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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역사적 기념물에 그린 그라피티, 처벌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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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역사적 기념물에 그린 그라피티, 처벌해야 할까요?

입력
2019.04.24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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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청계2가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에 정태용 작가의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이혜미 기자
서울 중구 청계2가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에 정태용 작가의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이혜미 기자

국내 그라피티 작가 정태용씨는 지난해 6월 서울 중구 청계천변 베를린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렸다가 민ㆍ형사 재판을 동시에 받는 신세가 됐다. 이 장벽은 독일 베를린시가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며 2005년 실제 베를린 장벽 일부를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다.

정 씨는 당시 자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 현재와 앞으로 미래를 위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나름의 의미를 담은, 온전한 예술 행위였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역사적 기념물을 ‘훼손’했다는 비난의 여론까지는 피하진 못했다. 장벽 소유권을 가진 서울시 역시 정씨를 상대로 형사처벌을 요구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정씨는 현재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강제조정에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를 남긴 것이 죄가 되는지 시민들의 판단을 받겠다며 형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정씨처럼 우리나라에서 그라피티는 기본적으로 불법낙서로 간주돼 재물손괴죄와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처벌을 받는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말 서울시가 정 씨에게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그라피티, 예술인가 낙서인가’라는 토론회를 열고 그라피티를 예술로 봐야 한다는 학계 의견을 전달했다. 오경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그라피티가 예술인지 낙서인지는 소수의 의견으로 쉽게 판단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서울시는 처음부터 정 작가의 그라피티를 낙서로 판단했다”며 “베를린장벽에 그려진 그라피티의 예술적·사회적 가치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청계2가에 설치된 베를린장벽. 이혜미 기자
서울 중구 청계2가에 설치된 베를린장벽. 이혜미 기자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라피티를 모두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경우 ‘아무 곳에나 낙서를 해도 처벌 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태원·홍대 등에서도 그라피티가 늘어나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며 “그라피티는 엄연한 범죄 행위로 앞으로 일어나는 공원 내 시설물 훼손에 대해 더욱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그라피티가 불법인지에 대한 논란은 외국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다만 유명한 그라피티 작가가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고 현대 예술분야의 하나로 평가 받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공공장소에 그라피트를 그리는 것에 대한 인식은 우리보다 더 관대한 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의 한 그라피티 작가는 “무조건 처벌만 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유명한 그라피티 작가가 나올 수 없다”며 “정 작가 사건을 계기로 그라피티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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