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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농축우라늄과 볼턴

입력
2019.03.0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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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평양을 찾았다. 그는 북한이 고강도 알루미늄을 수입한 자료를 근거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고강도 알루미늄은 HEU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심분리기를 제작하는 데 쓰인다. 북한은 처음엔 “HEU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다 나중엔 “HEU 프로그램을 추진할 권리가 있다”고 맞섰다. 영변 핵 시설 해체와 경수로 제공을 맞바꾼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깨진 순간이다. 이를 주도한 게 당시 존 볼턴 국무부 비확산ㆍ군축담당 차관, 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다.

□세기의 핵 담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도 고농축우라늄과 볼턴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영변 플러스알파(+α)를 원했나’라는 질문에 “우리가 발견한 것들이 있다”고 답했다. ‘우라늄 농축시설 같은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놀라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회담 막판 등장한 볼턴은 HEU 은닉 자료를 다시 들이대며 판을 깨버렸다. 17년 만에 악몽이 되풀이된 셈이다.

□북한의 우라늄은 전 세계 매장량(4,000만톤)의 절반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데 대규모 시설이 필요한 플루토늄탄과 달리 천연우라늄을 정제한 뒤 농축해 만드는 HEU를 원료로 한 우라늄탄은 은닉이 용이하다. 900㎡의 부지에 1,000대의 원심분리기만 설치하면 연간 핵무기 1개를 만들 수 있다. 북한이 2010년 핵 전문가 지크프리트 헤커 박사에게 공개한 영변의 원심분리기는 2,000대였다. 그러나 다른 곳에 최소 4,000대의 원심분리기가 숨겨져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번에 미국이 새롭게 찾아내 김 위원장을 당황하게 만든 HEU의 위치와 관련, 평양 인근 강선과 자강도 희천시의 연하ㆍ하갑공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분강설이 제기되자 영변의 행정지구 이름이란 설명도 나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HEU를 북한이 어디에 얼마나 은닉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놀라는 척하면서 속으론 ‘미국도 여기밖에 찾지 못했구나’라고 안도했을지 모른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도 북한의 협조는 필수란 얘기다. 대화와 협상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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