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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군 찬양 담아라” 이집트 엘시시 정권 철권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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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군 찬양 담아라” 이집트 엘시시 정권 철권통치

입력
2019.04.12 15:00
수정
2019.04.12 18:2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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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 출신의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방장관 출신의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슬람교 문화권의 라마단은 흔히 ‘금식 기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해가 지면 성대한 잔치가 시작된다. 아랍권 방송국들은 이 한 달 특수에 맞춰 대규모 예산의 특집 드라마를 제작하고, 가족들은 텔레비전 앞에 삼삼오오 모여 드라마를 즐긴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더 이상 이런 정겨운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압델 파타 엘시시 정권의 살벌한 ‘드라마 탄압’으로 제작 중인 특집 드라마가 예년의 절반으로 뚝 떨어진 탓이다.

12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13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뒤 각종 정치 언론 시민사회 탄압을 벌여온 시시 대통령이 이제 연속극에서까지 철권통치를 확대하려 들고 있다. 또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토크쇼 등 각종 문화 콘텐츠들이 질식할 정도로 강도 높은 정부의 통제와 검열에 놓여있다고 전했다.

이집트에서는 정부가 대본과 관련해 지시를 내리거나 임금을 규제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군과 연계된 제작사에서 아예 작품을 맡는 경우도 흔하다. 영화 제작자들도 군과 경찰을 찬양하거나 정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무슬림 형제단’을 비방하는 등 정부가 승인한 주제를 담아야 한다. 작가이자 전직 외교관 에제딘 추크리 피셔는 NYT에 “시시 대통령은 이집트 국민을 재교육 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규제를 따르지 않는 이들은 방송에 나올 수 없다. 시민들의 감시를 거의 받지 않는 군 재판소에서는 테러용의자와 정적뿐 아니라 배우들까지 기소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에도 할리우드 영화 ‘시리아나’에 출연한 배우 아미르 웨이키드가 트위터에서 시시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징역 8년을 선고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NYT는 “이 같은 연속극 단속은 엘시시 정부 아래 뿌리 깊게 스며들고 있는 권위주의의 한 단면”이라면서 “수십 년간 이어진 군사 정부의 억압 통치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전임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때도 억압은 있었지만, 비판이 허용되는 공간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2005년에는 야당 '무슬림 형제단'이 의회 의석의 5분의 1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시시 정권에서는 그 공간이 사실상 폐쇄됐다"고 NYT는 설명했다. 카네기 중동센터의 예지드 세이야 선임 연구원은 "정권에 대한 반대라고 생각될 만한 것은, 사적 공간에서조차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도록 공적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런 두려움은 모든 전체주의가 심어주려는 것이다. 즉 시스템이 엿듣지 못할 때조차 감시 당하는 것으로 느끼게끔 만드는 공포가 그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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