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옆에 있었다면 부담됐을 것… 2년 전 돌아가도 백의종군 결정 
 1차 남북 정상회담 보며 눈물 흘려… 김경수 지사 법정구속에 고통 커 
 일본서 한국 뉴스 보며 불면증 생겨… 극복 위해 하루 3만보씩 걸었다 
 
촛불시위 이전인 2016년 6월 당시 문재인(오른쪽) 전 민주당 대표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있다. 탁재형 PD 제공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문재인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정권 출범 1주일만에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며 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년의 해외생활 중 지난해 1월 ‘세상을 바꾸는 언어’ 출간을 전후해 북콘서트로 대중과 만난 때를 제외하곤 줄곧 뉴질랜드, 일본, 미국 등지에 머물며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복귀는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그는 여권의 끈질긴 요청에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직을 수락했다. 정권 3년차,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 후반기 국정운영을 위한 당청 조율과 총선 준비를 의식한 여권의 요청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달 잠시 서울에 들렀던 그는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지난 9일 일본에 돌아왔다. 지난해 4월 게이오(慶應)대 방문교수로 도쿄(東京)에 적을 둔 이후 수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 때마다 “백의종군한 처지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거부했던 그를 설득해 지난 15일 도쿄에서 만났다. 그는 이날도 “아직까지는 야인 신분일 뿐”이라며 “현안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두 시간여 함께 한 산책 중에 나눈 진솔한 대화에서 엿본 그의 생각을 정리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5일 도쿄 고라쿠엔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그는 기자와의 만남을 정식 인터뷰 대신 선후배 사이의 사적인 만남으로 정의하며, 사진 촬영을 거절한다는 뜻으로 선글라스를 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불면증 극복 위해 하루 2~3만보씩 걸어

해외 생활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는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하는 삶이었다. 지난 2년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관조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백의종군할 때만 해도 스스로 정치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복귀 결정으로 마침표가 쉼표로 바뀐 셈”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몸은 편했지만 가족과 동료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외로움도 컸을 터. “2년간 해외에서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임기 5년간은 견뎌야 한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유랑이 아니라 견문”이라고 되뇌이며 즐기려 했다.

도쿄에선 하루 2만~3만보씩 걸으면서 상념들을 정리했다. “몸은 한국으로부터 멀리 있는데 한국 뉴스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더라. 그런데 뉴스에 신경을 기울일수록 여러 근심과 상념에 불면증이 찾아왔다”고 했다. 건강 때문에 걷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불면증을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걸었던 것이다. 걸으면서 이름 모를 꽃과 나무를 사진 찍어 가끔씩 안도현 시인에게 보내 이름을 묻기도 했다. 그러자 “양정철이 꽃을 다 보다니 진짜 철 들었군”이란 답이 왔었단다. 만날 때마다 그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달고 나타났다. 웬만해선 1시간 거리 정도는 걸어 오기 때문이다.

해외생활 도중 입대한 아들이 지난해 훈련 중에 허리를 다쳐 3개월 정도 입원했다.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돌봐주지도 못했고, 병원에서 더 쉬게 하고 싶었지만 괜한 오해를 살 까봐 그러지 못해 아버지로서 미안함이 컸다. “아들 녀석이 먼저 괜찮다고 퇴원하겠다고 하더라”며 “다행히 건강하게 곧 제대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TV로 1차 남북 정상회담 보며 눈물

해외생활 중 기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지난해 4월 1차 남북 정상회담 때였다. 도쿄에 있었는데 TV를 통해 남북 정상 간 역사적 상봉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TV로는 한국 방송, 노트북은 CNN, 스마트폰으로는 NHK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감격에 겨워 웃다가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 그는 서운함은 아니라 했지만 역사적 현장에 대통령과 함께 하지 못한 묘한 감정이 솟았다고 했다.

“내가 대선 이후 눈물을 흘린 적이 딱 두 번 있는데, 1차 남북 정상회담 때와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식 날”이라고 했다. 의외였다. 그는 “2년 전 대통령 취임식을 혼자 TV로 지켜봤다. 대선 때 정권인수를 준비한 별도의 사무실이 있었는데, 다른 멤버들은 전부 정권인수를 위해 청와대로 옮겨간 상황이었다”고 기억했다.

2002년 대선 때 그는 서울팀, 문 대통령은 부산팀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도왔고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다. 2009년 노 대통령 서거 뒤엔 각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와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운명공동체’가 됐다. 자서전 ‘운명’ 출간으로 사실상 문 대통령의 정치 입문을 이끌었고, 19대 총선과 18,19대 대선을 물밑 조율했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법했다.

문 대통령 곁에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까. “일로써야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만 부담도 됐을 거라 판단해 백의종군을 선택한 것”이라 했다. 이전 정권에서 최측근 실세들이 공직을 맡아 시스템이 깨지거나 측근 주변에 힘이 쏠리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숱하게 봐 온 그다. “2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했다. 2017년 12월 도쿄에서 책을 집필 중인 그를 만나 술잔을 기울였을 때도 비슷한 말을 했다. “백의종군은 오래 전 생각해 왔던 것을 실행한 것이어서 망설임과 고민의 시간이 없었다”고.

일본에 머문 기간이 적지 않은 만큼 최근 악화한 한일관계 해법을 물었더니 손사래를 쳤다. 이 곳에서도 늘 언행이 조심스러웠다. 게이오대를 통해 일본 기자클럽의 특강 요청을 받기도 했고, 유명 원로정치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정중히 고사했다. “책임 있는 위치가 아닌데, 자칫 내 말이 대통령과 정부의 뜻으로 비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유였다.

2016년 6월 네팔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을 당시 문 대통령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식사를 하고 있다. 탁재형 PD 제공

▦“봉하에 남고 싶어했는데”… 김경수 지사 법정구속 자책

무엇보다 그의 정치 복귀 배경이 궁금했다. “올 초 당의 제안을 받고 50일 가까이 고사하면서 버텼다. 당 안팎의 압박과 설득이 거셌다. 수락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까지 쏟아졌다”고 했다. 더 이상은 오만하게 비칠 수 있겠다 싶어 “팔자다”, “운명이다”고 생각하며 수락했다.

문 대통령이나 이해찬 대표가 어떤 말로 설득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인재영입과 전략기획 등을 포함한 큰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그는 “일을 시작하면 그 때 언급할 수 있는 사안들”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를 대신해 당청관계를 조율했던 김경수 경남지사의 얘기를 꺼냈다. 잠시 그의 얼굴에 그늘이 번졌다. “인간적으로 가장 아끼는 후배에 대한 책임감과 고통이 크다. 해외에 나와 있다는 이유로 재판 과정에서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봉하마을에 남고 싶어했던 그를 설득해 총선과 지방선거에 나서게 한 원흉”이라며 자책했다. 만약 경남지사 출마를 권유하지 않았다면 김 지사가 의원 신분으로 구속을 면한 상태에서 법정다툼을 벌였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문 대통령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스위스 루체른에서 봤다는 ‘빈사의 사자상’ 얘기를 꺼냈다. “프랑스혁명 당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스위스 용병을 기리는 작품이다. 예전에 문 대통령과 술 한잔 기울이며 ‘정치인 문재인의 첫 비서관이라는 자부심이 있는데 퇴임하면 제가 마지막 비서관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지켰듯, 문재인 대통령도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말로 다가왔다. 산책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길을 건너는 그의 뒷모습에서 자신이 모신 두 대통령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총선’이란 전장으로 복귀를 택한 결심이 묻어났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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