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왼쪽)은 서로 다른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세 인물의 파국을 그린 스릴러 영화. ‘돈’(오른쪽 위)은 주식 브로커의 세계를 그리고, ‘악질경찰’은 범죄 액션 장르로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한다. CGV아트하우스ㆍ쇼박스ㆍ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헤비급 최강자를 피했더니 미들급 선수들이 한꺼번에 링 위에 올라왔다. 영화 ‘캡틴 마블’의 독식을 예상하고 2주 간격을 둬 개봉 날짜를 잡은 한국 영화 ‘돈’과 ‘악질경찰’ ‘우상’이 20일 동시에 관객을 만난다. 추석이나 설 같은 연휴도 아닌데 한국 영화 3편이 같은 날 개봉하기는 이례적이다. 충무로 입장에선 슈퍼히어로에 몸 사리다 집안 싸움이 벌어진 셈이 됐다.

‘돈’은 경쟁작들보다 일주일가량 앞서 시사회를 열고 관객 맞이를 준비해 왔다.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여의도 증권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주인공은 신입 주식 브로커 일현(류준열). 부자가 되고 싶었던 일현은 실적 부진에 시달리다 우연히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게 되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주가조작 범죄에 가담한다. ‘고위험 고수익’의 늪에 빠져 끝 모르고 내달리다 위기에 빠지는 일현을 통해 영화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경제 분야 이야기이지만 범죄 오락물로 풀어내 어렵지 않다. “일한 만큼만 벌자”는 일침이 상투적이긴 하지만 꽤 통쾌하다.

‘악질경찰’은 ‘아저씨’(2010) 이정범 감독이 ‘우는 남자’(2014)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액션물이다. 비리와 범죄를 일삼는 악질경찰 조필호(이선균)가 폭발사고 용의자로 몰리면서 거대 악과 맞서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범죄 액션물 공식을 따르지만, 뜻밖에도 주요 소재로 세월호 참사가 등장한다. 안산 단원 경찰서가 배경이고, 조필호의 누명을 입증할 증거를 쥔 고등학생 미나(전소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친구다. 다큐멘터리와 독립 영화에서 세월호 참사가 다뤄진 적은 있지만 상업 영화에선 처음이다. 장르와 소재의 낯선 결합이 신선하거나 혹은 불편할 수 있다.

출연 배우의 명성으로는 ‘우상’이 단연 돋보인다. 1990년대 한국 영화 부흥을 알린 한석규와 200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책임진 설경구가 쌍두마차다. 천우희는 두 명배우에 실력으로 겨룰 최적의 캐스팅이다. 아들의 교통사고 은폐로 정치 인생 위기를 맞은 도의원 구명회(한석규)와 아들을 잃고 진실을 쫓는 유중식(설경구), 교통사고 현장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최련화(천우희) 등 세 인물의 충돌과 파국을 영화는 은유와 상징으로 풀어간다. 다소 불친절한 전개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배우들의 경이로운 연기가 아쉬움을 덮고도 남는다. ‘한공주’(2014)로 극찬받은 이수진 감독의 신작이다.

이들 세 영화 모두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기대작이지만, 극장가 분위기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예상치 못한 쏠림에 어느 영화도 원하는 만큼 스크린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대중성 면에서는 ‘돈’과 ‘악질경찰’이 후한 점수를 받고 있지만 배우의 영향력에선 ‘우상’이 독보적이라 극장들도 스크린 배분에 고심이 깊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캡틴 마블’을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전략이 도리어 과당경쟁을 부른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6일 개봉한 ‘캡틴 마블’은 13일까지 8일간 347만명(영화진흥위원회)을 동원했다. 상영 첫 주말인 9일에는 일일 관객수가 100만명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상영 2주째가 되면서 흥행세가 급격하게 꺾였다. 평일 관객수가 10만명대에 불과하다. 11일에는 17만명, 12일에는 13만명, 13일에는 12만명이었다. ‘캡틴 마블’의 위력이 2주가량 이어질 거라 전망하고 20일로 개봉을 잡은 세 영화의 배급사들은 황망해하는 기색이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어느 한 작품이라도 13일에 개봉했으면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뒤늦은 탄식도 들린다.

극장가는 본격적인 비수기에 접어들고 있다. 전국 극장의 일일 총 관객수가 20만명에도 채 못 미친다. 13일 총 관객수는 19만9,733명이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총제작비(마케팅비 등 포함)가 ‘돈’은 80억원, ‘악질경찰’은 90억원, ‘우상’은 98억원으로 세 영화 각각 손익분기점은 200만~260만명가량이다. 멀티플렉스의 한 관계자는 “‘캡틴 마블’이 일시적으로 시장 규모를 키웠지만 전체 관객 감소 추세를 보면 지난해와 비슷한 비수기 시장이 형성될 것 같다”며 “한국 영화 3편의 생존 경쟁도 어느 때보다 힘겨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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