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순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최호순 한양대의료원장은 “췌장암을 조기 진단하고 제대로 된 항암치료를 하면 완치도 기대할 수 있기에 췌장암이라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암도 이젠 만성질환이다. 하지만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5~8%에 그쳐 암 가운데 예후(豫後)가 가장 좋지 않다. 대장암(76.3%) 위암(75.4%) 등 다른 암의 5년 생존율이 70%를 넘어선 것과 크게 비교된다. 매년 5,000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는 췌장암은 성인암 가운데 발생률 8위, 사망률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늦게 발견되기에 10~20% 정도만 수술 가능하다는 점이다. 수술해도 80%가 재발한다. 때문에 ‘췌장암=죽는 병’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최근 조기 진단 노력이 활발해지고, 새로운 항암치료법도 개발되면서 서광이 비치고 있다.

악명 높은 췌장암 치료에 전념해 온 최호순(61)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를 만났다. ‘스마일 의사’로 유명한 최 교수는 “이제는 췌장암을 조기 진단하고 제대로 된 항암치료를 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한양대병원 기획조정실장과 한양대 의대 학장을 역임한 뒤 지난 4일 한양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임명돼 한양대의료원을 이끌고 있다.

-췌장암은 조기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데.

“췌장(이자)은 소화액과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등 여러 호르몬을 만든다. 몸 한 가운데인 복강 뒤에 위치해 위 십이지장 소장 간 담낭 비장 등에 둘러싸여 있어 암이 생겨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다른 암처럼 초기에는 특징적인 증상이나 징후가 없다. 소화불량, 식욕저하, 체중감소, 황달,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에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쳤을 때가 많다. 위 부위 근처와 등이 답답하다든가 왠지 속이 거북하거나 식욕이 없어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는 환자도 있다.

췌장암을 조기 진단하는 효과적인 검사법은 아직 없다. 게다가 암 초기부터 진행이 빠른 데다 췌장 주변에 주요 혈관이 많아 상대적으로 작은 종양도 근치적 절제(수술)가 어려워 예후가 좋지 못하다. 따라서 췌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장기 흡연자, 만성췌장염 병력이 있거나, 최근에 당뇨병이 새로 발병했으면 췌장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만성췌장염의 가장 흔한 원인은 만성적인 음주, 흡연, 유전 인자,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 등이다. 고위험군이라면 적어도 1년에 한번씩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기를 권한다.”

-조기 진단 검사법으로는 무엇이 있나.

“췌액을 분비하는 ‘췌관’이 췌장 가운데를 관통한다. 이 췌관에서 췌장암이 대부분 발생하는데 췌관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검사법(내시경 역행 담췌관 조영술ㆍERCP)이 개발돼 조기 진단에 전기를 맞았다. ERCP는 췌장ㆍ담도질환의 진단ㆍ치료에 쓰이는 표준시술법으로 자리잡았다. 담도와 췌관 입구(십이지장 유두부ㆍ乳頭部)까지는 내시경으로 접근하고 조영제 주입 후에는 X선 촬영으로 췌장ㆍ담도 상태를 직접 파악하는 방식이다. 최근 담도와 췌관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1회용 담도 췌관 내시경’도 개발됐다. 십이지장까지는 기존 ERCP 내시경을 활용하고, 담도와 췌관 안에서는 고화질 디지털카메라가 장착된 아주 가는 내시경으로 선명하게 관찰한다.

또한, 복부 초음파검사를 비롯해 조영제 증강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 담췌관조영술(MRCP) 등 다양한 영상진단으로 췌장암 진단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수술이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췌장암으로 진단될 때가 많아 이들 검사로는 조기 진단에 어려운 점이 많다.

다행히 최근 조기 진단을 위해 새로운 검사법들이 나왔다. 췌관조직검사, 췌액세포검사, 췌액 내 종양표지자와 암유전자의 분자생물학적 진단이 시도되고 있다. 췌관 내 미세병변(病變)을 직접 관찰하는 ‘췌관내시경검사’나 췌장암 진행 정도를 알아내기 위한 ‘초음파내시경검사(미세 침을 이용한 세포검사로 조직검사도 가능)’와 ‘췌관 내 초음파내시경검사’ 등이다. 이 같은 새 검사법이 등장해 췌장암을 조기 진단해 완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아직 일반인과 췌장암 고위험군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는 프로그램과 효과적인 선별 검사법도 없는 상태다. 따라서 췌장암이 흔히 발생하는 암은 아니지만 ‘난치성 질환’인 만큼 보건당국이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다.”

-조기 진단을 위해 어떤 연구가 진행 중인가.

“췌장암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아 암세포로 변하고 전이되는 과정을 분자생물학적으로 알아내려는 연구가 한창이다. 현재로서는 정상 췌관세포의 유전자가 손상되거나 돌연변이가 일어나면서 췌장암이 된다는 게 가장 알려진 메커니즘이다. 즉 특정 암유전자나 암억제유전자가 이상이 계속 생겨 췌장암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또한, 혈액으로 췌장암을 조기 진단하려는 노력도 꾸준하다. 임상에서 널리 쓰이는 췌장암의 혈액 바이오마커는 ‘CA19-9’이다. 그러나 CA19-9는 진단율이 낮아(예민도 70%, 특이도 80%) 선별검사로 권고되지 않는다. 최근 ALCAM, ICAM1, LCN2 등 7개의 혈청 바이오마커 패널로 췌장암을 효과적으로 선별하고 있다.

조직 진단은 초음파내시경 ‘세침흡인생검(초음파 영상을 보면서 가느다란 주사기로 조직을 채취하는 검사)’이 널리 보급되면서 휠씬 쉬워졌다. 세침흡인생검으로 얻어진 췌장 조직에서 췌장암의 분자생물학적 변화를 확인한다. KRAS 돌연변이를 확인함으로써 췌장암의 조기 진단을 시도하고 있고, KRAS 돌연변이와 함께 SMAD4 등 유전자 결손을 분석해 만성 췌장염과 췌장암을 감별한다.

최근 췌장암 조직에서 특이하게 늘어나는 mRNA(miR-216, miR-217 등) 연구가 활발하다. 췌장암 진단ㆍ치료를 위한 마이오마커를 알아내려면 환자유래 종양세포 및 조직을 이용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연구를 위한 종양세포와 조직 획득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연구를 위한 췌장암 종양세포와 조직을 모아두는 ‘바이오뱅크 시스템’을 빨리 구축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항암치료법도 많이 발전해 췌장암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는데.

“전통적인 췌장암 치료법으로 수술적 절제, 방사선치료, 국소치료 및 항암요법이 있다. 발견 당시 20% 미만의 환자가 수술로 절제할 수 있지만, 근치적 절제술을 한 뒤에도 80%가 재발해 90% 이상의 환자가 항암치료가 필요하다.

치료에는 세포독성 화학요법(5-FU 등)을 시작으로 1990년대 젬시타빈(gemcitabine) 항암요법이 기본 치료법이 됐고, 엘로티닙(Erlotinibㆍ상표명 타세바) 같은 표적치료제도 개발됐다. 최근 효과가 가장 좋은 ‘폴피리녹스(FOLFIRINOXㆍ이리노테칸 5-플루오라실 류코보린 옥살리플라틴 등 4가지 항암화학약제 병용) 요법’과 ‘젬시타빈/납-파클리탁셀(NAB-paclitaxel) 병용요법’이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표준치료법은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진행성 췌장암 환자에게 괄목할만한 효과를 나타낸다. 다만, 환자가 표준치료법으로 치료 받기 힘들거나, 80세를 넘겼으면 먹는 신약인 ‘TS-1’을 쓰기도 한다. 이와 함께 면역관문억제제(면역 T세포가 암세포를 쉽게 인식하도록 해 암공격력을 높인다), CAR-T세포치료제(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를 조작해 암세포만 유도탄처럼 공격한다) 등 면역세포치료제, 암세포 특이 표적을 이용한 새로운 표적치료제 및 췌장암 조직 특징을 이용한 새로운 치료법 등이 시도되고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이럴 때 췌장암을 의심하세요]

-식욕 부진과 함께 6개월 동안 체중이 10% 이상 줄었을 때

-배꼽 주위에서 덩어리가 만져지거나 배ㆍ등이 아플 때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되며, 짙은 갈색 소변이 나오는 황달이 생겼을 때

-최근 갑자기 당뇨병이 발병했을 때

-만성췌장염을 앓고 있는 분이 갑자기 체중이 감소할 때

최호순 한양대의료원장. 한양대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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