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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고용 모범사례로 꼽히던 쿠팡의 노사 분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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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고용 모범사례로 꼽히던 쿠팡의 노사 분쟁, 왜?

입력
2019.03.25 17:07
수정
2019.03.25 22: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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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화 요구 노조 포스트잇 붙이기 운동에, 사측 ‘법적 책임 물을 것’ 응수

쿠팡맨들이 고객 택배에 붙이는 스티커 사진. 쿠팡지부 제공
쿠팡맨들이 고객 택배에 붙이는 스티커 사진. 쿠팡지부 제공

다른 업체와 달리 택배 기사를 본사가 직접 채용해 모범 사례로 이름을 알렸던 쿠팡이 ‘포스트잇 한 장’을 두고 노사 분쟁을 벌이고 있다. 쿠팡맨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 요구와 같은 자신들의 주장을 적은 스티커(일명 포스트잇)를 고객 택배에 붙여 보내는 운동에 나서자, 사측이 ‘스티커를 붙이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며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쿠팡지부가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는 25일 성명서를 내고 “쿠팡 경영진은 쿠팡맨들이 고객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응원 동참 메시지를 전달하는 포스트잇 한 장을 두고 ‘회사 자산을 훼손하는 불법행위이자 사규 위반 행위’라며 법적 인사적 책임을 묻겠다는 이야기를 한다”며 “법적 근거도 찾기 힘든 주장으로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쿠팡지부는 지난 15일부터 쿠팡맨의 안전과 처우 개선, 정규직 전환을 응원하는 SNS행동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적은 스티커를 고객 택배에 붙이는 운동을 하고 있다. 스티커에는 ‘고용불안 없는 쿠팡을 만들자 #with you’, ‘쿠팡맨 열에 일곱은 비정규직! 쿠팡맨을 정규직 전환하라! 원한다’, ‘로켓배송만큼 빠르게 쿠팡맨 처우 개선하라!’, ‘신호위반까지 불사하는 빠른 배송보다 안전하게 일하는 쿠팡맨이 좋다!’는 문구가 담겨 있다.

노조가 밝힌 스티커 붙이기 운동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쿠팡이 직접 고용한 택배 기사를 뜻하는 쿠팡맨은 현재 총 3,500명 정도인데, 이중 70% 가량이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신분이다. 쿠팡은 택배기사를 특수형태 근로종사자(특고 노동자)로 채용해 근로자 대우를 하지 않는 다른 택배 회사와 달리, 기사들을 직접 고용한다. 대신 초반 2년 동안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해 6개월 단위로 재계약 심사를 받게 한다. 그리고 2년 후 결격 사유가 없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다. 그러나 비정규직 기간 동안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산업재해를 당해도 불이익이 입을까 쉬쉬하는 등 부당한 처우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쿠팡지부의 주장이다. 또 2017년 4월 이전 입사자들은 주5일을 지키면서 법정 주휴수당과 별도로 하루치의 협약 주휴수당을 지급 받았는데, 이후 입사자들은 이런 혜택이 없어져 월급이 40만원 가까이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쿠팡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절차 등을 거쳐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스티커 붙이기는 이런 합법적 쟁의행위의 일환이며, 노사 공생을 위한 평화로운 방식이라는 게 지부 생각이다.

하웅 쿠팡지부 지부장은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쿠팡이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와우 더 커스터머’ 전략 등 고객감동배송을 위해 실시한 여러 이벤트였는데 이를 패러디 해 스티커 붙이기를 하는 것”이라며 “노조 하면 사람들이 너무 강성만 떠올리는 데다, 파업을 하면 쿠팡 이미지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평화적인 방법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앞서 쿠팡맨들은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맞춤형 메시지를 택배 상자에 적어 배송하는 캠페인을 벌여 SNS 등지에서 화제가 됐다.

사측의 1차 경고 내용. 쿠팡지부 제공
사측의 1차 경고 내용. 쿠팡지부 제공

반면 사측은 고객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이유로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 사측은 스티커 붙이기에 대해 지난 19일 1차적으로 ‘해당 행위는 회사 자산을 훼손하는 불법 행위이자 사규 위반에 해당한다. 법적, 인사적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라’는 내용의 사내 공지를 했다. 이어 21일에는 ‘국내 대형 법무법인의 법률적 판단’이라는 제목으로 ‘배송하는 상품박스에 스티커를 부착하거나, 그 박스 내에 유인물을 동봉해 배송하는 경우는 노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제3자인 고객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수단과 방법에서 상당성이 인정될 수 없으므로 쟁의행위로서 적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알렸다.

이에 쿠팡 지부 측은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의 법 해석을 들어 반박한다. 지부에 따르면 법률원은 “사측이 언급한 판례는 노조가 제3자 공간에 침입해 점거한 사안에 관한 것으로 쿠팡지부의 이번 홍보 활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오히려 사측이 배포한 경고문이야말로 정당한 조합활동 또는 쟁의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표명이자, 그러한 활동의 중단을 겁박하는 행위로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사측 입장을 묻는 질문에 황훈 쿠팡 홍보팀장은 “노조와 대화하고 협의하고 있는 단계여서 특별히 내놓을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사측의 2차 경고. 쿠팡 지부 제공
사측의 2차 경고. 쿠팡 지부 제공

쿠팡 사측은 2017년 주 6일 근무를 주 5일 근무로 전환하면서 주 6일 근무하던 쿠팡맨의 임금 감소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하루치 주휴수당을 더 지급한 것이므로, 주 5일제 시행 이후 입사자에게 이런 협약 주휴수당을 주지 않는 건 차별이 아니라는 입장을 노조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입사 후 2년 간 6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하게 하는 건, 고객과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직원을 거르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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