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어떻게 벌었나” “믿을 만한가” 정보요원이 지인에 평판 조회까지
인도네시아 이민청 건물 앞에 주차된 이민청 단속 차량. 체류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외국인에겐 두려운 대상이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국가정보원(BIN) 요원 두 명이 최근 느닷없이 자카르타 한인 이모(66)씨를 찾아왔다. “어떤 사이인가” “친한가” “믿을 만한가” “집은 어디인가” “돈은 어떻게 벌었다던가.” 요원들은 이씨의 지인 박모(59)씨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씨는 사무실 근처 현지 전통요리 파당(Padang) 음식점에서 요원들을 대접하고 보낸 뒤, 박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청했나 보네요.” 수화기 너머 설명에 끄덕끄덕하던 이씨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원들에게) 잘 말해뒀습니다.”

박씨는 인도네시아 국적을 따기 위해 현재 심사를 받고 있는 한인 4,000명 중 한 명이다. 이날 BIN 요원들의 방문은 일종의 정보기관 평판 조회다. 요원들은 박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평소 안면이 있던 이씨를 택했다. 이씨는 “저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인도네시아 국적을 받았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국적 취득이 증가세지만 마음먹는다고 아무나 딸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용은 최소 1,600만~2,000만원(2억~2억5,000만루피아)이 든다. 최종 낙점될 때까지 일러도 1년, 늦으면 2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수많은 허들을 넘어야 하는 ‘장애물 경주’와 같다. 허들의 높이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우선 인도네시아에서 10년 이상 살아야 한다. 1년짜리 장기체류비자(KITAS)를 5번 갱신한 뒤 일종의 영주권인 ‘5년 체류허가증(KITAPㆍ키탑)’을 받아야 국적 취득 신청이 가능하다. 최근엔 정관상 ‘회사 등재이사 또는 주주’ 직분을 3년 이상 유지한 사람만 KITAP을 신청할 수 있도록 기준이 깐깐해졌다. 일반 직장인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국적을 따기 위해 법인을 만드는 경우 2억원이 든다고 알려졌다. 현지 법률사무소인 팍(P.A.K) 로펌의 김민수(43) 변호사는 “국적 변경 관련 규정이 수시로 바뀐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이민청에 서류가 접수되면 법무부 노동부 국세청 등 관련 부처 협의가 진행된다. 이어 관련 자료는 BIN과 국세청에 넘겨진다. 평판 조회와 현장 방문, 본인 인터뷰, 재산 실사, 세무 조사 등의 과정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범죄 경력, 세금 납부 이력도 검증한다. ‘인도네시아 국민으로서 국가를 위해 경제적으로 국익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여기에 속칭 ‘빽(백그라운드)’이 있으면 더 유리하다

실제 BIN의 평판 조회를 받은 박씨는 외교부 이민국 국세청 법무부 경찰 행안부 등 관계자 7명 앞에서 30분 넘게 면접 아닌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했다. 인도네시아 국가를 무반주로 불러야 했고, 인도네시아의 다섯 가지 건국 이념인 ‘판차실라’를 낭독해야 했다. 그는 “반주도 없이 국가를 부르려니 식은땀이 났다”고 말했다.

최종 결재는 대통령이 한다. 다만 현지인과 결혼한 사람은 법무부 장관 결재로 끝난다. 까다로운 과정 때문에 신청자의 10% 정도만 국적을 취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996년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한 서모(61)씨는 “인도네시아 국적을 따려는 본토 중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예전보다 절차가 까다로워지고 있다”라며 “이로 인해 한국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3% 정도다. 최근엔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인들이 사업상 목적으로 인도네시아 국적을 따려는 추세다.

인도네시아 이민청 전경.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주로 재산상, 사업상 편의 때문에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하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 인도네시아 여권으로는 다른 나라의 비자를 받기가 무척 어렵다. 최모(54)씨는 “인도네시아 국적으로는 해외 여행을 다니기 힘들고 특히 미국은 못 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모(56)씨는 “인도네시아 국적 취득 후 한국에 체류하면 외국인거소증명서를 발급받게 되는데, 국내 체류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많아져서 그런지 체류 연장에 불편한 점이 많다”라며 “체류 연장 갱신 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늘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국 정부에 서운하다는 얘기들도 흘러 다닌다. 평생 인도네시아에서 일하고 노후만이라도 고국에서 지내려고 해도 세금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모(66)씨는 “해외에서 번 돈을 가져가면 외화 획득이고 결국 고국에 묻히기 전에 다 쓸 돈인데, 세금을 왕창 물리면서 죄인 취급을 하니까 은퇴를 하고도 굳이 인도네시아 국적을 따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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