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 부자정당의 反시장주의 잣대
진보 코스프레 정당의 내로남불
국회 열어 청문회 개선 지혜 모아야
자유한국당이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에 반발해 장외투쟁에 나섰다. 지금 국회 인사청문회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정책 역량과 전문성을 따지기보다 흠집 내기, 망신 주기로 변질된 지 오래다. 국회로 돌아와 청문회 제도 개선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진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거리에서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며 청와대로 행진하는 모습. /홍인기 기자

시장경제의 바이블로 꼽히는 ‘부자가 되는 과학적 방법’의 저자 월러스 워틀스는 “부자가 되는 것은 권리”라고 말한다. 인간의 행복추구권처럼 신이 부여한 권리라는 것이다. 부자가 되려면 꾸준히 일관되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부지런히 좋은 주식을 골라 투자하고 목 좋은 곳의 건물을 사들이는 따위의 일이다. 특히 국가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들의 자본 조달 통로인 증권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돈을 장롱에 쌓아두지 않고 주식에 투자하는 건 애국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은 미국식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정당이다. 시장경제가 뭔가. 탐욕적인 인간이 자유 경쟁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는 체제다. 미국과 한국당의 인연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해 손쉽게 친일 관료를 동원했다. 친일파와 미국 유학을 다녀 온 ‘머리 까만 미국인’이 70여년 득세해 온 배경이다. 한국당이 보수(保守)해야 할 가치가 ‘기득권’과 ‘미국’이니, 미국식 시장경제를 맹신하는 게 당연하다.

진보 코스프레를 해 온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투기와 쪼개기 증여, 과다 주식 보유를 비판했다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한국당은 빚 내서 집 사라고 적극 권했던 정당이다. 경기가 나쁠 때마다 건설 부양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했고 개미 참여를 유도하는 증권시장 선진화를 부르짖었다. 세금을 투자 소비 등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폭탄’에 비유하며 부자 감세를 옹호했다. 그러니 반(反)시장주의 잣대를 들이대는 청문회 행태가 생뚱맞을 수밖에.

자기 소득으로 열심히 주식 투자하고 집 많이 사들인 게 그리 욕먹을 짓인가.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나 최정호 국토부장관 후보자의 쪼개기 증여는 한국당 의원처럼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흔해 빠진 ‘절세 테크닉’ 아니던가. 한국당 의원 평균 재산은 45억1,841만원(공시지가 기준). 우리 국민 가구당 평균 재산 3억8,000만원의 12배나 된다. 다주택자도 2명 중 1명꼴이다. 반칙과 뇌물로 재산을 모았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투기요 편법이라며 공격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한국당에 버금가는 부자 정당인 민주당의 내로남불도 꼴불견이다. 야당 시절에는 한국당과 똑같은 잣대로 정치 공세를 펴더니, 홍종학 최정호의 쪼개기 증여는 ‘합법적 절세’요 이미선의 과다 주식 보유는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투자’로 둔갑했다. 위법만 아니면 용인돼야 한단다. 공직에 대한 인식이 이 모양이니 “여러분(기자)도 쓴 기사대로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 “남편이 전부 알아서 한 일”이라는 낯뜨거운 얘기가 나올 수밖에.

공자는 논어 술이(述而)편에서 ‘옳지 못하면서도 부귀한 것은 내게 뜬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고 했다. 떳떳하게 부자가 되라는 말이다. “진보의 길은 험하고 고달프다. 자신을 앞세우거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걸 자제해야 한다. 늘 낮은 곳을 향하는 자세로 겸허하고 또 겸허해야 한다. 윤리의식도 철저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언급한 진정한 진보주의자의 자세다. 말이나 글로만 진보연하는 나 같은 먹물에겐 벽이 느껴지는 말이다. 말과 행동이 완벽히 일치할 수는 없어도 염치가 있다면 말의 절반이라도 닮으려 노력해야 한다. 합법적이니 괜찮다고 강변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은 선출직 고위공무원이다. 예산과 법률을 통제해 국가를 지배하는 막강한 자리다. 임명직에 비해 도덕성을 등한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의 청문회 잣대로라면, 수십억대 재산 형성 과정이 떳떳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국민 눈높이’라는 것도 정치권이 조장한 측면이 강하다. 야당 입장에선 장관 후보자가 많이 낙마할수록 국정 동력을 떨어뜨려 집권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한국사회 부패의 뿌리가 깊은 탓인지 부자 공직자에 대한 국민 거부감이 유독 크다. 이런 국민 정서를 정치 공세의 무기로 악용하는 것이다. 여야의 정략적 이기심 탓에 나라가 멍들어가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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