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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 박쥐 스타일로 변해야

입력
2019.04.3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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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워룸에서 최진영 교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워룸에서 최진영 교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거미는 끈적끈적한 실을 내어 그물 같은 거미집을 쳐 놓고 파리나 잠자리 같은 벌레가 걸리면 잡아먹는다. 즉 거미는 정교한 그물을 만들고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생존한다. 반면 박쥐는 전파를 사방으로 보낸 후 공중의 여러 물체에 부딪친 뒤 되돌아오는 전파를 분석하여 그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청각계를 이용해 능동적으로 먹이를 찾는다.

전통적으로 산업사회의 조직들은 영리 조직이나 비영리 조직을 막론하고 거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왔다. 정해진 장소에 나름대로의 거미집을 꾸며 놓고 고객들이 정해진 시간에 거미집을 찾아 먹이가 되기를 기다려 온 것이다. 예를 들면, 여전히 대부분의 식당은 고객들이 선호하는 위치에 식당을 차리고 고객들이 영업시간에 맞춰 찾아오면 정해진 메뉴로 대응하는 영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소재가 됐던 한국인 요리사 로이 최는 멕시칸 타코에 한국식 바비큐를 넣은 ‘고기(Kogi)’라는 퓨전 음식을 개발한 후 전통적인 식당을 벗어나 푸드트럭이라는 새로운 음식 유통 형식을 도입했다. 또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객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해서 구전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고객들의 위치와 니즈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찾아감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에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특히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사물인터넷을 이용해 다양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수집된 빅데이터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하여 고객에게 맞춤형으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새로운 흐름이 됐다. 네이버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편집한 맞춤형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때 빅데이터 분석에 의해 추출한 고객의 선호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초기 화면에서 추천할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제시한다. TV홈쇼핑 기업들도 시청자들이 채널을 변경하다가 우연히 자신들의 채널에 머무르게 되는 것을 바라기보다는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 짧은 동영상 커머스 콘텐츠를 제작하여 능동적으로 고객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구매로 유도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지능정보사회에서 생존하고 발전해야 하는 조직들이 불가피하게 ‘박쥐 스타일’로 변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가장 변화에 민감해야 할 우리나라 대학들은 여전히 거미의 모습에 안주하고 있다. 오프라인 기반의 캠퍼스에서 교육 수요자의 니즈가 아닌 공급자의 관점에서 연구나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대학 진학을 원하는 10대 후반의 잠재 고객을 기다리는 모습은 거미집에 의존해 수동적으로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의 스타일과 매우 흡사하다.

물론 교육부의 대학 규제가 하루아침에 없어질 것도 아니고 등록금을 미국 대학들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학 법인의 투자가 획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오랜 관성에 의지해 온 교직원들의 마인드가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학령 인구는 감소하는데 새로운 기술과 교육 내용에 기반을 둔 대학 밖의 혁신적인 대안 프로그램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고 거미처럼 있다가 서서히 소멸할 수는 없다. 우선 적극적으로 대학의 새로운 고객을 찾아 나서야 한다. 고령화 시대에 재교육이 필요한 중년들이 새로운 고객일 수도 있다. 기업이나 정부가 정말 원하는 지식이나 인재가 무엇인지를 예민하게 파악해서 연구와 교육에 반영하는 것도 시급하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모두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부적으로 학문이나 학과의 벽을 허물고 대학의 역량을 모아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거미 스타일을 고수하며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다가 소멸할 것인가, 아니면 박쥐처럼 고객들을 능동적으로 파악하여 대응할 것인가. 대학들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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