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참석, 거리에 앉아 규탄발언을 듣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19-04-20(한국일보)

세월호 참사 5주기와 관련해 자유한국당 전ㆍ현직 의원이 내뱉은 발언에서 금도, 양식, 상식은 찾아볼 수 없다. 보편적 이성의 영역을 넘는 언어의 파편들은 5ㆍ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발언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세월호진상조사특위가 설치됐으나 이를 방해하고 국가기관을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하기도 했던 행태도 이러한 발언과 무관치 않다. 이러한 반지성의 척박한 인식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사회적 재난과 참사에 대한 동시대의 구성원으로서 공감과 연대는커녕 저주와 적대, 혐오가 지배적인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5ㆍ18 망언의 당사자들에 대한 한국당의 징계는 당원권 정지 3개월과 경고에 그쳤다. 징계라기보다는 공식적 면죄부나 다름없는 처사다. 한국당이 사회정치적 사건을 대하는 인식의 일단이 드러난 일로, 그들의 관점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당은 5ㆍ18 진상 규명 조사위원회 구성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역사 해석과 현상 인식에서 이념의 잣대가 동원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념은 국가와 사회를 보는 하나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백히 보수나 진보의 이념과 무관한 사회적 이슈에서 수구와 반인간적 논리가 보수로 위장하여 정치적 지지를 흡수하려는 퇴행은 한국 정치의 고질화된 중병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현대사에서의 좌우 대립과 반공국가의 성립 등과 연관이 있으며,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사건ㆍ사고에서도 어김없이 반지성의 수구 논리는 작동한다.

5ㆍ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이 그렇고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태도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일단의 막말들은 이러한 현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 현장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고,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세금을 축내는 세금 도둑’에 비유하며,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폄하한 일단의 발언들이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실종, 사회적 유대의 상실, 집단이기주의의 부박한 행태들은 갈가리 찢긴 한국사회의 단면들이다. 세월호 참사는 맹목적 이익과 사익의 추구, 성장만능주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혼돈에 기인하는 짬짜미 구조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 등이 집약된 국가적 재난이었다. 그러나 이후 사실을 규명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2기 특조위의 구성 자체에 협조하지 않는 이른바 ‘보수정당’의 업무 해태가 진상 규명을 가로막고 있다.

세월호 참사 5년이 지나도록 책임자 처벌은커녕 침몰 원인도 밝혀내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과 사회의 무감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평등과 정의의 가치가 담론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회, 정치적 혐오를 토양으로 경제적 부와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치적 낭인들, 이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반지성과 반정치의 굴레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한국은 2류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다당제의 외형을 갖추고 있으나 적대에 기초하는 거대 양당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적대적 공존에 기대는 정치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당체제의 변화가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단초를 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고,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된다 해서 근원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정당이 병렬적으로 존재하고 이념과 가치가 다른 정당들의 타협 없이 정치가 운영되지 않는다면 정당들의 연대는 필요조건이다. 이른바 연합정치다. 이러한 구도에서 극단적 발언과 적대를 동원한 편견의 증폭은 기생할 수 없다. ‘망언’이 나오지 않는 지성의 고양 못지않게 환경을 바꾸는 작업 또한 긴요하다. 결국 정치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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