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묘 돌보기 등 560여쪽 고양이 백과사전 펴내 
박정윤 수의사는 “동물과 가족이 된다는 건 감정으로만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정신적, 의료적, 물질적으로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아이 키우는 한국인라면 누구나 한 권쯤 갖고 있을 전설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1997년 소아과 전문의 하정훈씨가 쓴 책 ‘삐뽀삐뽀 119 소아과’다. 감기, 피부병, 소화불량, 설사 등 아이들이 쉽게 걸리는 질병의 증상별 대처법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해 20여년 간 부모들의 ‘필수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의 고양이판이 최근 출간됐다. 박정윤 수의사가 쓴 ‘키티피디아’(어떤책 발행)로 560여 쪽에 걸쳐 구강·코·눈 관리, 구충과 심장사상충 예방법, 케이스별 건강검진 추천항목, 노령묘 돌보는 법 등 고양이를 키우면서 겪는 상황별 대처 요령을 소개한다. 15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서 만난 박 수의사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겪는 고민에 구체적으로 답하려 했다”고 말했다.

박 수의사가 유명세를 탄 건 10년 전 SBS ‘TV 동물농장’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이후 ‘와일드 썰’, ‘하하랜드’ ‘굿모닝 FM’ 등 방송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반려동물 전문 수의사로 이름을 알렸다. “병원 밖을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시작한 방송 출연은 평소 수의사라도 동네 동물병원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다양한 동물을 경험하는 등 자기성장의 기회가 됐다. “방송 출연을 하면서 또 알게 된 건,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동물을 키운다는 사실이에요. 소득, 집 크기부터 가족 구성원, 연령, 사고방식이 다 다르죠. 특히 어르신들이 동물을 많이 키워요.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도 힘들고, 동물을 사람처럼 대하거든요. 개가 설사하면 정로환을 갈아 먹이기도 하는데, 이러면 개는 장막이 다 쓸려 내려나갑니다. 이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수년 전 경기도에서 구조, 수술한 고양이 '요미'를 쓰다듬는 박정윤 수의사. 요미는 귀가 녹을 정도로 전신에 화상을 당했지만 사람을 잘 따른다. 홍윤기 인턴기자

박 수의사는 반려동물로서 고양이 인기가 급속히 올라간 시기를 국내 1인가구가 눈에 띄게 늘어난 2000년대 초반으로 본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면서 위계질서가 강한 개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있는 고양이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강아지를 키우는 것보다 쉽다는 편견도 작용했다. 예컨대 산책을 안 시켜도 되고, 짖지 않고, 밥을 때맞춰 주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에 모래만 부어 주면 알아서 용변을 본다는 인식이다. 박 수의사는 그러나 “이보다 쉬운 반려동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양이와 동거하면 사람도 고양이도 모두 불행해진다”고 경고한다. “제일 흔한 실수가 고양이 한 마리만 키우다가 무작정 ‘둘째’를 들일 때에요. 고양이는 영역 중심의 동물인데, 주인이 자기 구역에 낯선 경쟁자를 밀어놓고 사이 좋게 지내라는 거거든요. 견제 시기에 안 좋은 계기가 있으면 영영 사이가 틀어질 수 있습니다.”

책은 2016년 5월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진행한 동명의 팟캐스트가 시발점이 됐다. 이 방송을 들은 출판사가 인세 전액, 출판사 수익금 일부를 동물관련 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집필을 시작했다. 길고양이를 입양한 PD, 가정 분양으로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아나운서, 구조한 고양이와 누나가 키운 고양이를 데려온 칼럼니스트 등 “집사 연차와 고양이 입양, 성향이 다 다른” 제작진, 청취자들의 고민을 소개하고 박 수의사가 상황별 대처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고양이도 사람처럼 같은 품종이라도 부모나 환경, 나이에 따라 성격이 다 다르다”고 말했다. ‘개냥이(개+고양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거실에 배변을 보는 고양이도 있다. 박 수의사가 고민 사례별로 원인과 대응 요령을 소개하는 이유다.

박 수의사 역시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운다. ‘노령동물 전문병원’이란 수식어가 붙은 박 수의사의 동물병원에도 고양이 14마리가 산다. 그는 “처음 병원을 열었을 때만해도 노령전문이 아니었는데, 오래 운영하면서 나이 든 동물, 떠나 보내는 동물이 점점 많아 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을 통해 구조, 수술한 동물이 분양을 받지 못해 직접 키운 경우도 있다. 지금도 가끔 누군가 동물병원 앞에 늙고 병든 동물을 버리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 나이 들어 털 빠지고 볼품 없을 때도 보살필 자신이 있는지 반드시 생각하셔야 합니다. 동물 처음 키우는 분들께 꼭 적금 들라고 권해요. 열 살까지는 아플 일이 거의 없는데 이후부터 관리 해주셔야 해요. 그런 부분을 예상하고 준비하셔야 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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