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이승만의 독립정신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월요일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유진오의 ‘헌법기초 회고록’이 소개됩니다.

1945년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이승만의 일성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두 가지 여론조사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하나는 1947년에 이뤄진 조사다. 당시 미군정청은 서울에 거주하는 1,000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이승만 43.9%, 김규식 18.5%, 여운형 17.5%, 김구 15.2%였다. 다른 하나는 2008년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이해 이뤄진 조사다. 경향신문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박정희 45.1%, 김구 28.3%, 김대중 4.8%, 정주영 4.6%, 이승만 3.6%였다.

두 조사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인물은 이승만이다. 여론조사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승만의 경우는 그 진폭이 대단히 크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던 걸까. 오늘날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비판자들은 이승만을 통일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인물로 파악하는 반면, 옹호자들은 독립과 번영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한다.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에서 이승만의 활동은 독립운동과 정부 수립, 그리고 제1공화국에 걸쳐 있다. 이승만 생애의 끝에는 4월혁명이 위치한다. 1960년 4월혁명으로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했다. 역사학자 서중석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이승만정부는 처음부터 반공을 내세워 비판세력을 탄압했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끝내는 2차에 걸친 마산의거를 배후에 공산당이 있는 것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 4월혁명은 (...) 모든 퇴영적인 것, 또 침체되고 암울했던 1950년대로부터 벗어나려는 운동이기도 했다. 4월혁명으로 한국인은 (...) 일종의 정신혁명을 가졌다.”

해방 이후 고국에서 만난 이승만 박사와 김구 임시정부 주석이 시국담을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승만의 삶과 독립운동

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다. 역사학자 정병준은 이승만의 생애를 여섯 시기로 구분한 바 있다. 첫 번째 시기가 세 살 때 서울로 이사와 전통적 유학 교육을 받은 때였다면, 두 번째 시기는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해 근대 학문을 배우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때였다. 그는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협회에 참여해 강연과 신문 논설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1899년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5년 7개월의 감옥 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1910년 미국에서 출간한 ‘독립정신’을 집필하기도 했다.

세 번째 시기는 미국에서 공부한 때였다. 1910년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이었고, 프린스턴대출판부에서 출간됐다.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그는 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사회 활동을 벌였다. 네 번째 시기는 1912년 하와이에 망명한 후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때였다. 그는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대통령을 맡았고, 임시정부 승인과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외교 활동을 벌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그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승만은 여러 저작들을 남겼다. 앞서 말한 ‘독립정신’,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 외에 ‘한국 교회 핍박’(1913),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 1941) 등이 있었고, ‘청일전기’(1917)라는 번역서도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한문과 영어에 동시에 능했다. 그가 만든 ‘신영한사전’(1904)이 있었고, 그가 쓴 한시들은 ‘체역집’(1961)이란 제목으로 묶여 나왔다.

‘독립정신’은 이승만이 옥중에서 쓴 52편의 논설을 모은 저작이다. “책의 강령을 자세히 살펴보면 맥락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모두 다 ‘독립’이란 두 글자를 주지(主旨)로 삼고 있다”라고 쓴 서문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문명ㆍ정치ㆍ외교를 포괄하는 그의 독립 사상을 전달하는 저작이다.

정치학자 김용직은 ‘독립정신’이 갖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독립정신’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계열의 개화사상에 입각하여 당시 대한제국의 정치외교적 문제를 총정리한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승만의 사상은 민권론에 기반한 구국론을 잘 전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맡을 만큼 일제 강점기 초기 독립운동에서 이승만이 안창호와 함께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에 맥아더 장군(왼쪽), 이승만 대통령(가운데), 윤치영 내무부장관이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이승만과 제1공화국

이승만의 생애에서 다섯 번째 시기는 광복 직후 귀국해 활동한 때였다. 좌우파 사이에, 우파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진행됐던 당시 그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모색해 1948년 8월 15일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을 맡았다. 마지막 여섯 번째 시기는 그 이후 제1공화국 시대였다. 그는 한국전쟁을 치렀고 전후에는 민주주의를 억압해 일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4월혁명으로 그의 시대는 마감했고, 1965년 망명지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짧은 글에서 이승만의 삶과 정치를 모두 평가하기는 어렵다. 앞서 말했듯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극단적으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유영익은 말한다. “이 대통령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간 집권하면서 자신이 해방 전부터 오랫동안 준비했던 건국 구상에 따라 정치, 외교, 군사, 경제, 교육, 사회 및 문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실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달성했으며 (...)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 된 다음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 노력했음을 보여주었다.”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삼웅은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시장경제를 살리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 원조물자는 소수의 권력자와 기업인들의 배만 불렸다. (...) 자신의 권력독점을 위해서는 몇 차례나 헌법을 헌신짝 버리듯 바꾸고, 각급 선거를 경찰ㆍ관권을 동원하여 조작했다. 헌법은 이승만 장기집권의 장식물이 되고, 선거는 3ㆍ15부정선거가 말해주듯 선거라는 이름의 협잡이었다.”

이승만이 이끈 제1공화국에 그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부 수립, 농지개혁,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은 성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실정은 결코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 반공과 독재를 통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의 최후와 사후 평가가 초라한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이승만은 (...) 독립운동 당시부터 그 자신을 최고 정점으로 한 정치운동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 해방 후 귀환한 뒤에도 그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정당 통합운동을 펼쳤으며, 자신이 최고 정점에 서지 않을 어떠한 국가 건설의 대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정치체제의 건설에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 이념과 제도의 원칙보다는 그의 ‘국부적인’ 존재의 확인이었다.”

이승만에 대한 정치학자 김영명의 평가다. 제1공화국은 1인 지배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였다.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독립운동가가 바로 그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치가로 삶을 마감하게 된 것은 우리 현대사의 한 비극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 4월 하야를 선언한 후 이화장을 떠나는 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주공화국의 미래

이승만의 집권 시대를 제1공화국이라 부른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최초로 선포한 것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서였다. 현재 헌법의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 역사의 거울이 우리에게 비추어 보이는 이때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채용하기로 30년 전부터 결정하고 실행하여 온 것을 또 간단없이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연설한 정부수립 기념식사의 한 구절이다. 민주주의는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마스터 프레임이자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었다.

“아름다운 강산에 아름다운 나라를, / 아름다운 나라에 아름다운 겨레를, / 아름다운 겨레에 아름다운 삶을 / 위해, / 우리들이 이루려는 민주공화국. (…) 우리는 아직 (…) 우리들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 혁명이여!”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4월혁명을 기린 시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의 한 구절이다. 지난 100년 동안 그랬듯이, 국민이 주인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공화국은 새로운 미래 100년에서도 의당 제1의 가치가 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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