 쓰는 외래어를 잘 모른다면서 말했다. “말(대꾸)을 못했어요. (지금도) 너무 화가 나요.”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았던 지양은 지난해 1월 할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다. 지양이 세 살쯤 됐을 때부터 돈을 벌러 한국으로 온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서다. 아빠, 그리고 자매처럼 가까운 고모까지 같이 살게 된다는 게 기뻤지만 한국사회는 지양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건강검진 의사처럼 지양의 서툰 한국어를 듣고는 거리낌없이 차별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어린 지양에겐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한국에서 재혼한 엄마와 같이 살기 위해 지난해 한국으로 온 중국 국적의 박정길(17ㆍ가명)양은 입국 초반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국어를 전혀 못했던 박양은 처음 2, 3개월은 거의 집에만 있었다. 박양은 “말도 못하고 (동네 지리도) 잘 모르니까 무서웠다”고 당시 감정을 털어놓았다. 집에는 엄마와 재혼한 아저씨도 같이 살았는데 잘 모르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 밖에 나가고 싶었지만, 집 밖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자신의 서툰 한국어를 듣고 나서 상대방 표정이나 목소리가 변한 사건 하나하나가 박양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중도입국 청소년 포함 다문화학생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부모님 따라 왔는데, 한국사회 어디도 기댈 곳 없는 중도입국 청소년

지양과 박양처럼 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다가 학교를 다닐 시기(학령기)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중도입국 청소년’이 늘고 있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대개 한국인 배우자와 재혼한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국제결혼가정 자녀 중 외국인 부모 본국에서 성장하다가 들어온 경우를 말한다. 또 외국인 이주노동자(조선족, 고려인 등 포함)가 입국 후 일정기간이 지나 본국에 있는 자녀를 데려온 경우도 중도입국 청소년에 포함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ㆍ중ㆍ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국제결혼가정의 중도입국 청소년 수는 8,320명으로, 2013년(3,065명)의 2.7배로 증가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등 연구기관에 따르면 중도입국 청소년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경우가 30%가 넘고, 외국인 가정 자녀 수(국내외 출생 모두 포함)가 1만5,629명(2018년)에 달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재 중도입국 청소년 수는 3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문화에 익숙한 다문화가족 자녀와는 달리 한국어조차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툰 한국어는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설문조사에서 중도입국 청소년(832명) 3명 중 1명(36.5%)은 최근 삶에 가장 큰 고민이 한국어 실력이라고 꼽았다. 이들 중 절반(49.9%)은 한국에 오기 전 준비한 것이 특별히 없다고 응답했다. 입국 초반 한국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거나 적절한 진로를 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지면서 성인이 됐을 때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 될 확률도 커진다. 중도입국 청소년 지원센터인 서울시ㆍ현대차정몽구재단 서울온드림교육센터의 김수영 센터장은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부모와 함께 사는 것만 생각하고 한국 생활에 대해서는 사실상 준비 없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성인 이주자와는 달리 비자발적으로 한국에 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어는 물론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심리ㆍ정서적으로도 중도입국 청소년은 다른 다문화가족 자녀와는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한국에 미리 와있던 부모와 장기간 떨어져 살아 온 경우가 많고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이 쌓여 있는데다, 예민한 청소년기에 한국 생활을 하면서 겪는 차별로 마음의 상처까지 더해지기 쉽다. 이 때문에 한국사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겉돌게 될 여지가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족 청소년들보다 더 크다. 오성배 동아대 교육학과 교수는 “짧은 인생에서 많은 부침을 겪은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다문화가족 자녀와는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심리ㆍ정서적 부분까지 고려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중도입국 청소년은 다문화가족이나 이주배경청소년(다문화가족, 난민, 미등록아동, 외국인 노동자 자녀 등을 포괄한 용어) 관련 정책을 논의할 때 곁가지 정도의 주제였다.

중도입국 청소년 대상 설문조사. 그래픽=송정근 기자
◇재학생 4명 중 1명 편입학까지 1년 이상 소요

전문가들은 가장 큰 문제로 교육권 보장을 꼽는다. 학교를 다닐 나이인데 학교 가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베트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6월 한국에 온 탐(16ㆍ가명)양은 아직까지도 한국 학교에 편입학을 하지 못했다. 편입학에 필요한 재학(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등을 베트남에서 발급받아 와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엄마는 일을 하면서 새아버지와 사이에서 낳은 남동생도 키우고 있어서 베트남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기 어렵다. 탐양은 “친구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지만 지역사회 센터에서 하루에 2시간 한국어 수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탐양처럼 학교를 다니지 않는 중도입국 청소년 비율은 꽤 높다. 2014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중도입국 청소년(만15~24세)의 37.7%가 취업도 하지 않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공교육 제도 밖에 있는 중도입국 청소년 비율이 약 30% 수준으로 집계됐다.

재학생 중도입국 청소년의 22.8%는 한국에 와서 입학까지 걸린 시간이 1년이 넘었다. 한국어 수업을 먼저 받아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필요 서류를 갖추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중앙정부(교육부)를 통해 증빙서류를 발급 받거나 온라인으로 서류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국가가 많고 직접 해당 학교에 가야만 관련 서류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서류를 마련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그나마 의무교육인 중학교까지는 거주증명만으로도 입학을 허용하되 해당 학생의 학력을 증명할 서류(졸업증명서 등)가 없다면 학력심의위원회를 열어 학생을 몇 학년에 배치할지를 파악하도록 한 제도가 존재하지만 잘 활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강은이 시흥시건강가정ㆍ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센터장은 “입학 신청을 받은 학교장이 학력심의위원회 개최를 신청해야 하지만 번거롭기 때문인지 제도를 아예 모르기 때문인지, 서류가 없다며 입학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어가 미숙한 중도입국 청소년을 받을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탓도 있다. 교육부가 일반 학교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학급’(2018년 190개 학급)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런 학급도 없는 학교는 학생지도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입학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중도입국 청소년 대상 설문조사 - 송정근 기자
◇”NEET 상태 된 중도입국 청소년, 개인 아닌 우리 사회 문제”

서툰 한국어 탓에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학교보다는 돈을 벌겠다고 선택하는 아이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지역 기관 등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1년 이상 한국생활을 하다 보면 상당수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여러 이유로 학교로 복귀가 좌절되기 일쑤다.

부모의 체류자격에 따라 짧게는 90일마다 본국에 다녀와야 하는 등 불안정한 체류지위로 인해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거나, 어려운 가정 형편이나 부모의 무관심 탓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 국적인 뚜언(13ㆍ가명)군은 한국에 온지 1년 가까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어가 서툰 친엄마와 자신의 교육에 관심이 없는 새아빠가 방임한 경우다.

전문가들은 편입학 문턱 낮추기와 한국어 교육 확대, 부모 대상 홍보 및 교육 등 대책부터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낯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소속감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한데 학교가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도입국 청소년들을 공교육 제도 안에 끌어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학업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적극적으로 진로탐색을 할 수 있도록 총체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450개 이상 기관이 연합한 JMD라는 시스템을 통해 이주배경청소년에게 학습, 직업, 사회통합 측면에서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는 전문적인 상담을 진행한다. 베를린 안에만 16곳의 사무소를 두고 있는데 이들은 기독교공동체, 자유공동체, 노동자복지협회 등에 소속돼 있다. 이처럼 다양한 관련 단체 연합과 교류하면서 이주배경청소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사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는다.

이주배경청소년을 지원하는 무지개청소년지원센터의 이해령 초기지원팀장은 “학교를 쉰 경험이 있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혹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살지를 고민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면서 학업과 진로탐색을 이어가도록 지원할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원 체계의 사각지대가 커지면 미래 우리 사회 안의 갈등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오성배 교수는 “30%가 넘는 중도입국 청소년이 NEET 상태로 남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타적 시선보다는 우리 사회와 함께 성장할 잠재력 있는 구성원으로 중도입국 청소년들을 포용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는 조언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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