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 인터뷰

2004년 ‘부계 혈통주의는 생물학적 모순’이라고 주장하며 호주제 폐지에 기여해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은 첫 남성. 2005년 인문학과 사회ㆍ자연과학을 통합한 새로운 범학문적 연구인 ‘통섭’을 국내에 소개한 학자. 그리고 초대 국립생태원장이던 2016년 한 시상식에서 어린이 수상자에게 눈높이를 맞추려 무릎을 꿇고 상을 건네, 젊은이들에게 ‘배려의 화신’으로 입소문 난 ‘할배 과학자’. 모두 한국 자연과학계의 대부이자 국내 최고의 ‘개미박사’인 최재천(65)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 2016년 6월 15일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에서 열린 '우리들꽃포토에세이공모전' 시상식에서 최재천(가운데) 국립생태원장이 장려상을 받은 초등생에게 무릎을 꿇고 상장을 주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한평생 동물행동학자로서 생명 다양성을 연구하며 살아온 그가 이번엔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인 지인 마크 베코프의 저서 ‘개와 사람의 행복한 동행을 위한 한 뼘 더 깊은 지식’을 감수하고 이 책의 메시지를 전파하고자 나섰다. 국내 반려견 인구 1,000만명 시대(KB금융그룹 2018반려동물보고서)를 맞아 반려견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 책이다. 최 교수는 “동물행동학에서 가장 뜨거운 연구 주제는 단연 동물의 개성에 대한 연구”라며 “이 책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세상 모든 개는 다 다르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저자인 마크 베코프와 오랜 지인사이다. 그러나 이번 책을 감수하게 된 계기는 저자와의 친분보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가고 있는 자신의 반려생활과 더 관련이 깊다. 그는 현재 아내와 함께 반려견 5마리와 반려묘 1마리를 키우고 자택 지하실에 상주하는 길고양이 5마리를 돌보고 있다.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해 아들 성화에 닥스훈트 수컷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개를 키우며 아파트 생활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보다 개를 훨씬 더 좋아하는 아내의 고집으로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정말로 반려견 때문에 2004년에 빚까지 내서 이사했다.”

이사 갈 집에 살던 노부부가 더는 키우기 힘들다며 자신들이 키우던 닥스훈트 암컷 한 마리를 맡겼다. 이렇게 만난 닥스훈트 부부에게서 2006년과 2007년 연이어 5마리씩 새끼가 태어났고, 입양 보낸 2마리를 뺀 나머지 10마리를 키우게 되면서 가족의 본격적인 반려생활이 시작됐다. 그 동안 부부개를 포함해 5마리는 하늘나라로 가고 현재 5마리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내가 서울 연희동 자택 지하실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자, 6마리가 진을 쳤다. 그리고 이 중 한 마리가 지하실에서 밥만 얻어 먹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아예 눌러 앉았다.

최 교수는 책의 큰 주제이자 평생 연구과제로 삼아온 생명의 다양성을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개들을 통해 설명했다. 주변 사람들은 등은 까맣고 배는 갈색인 닥스훈트 10마리를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걱정했지만, 잘 보면 얼굴과 몸매는 물론 성격까지 전부 다르다고 했다. 세상을 떠난 어미 개는 미식축구 유명 쿼터백의 이름을 따 ‘부머’라고 지었을 만큼 성격이 활달했지만, 그 딸 ‘공주’는 상대적으로 차분한 대신 거동이 불편한 동생을 위해 장난감을 물어다 줄 만큼 모성애가 깊다.

“개성을 영어로 ‘퍼스낼리티’(personality)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인간’(person)만 개성을 지닌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요즘은 진딧물도 개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사람도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쌍둥이조차 성격이 다른데 반려견이라고 같을 리 없다. ‘강바강’(강아지 바이(by) 강아지)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은 반려견도 종이나 어미와 상관없이 개체별로 고유한 특징이 있다는 뜻이다.

최재천 교수가 지난달 25일그림 3최재천 교수가 지난달 2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자신의 집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뷰 도중 자신이 감수한 신간 '개와 사람의 행복한 동행을 위한 한 뼘 더 깊은 지식'의 내용을 훑어보고 있다.

최 교수는 요즘 국내에서 고양이가 개만큼이나 반려동물로 주목 받는 현상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견해를 밝혔다. 그는 아파트 같이 공동주택 생활에 익숙한 한국사회에서 맞벌이 가정과 1인 가구까지 늘며 개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생겼고, 이런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또 지나친 인간관계 등 ‘관계 맺음’의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을 거라고 봤다. 생활환경 자체가 개를 마음껏 기를 수 없는 상황인데다 한국문화 특성상 감정표현이 너무 솔직한 개에 비해 절제된 표현을 하는 고양이에게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체구가 큰 반려견이 마당 저쪽에서 뛰어와 반려인의 얼굴을 핥고 서로 뒹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서구와, 아직 이 정도까진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 우리사회의 모습을 단적인 예라 보면 된다”는 그는 앞으로는 고양이 쏠림이 더 두드러질 수 있을 거 같다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최재천 교수가 '제돌이 야생방류를 위한 시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2013년 7월 제돌이의 야생방류를 앞두고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최재천 교수 제공

그가 요즘 힘 쏟는 분야는 생명다양성재단 활동이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열성적인 환경운동가로 침팬지 행동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영국 출신 제인 구달(84) 박사와 함께 2013년 설립했다. 재단은 동물과 환경에 관련한 학문의 연구를 지원하고, 자연환경과 문화콘텐츠의 연구 및 개발, 교육 등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네팔과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연구에도 소소하지만 500달러(약 60만원)를 지원했다.

“이 분야에서 나름 활발히 활동한다는 나도 평생 연구비 압박에 시달렸다. 경제적으로 연결되는 성과가 많지 않은 자연과학 분야 연구자의 현실이랄까. 그래서 재단이 커지면 소외 받는 자연과학 연구분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문이 인간의 정신과 신체, 그리고 사회와 이를 구성하는 법칙을 연구하는데 동물행동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연구하니 한평생 연구할 게 얼마나 많겠는가.”

최 교수는 동물행동학 연구와 함께 환경운동도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와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방류를 위한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열성적인 환경운동가인 그는 지금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지 않고 장바구니를 접어 휴대하고 다닌다. 차 없이 대중교통만으로 생활하고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7㎞를 8년째 걸어 출퇴근하고 있다.

글ㆍ사진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최재천 교수가 지난달 2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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