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전세계 군사비 지출 점유율. 그래픽=김대훈 기자

“우리 영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의지나 군사력을 갖춘 나라는 없다”

호주는 1994년 국방백서에서 자국의 안보 상황을 이같이 평가했다. ‘만에 하나의 외침’ 가능성에 대비하는 게 안보전략의 기본인 만큼 이런 평가는 안이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실제 상황도 그랬다. 작은 도서국들로 이뤄진 남태평양 지역에서 언감생심 호주를 넘볼 수 있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적절한 우호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이익과 안보를 지키는 데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이렇듯 오랜 기간 ‘적성국’이라는 개념 조차 희미했던 호주 안보 정책이 최근 돌변했다. 특히 공격용 잠수함 12척을 건조하기로 한 최근 결정은 국제사회에서 호주 안보 정책이 ‘최소한의 방어’에서 ‘적극적 방어’로 180도 전환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40조원 규모 차기 어택급 잠수함 사업 발진

지난 2월 호주는 프랑스 방산업체 나발(NAVALㆍ옛 DCNS) 그룹과 차기 잠수함 건조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500억 호주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0조원에 달한다. 2차 대전 이후 호주 국방 분야 지출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며, 한국의 1년치 국방 예산(2018년 기준 43조원)과 맞먹는 액수다. 어택(ATTACK)급으로 이름 붙여질 차기 잠수함 건조는 프랑스 핵심 엔지니어들이 호주 남부 오스본(Osborne) 조선소에 파견돼 기술까지 전수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어택급 1번함은 2030년대 초 생산되며, 2050년 무렵 12척 모두 실전 배치될 전망이다.

호주가 프랑스와 함께 건조할 어택급 신형 잠수함은 프랑스의 핵추진 잠수함인 바라쿠다급(5,200톤)의 동체를 디젤 잠수함 형으로 개조해 설계될 예정이다. 특히 ‘작전 반경 확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호주가 보유한 기존 콜린스급(3,000톤)은 시속 10노트(18㎞)로 수상 항해시 2만㎞쯤 갈 수 있다. 반면 어택급 잠수함이 호주 목표 대로 건조된다면, 3만3,000㎞까지 작전 반경이 확대된다.

호주의 크리스토퍼 파인(왼쪽부터) 국방장관, 스콧 모리슨 총리와 프랑스의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이 11일(현지시간) 호주 캔버라에서 공격용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에 관한 전략적 동반자 협정에 서명한 후 교차 악수를 하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팽창은 호주의 해(害)”

이 같은 획기적 작전 반경 확대는 누구를 노리는 걸까. 중국이다. 2017년 11월 호주 외교부는 14년만에 외교백서를 발간했다. 외교백서는 해당 정부의 안보 환경과 대외 전략ㆍ정책을 집약한 공식 문서다. 2003년 이후 내지 않던 백서를 십 수년 만에 발간했다는 것은 외교ㆍ안보 환경에 중대 변화가 생겼다는 뜻인데, 당시 백서에서 호주는 ‘중국의 위협’을 지목했다.

호주는 백서에서 “중국은 영토 분쟁과 관련해 더욱 호전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가치를 둘러싸고 우리와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또 “미국이 아시아의 정치와 경제, 안보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면 중국으로의 주도력 이동이 매우 급속하게 이뤄져 결과적으로 호주에는 해가 될 것”이라며 “향후 10년 내 호주는 역내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안보 환경에서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적’이라고 명시만 안 했을 뿐 중국을 호주 안보를 위협하는 단 하나의 존재로 판단한 것이다.

중국 대륙에서 한참 떨어진 호주가 부산을 떠는 게 아닐까 싶지만, 중국 견제 필요성은 절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남중국해를 야금야금 잠식하며 커지는 중국의 해ㆍ공군 전력은 호주로서도 두고만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박재적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남중국해 내 중국의 각종 인공 섬과 활주로가 놓인다는 것은 중국 해ㆍ공 전력의 급유능력이 급상승한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남중국해를 거점으로 호주 등 남태평양을 언제든 때릴 수 있다는 점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공습을 받았던 호주 입장에선 이론에만 머물지 않는 실제적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남태평양 지역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에서도 호주는 중국에 뒤지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Lowy institute)에 따르면 중국은 2006~2016년 사이 17억 8,000만 달러를 차관 형식으로 남태평양 도서국에 지원했다. 반면 호주의 원조는 악화된 재정으로 의료보건이나 교육 등 간접 인프라 지원에 머물고 있다.

신형 잠수함 이외에도 호주는 재빠르게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연합전선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저지를 위한 미국의 ‘인도ㆍ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구상을 적극 지지하고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미국, 일본, 인도와 함께 소위 쿼드 블록(quad blocㆍ4각 동맹)’을 형성한 것이다.

특히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일본과의 연합훈련이다. 지난달 9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호주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는 올 7월 홋카이도(北海道) 지토세(千歲) 기지 주변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일본 본토에서의 양국 공군의 연합훈련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ㆍ일ㆍ호주 세 나라 역시 2007년 큐슈 인근에서 처음 합동훈련을 실시한 이후 이미 10년 넘게 공해전력 간 합을 맞춰오고 있다. 약 10여 년 뒤부터 전력화 될 것으로 보이는 호주 어택급 잠수함의 작전 반경은 남중국해를 아우르고도 남는다. 김대영 국방안보포럼(KODEF) 사무국장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호주 입장에서 미국을 받쳐 줄만한 해군력을 키우기 위한 방편이 어택급 잠수함”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나발(Naval) 그룹의 핵추진 잠수함인 바라쿠다급(5,200톤) 잠수함. 호주가 프랑스와 계약을 맺고 건조할 차기 잠수함(어택급)은 바라쿠다급 잠수함 동체 디자인을 토대로 건조될 예정이다. 나발그룹

’물 새는 잠수함’ 이번엔 극복할까

물론 어택급 잠수함이 중국을 얼마만큼 괴롭힐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없지 않다. 실패한 잠수함의 대명사인 콜린스급의 전례가 반복될 가능성에서다.

당초 어택급 잠수함 건조 사업은 일본과 프랑스, 독일 간의 3파전이었고, 일본이 이 사업을 따낼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었다. 연합작전 능력을 증강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해당 국가 간 방산협력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호주와의 직접적 군사협력 관계가 없는 반면 일본의 경우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공동으로 맞서고 있다는 실질적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프랑스가 선정된 것은 호주의 강성 노조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호주 군함 도입은 대부분 해외 기술력을 도입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면허 생산 형태로 이뤄져 왔다. 성능 보장 측면에선 완성된 군함을 들여오는 게 낫지만, 일자리 창출을 앞세운 조선업계 강성 노조의 입김이 워낙 셌다. 기술력과 인프라가 부족한데도 노조는 일감 확보를 위해 여러 조선소가 군함 건조를 나누어 진행했고, 방만한 경영 탓에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대표적인 게 콜린스급 잠수함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일감 확보를 위해 노조가 무리하게 장비 국산화를 추구하다 보니 기술자문인 스웨덴 측의 경고도 듣지 않고 건조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잠수함이라고 보기 민망할 정도의 큰 소음에, 동력 계통의 잦은 고장은 물론 선체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는 ‘황망한 결함’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어택급 역시 콜린스급과 마찬가지로 해외 기술 자문을 받아 호주 조선사들이 건조한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수중 전력을 갖추려면, 호주 정부가 국내 방산기업들부터 장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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