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에서 수컷 조류들은 암컷의 눈에 들기 위해 미적 자원을 한껏 활용한다. 수컷 어깨걸이풍조는 암컷에게 가슴깃털을 부챗살처럼 펼쳐 스마일 이모티콘을 보여 준다. 수컷 새틴바우어는 암컷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을 장식하는 데 공을 들인다. 수컷 검은배유구오리의 최고 무기는 화려한 성기다. 다섯 마리의 성숙한 수컷 푸른 마나킨 그룹이 녹색 암컷(맨 왼쪽)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협동 묘기를 선보인다.(시계 방향으로) 동아시아 제공

화장하는 남자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피부 트러블을 가리는 비비크림은 기본에 마스카라에 립스틱까지, 남자들도 ‘풀 메이크업’을 하는 시대다. ‘남자가 별짓 다한다.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에 따르면, 화장하는 남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리고 올바른 인간 진화의 방향이다.

다윈은 “수컷이 화려하게 몸을 치장하는 이유는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라는 이론을 150년 전 제시한 바 있다. 생존이 아닌 번식을 위한 투쟁인 ‘성 선택(Sexual Selection)’의 개념을 통해서다. 남성이 선택을 ‘당한다’는 발상만으로 불쾌해서였을까. 보수적인 학계는 지금껏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 이론을 받들어 왔다.

미국의 저명한 조류학자인 리처드 프럼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는 달랐다. 그는 30년 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사례를 총동원해 다윈의 성 선택 이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살아남는 데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이는 ‘아름다움’이 실은 종족의 번식을 떠받치고 진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이었다는 얘기다.

자연에선 화려하게 치장한 수컷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제 몸통보다 2, 3배 더 크게 부풀린 공작 수컷의 현란한 꽁지깃의 사례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겠다. 푸른 마나킨 새는 암컷에 비해 유독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버빗원숭이의 푸른 음낭은 화려한 색감을 뽐낸다. 거추장스러운 데다 적의 눈에 잘 띄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는데도 수컷들이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암컷의 ‘간택’을 받기 위해서다.

‘아름다움의 진화’의 저자 리처드 포럼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는 ‘새 덕후’다. 30년 간 전 세계를 누비며 관찰한 사례들을 모아 찰스 다윈이 주장한 성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했다. 동아시아제공

저자는 수컷의 ‘미적 진화’는 암컷의 성적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향한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공격적 성향이 강했던 바우어 새의 진화 과정은 명확한 예다. 수컷 바우어는 짝짓기 때가 되면 암컷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구애용 구조물’을 짓는다. 수컷의 아름다움을 한껏 과시할 일종의 공연 무대다. 아무리 견고하게 잘 만들어진 무대라도 비상 탈출구가 없으면 암컷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돌변하는 수컷의 ‘데이트 폭력’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수컷 바우어는 암컷이 마음 편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앞뒤가 다 뚫려 있는 형태로 구조물을 수리해 나간다.

수컷이 암컷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이유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강제 교미를 일삼기로 유명한 수컷 오리는 ‘진화 실패’의 사례다. 수컷 오리는 암컷의 몸 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크기의 성기를 과시하며 강제 교미를 저지르지만, 수정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암컷 오리들이 폭력에 의한 수정을 방지하기 위해 질의 모양을 정교하게 진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정자가 난자와 격리될 수 있도록 입구를 구불구불하게 꼬아 놓은 형태다. 암컷 오리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고른 수컷 오리와의 짝짓기에서 태어난 새끼만 애지중지 키운다. 매력적인 배우자를 선택하면 매력적인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커져 결국 진화에 유리하다는 것을 암컷들은 안다. 아름답지도 않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수컷 오리는 퇴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의 진화
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
동아시아 발행ㆍ596쪽ㆍ2만5,000원

인간 역시 물리적 강압과 폭력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고릴라나 침팬지와 달리 남성의 송곳니가 무뎌진 것이 그 증거다. 그럼에도 인간은 성폭력을 멈출 줄 모른다. 인간이 조류나 영장류보다 더 진화한 존재라는 이론은 과연 언제나 진실일까.

저자는 남성의 권력과 성적 지배, 사회적 위계질서를 당연시하는 가부장적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진화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꼽았다. 동물들의 사례에서 보듯, 너무도 자연스러운 권리인 성적 자율권을 가부장제가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닌 순수한 조류학자다. 다윈의 미학 진화를 추적한 끝에 만난 결론이니, 안티 페미니스트들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총천연색의 고운 자태를 뽐내는 새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한 암컷들의 투쟁과 수컷들의 호응이 만들어 온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니, 인간의 진화를 위해서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남성들을 힘껏 응원해야겠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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