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단독] ‘주인 몰래 100명 계좌 개설’ 사건에… 실명 확인 깐깐해진다

알림

[단독] ‘주인 몰래 100명 계좌 개설’ 사건에… 실명 확인 깐깐해진다

입력
2019.04.04 04:40
수정
2019.04.04 07:13
19면
0 0
정상적인 은행계좌 개설 절차. 그래픽=신동준 기자
정상적인 은행계좌 개설 절차. 그래픽=신동준 기자

#. 2017년 5월 우리은행 A지점장 B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D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노조지부장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조합원들이 퇴직연금에 가입하려면 저축예금 계좌가 필요한데, 조합원 명부와 주민등록번호를 제공할테니 우선 계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수가 무려 100명에 달해 지점으로선 실적을 올릴 좋은 기회였다.

한달 뒤 이 지점 차장 C씨 등은 지점장 지시로 계좌 개설 작업에 돌입했다. 금융실명법상 은행이 계좌를 개설하려면 고객 신분증 등 실명확인증표를 받아 실명 확인을 거쳐야 하지만 100명 중 이런 절차를 거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A지점은 동의를 받고 실명확인을 한 것처럼 꾸며 은행 전산망에 계좌 등록까지 마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으로 계좌가 만들어진 셈이다.

심지어 노조와 지점은 통장 앞면에 기재해야 하는 서명도 나중에 받아 테이프로 붙이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점장 B씨는 당국 조사에서 “조합원 100명이 우리은행과 이미 거래하던 내역이 있어 실명확인 절차에 소홀한 점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금융실명법의 근간을 흔든 황당한 불법 계좌개설 금융사고를 겪은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의 계좌개설 확인 절차를 한층 엄격하게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마음 먹으면 불법 계좌개설 가능”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우리은행 A지점의 불법 계좌개설 사고는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의 부문검사에서 전말이 드러났다. 자신도 모르게 통장이 만들어진 걸 뒤늦게 알게 된 일부 조합원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금융위원회도 이번 사안이 단순 실수가 아닌 고의성 짙은 범죄로 봤다. 우리은행은 법을 어긴 A지점 지점장과 차장에게 감봉 3개월 조치를 내렸다. 이들은 현재 대기발령 상태다.

은행권엔 아직도 이 사건의 충격이 남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 관행이라 보기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례”라며 당혹감을 표시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사고 이후 매 분기마다 전 직원이 ‘실명제 준수 서약서’를 작성하는 등 직원교육을 강화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직원의 일탈과 별개로, 은행 지점이 마음만 먹으면 고객 의사와 무관하게 계좌개설을 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금감원은 최근 신규계좌 개설 절차를 한층 까다롭게 만드는 내부통제 방안을 마련했다. 지금도 은행 지점은 통장을 개설할 때 창구 직원이 제대로 실명확인을 거쳤는지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주로 지점 팀장급 수신업무 담당자가 검증을 맡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외에도 내부 감사 책임자를 추가로 지정해 실명확인 여부를 중복확인 하고, 최종 승인이 있어야 계좌개설이 가능하도록 절차를 보완했다”고 말했다.

◇이중 보완장치 마련한 당국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은행 A지점의 경우처럼, 지점장이 범죄에 함께 가담하면 중복확인도 소용이 없을 수 있다. 때문에 금감원은 지점 차원에서 문제가 생겨도 은행 본점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통제 방안도 마련했다.

현재 은행 각 지점은 최초 계좌개설 후 통상 1주일 안에 고객의 신분증 사본 등 근거 자료를 본점(업무재설계 센터)으로 보내고 있다. 본점에서 서류 누락 등을 추가로 점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 사건 당시 우리은행 A지점은 계좌를 우선 만든 뒤, 본점에 서류를 보내기까지의 기간 동안 조합원 신분증을 추후 제출받아 절차적 하자를 없애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문제가 밝혀지자 금감원은 우리은행에 대해 본점으로 서류를 보내는 기한을 최대 3일 내로 당기도록 조치했다.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기간을 줄이면 지점이 미비 서류를 사후에 보완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차제에 은행권과의 협의를 통해 우리은행에 적용한 내부통제 강화 조치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각 은행 내규에 있는 계좌개설 업무 절차를 자율적으로 강화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감원이 운영하는 ‘내부감사협의제’를 활용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내부감사협의제는 금융사 스스로 내부통제 취약점을 점검과제로 정해 자체 감사를 실시하고 금감원은 그 이행 결과를 점검하는 제도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