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 보존운동 앞장서온 김란기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대표

김란기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대표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목포 구도심처럼 등록문화재로 지정할만한 지구로 “대구 공구거리, 부산 옛 왜관거리, 순천 기독교 선교 기지, 대전 철도관사 마을”을 들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서울시의 중구 세운상가 일대 정비 사업이 을지면옥 등 오래된 음식점과 공구상가 보존 요구에 부닥쳐 중단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생활 유산과 도심 전통산업을 이어가는 산업 생태계를 최대한 보전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지만 대책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반대로 일대 땅 소유주들은 개발 중단에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시 재개발ㆍ재생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런 갈등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목포 구도심의 경우 손혜원 의원 관련 의혹으로 이목이 집중됐지만 그 배경에는 문화재 보존과 개발 이익이라는 이해충돌 구도가 깔려 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도시재생사업은 돈만 쏟아 붓는다고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역 주민이 적극 참여해 삶터를 지속하면서 역사를 보존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해가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근대문화유산 보존운동에 앞장서온 김란기(66)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대표는 7일 도시재생사업 과정에서는 “참여와 소통, 진화가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홍익대 건축학 박사로 문화재 근대분과 전문위원, 인문학 카페 ‘끼데께데’ 대표 등을 맡은 그를 만나 도심 재개발ㆍ재생 사업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가야 할지 들어봤다.

-도심 재개발에서 문화재 보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1960, 70년대도 도심 재개발이 활발했지만 지금 을지로입구에 롯데백화점, 장교동에 쁘렝땅백화점이 들어설 때만 해도 문화재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내가 보존운동에 참여한 것은 명동의 지금 한전 뒤편에 있던 옛 일제강점기 증권거래소(현 아르누보센텀) 건물 철거 문제가 불거졌던 2005년쯤이다. 이 건물은 은행으로 넘어가 사유건물이 된 뒤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고 보존운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헐리고 말았다.

그 즈음 서울의 옛 극장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국도극장, 스카라극장 등의 소유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될까 봐 서둘러 허물어버렸다. 근대건축은 아니지만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과 함께 도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커진 측면도 있다. 서울시는 처음 시민단체와 활발히 소통했지만 이러다 시장 임기 내 공사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결별했다. 동대문 오간수문 미복원 등 허술한 부분이 많다.”

-최근 을지로 일대 개발을 둘러싸고 노포나 공장을 어떤 형태로든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사업 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박원순 시장은 도시 재생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을지로의 경우 대형 블록을 쪼개서 하는 재개발이다. 이곳은 문화재보다 산업생태계로서의 가치를 봐야 한다. 세운상가 양측과 충무로 일대까지 조사한 자료를 보면 금속가공제조, 기계ㆍ전자 도소매, 정보통신장비 소매, 인쇄업 등 1만 6,000개 사업체들이 몰려 있다. 예를 들어 충무로 인쇄 골목의 경우 인쇄, 제본 등 단계마다 다른 가게로 인쇄물이 넘어가고 그 작업을 오토바이 배달이 이어주는 식의 생태계가 조성돼 있다.

을지로도 비슷한 상황이다. 누군가 혼자 완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맡은 공정의 일부가 이어져 완성품이 나온다. 인접해 있고 서로 통하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다. 산업생태계는 인위적으로 만들려면 쉽지 않은데 그런 게 자연발생적으로 기술, 신용, 가치 공동체로 형성돼 있다. 청계천 복원 때 인접 상인들의 점포를 송파구 가든파이브로 이전시키려 했던 실패 사례를 보더라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은 만족할 해법이 아니다.”

-산업구조나 도시계획이 바뀌는데 도심에 계속 철공단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영등포구 문래동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래동은 을지로 일대가 가지를 쳐 생긴 단지다. 일제가 일본인 직원이나 조선인 노무자 숙소로 조성한 ‘영단(營團)주택지’였다가 1960년대 일반 분양돼 소규모 철공사업자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을지로, 청계천에서 사업하던 사람들이 원효로로 갔다가 문래동으로 옮겨온 것이다. 500가구 정도인데 그 주변이 재개발돼 아파트가 들어서자 주민들이 ‘경관에 나쁘다’ ‘지저분하다’ ‘냄새 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 예술창작인을 끌어들이는 사업을 시행했지만 유명세를 탄 뒤로 카페, 음식점이 늘고 임대료가 올라가자 기존에 공장을 하던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워지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다.

문래동 역시 을지로처럼 산업생태계를 갖춘 일종의 공동체지만 을지로보다 더 거친 작업이다 보니 냄새도 나고 환경이 좋지 않다. 쾌적한 ‘마을공장’이 대안이다. 신도시 건설 때 도로, 상하수도, 지중화 폐기물 처리 같은 걸 하듯이 보수는 하되 건물 외관을 되도록 보존하면서 기반시설을 정비하는 것이다. 산업생태계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해볼 만하다.”

-을지로도 그런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인가.

“을지로 개발을 두고는 그 동안 여러 안이 나왔다. 공장을 그대로 두고 그 위로 빌딩을 짓자거나, 바닥에 흔적만 남기고 재개발하자거나, 주상복합 만들어 1, 2층에 공장 두자는 안들이 나왔지만 모두 현실성이 부족했다. 결국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그냥 다 없애고 가자는 식으로 하다 멈춘 것이다. 정부가 도시재생뉴딜사업에 5년간 50조원을 들인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지금 상태를 살리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 늙은 장인과 젊은 창업 후보자를 조합해 마을공장을 4차 산업시대 센터로 만들어가려는 일본 등의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재개발과 보존 갈등은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목포 구도심이 화제였다.

“이유야 어떻든 이제까지 단일 건물로 한정했던 문화재등록을 일정 구역으로 확대한 것은 문화재 정책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예를 들어 남대문을 보존한다고 했을 때 이처럼 그 일대 환경까지 포함한다면 주변 성곽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도시계획은 그것을 피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영주, 군산과 함께 지정된 목포의 경우 해당 지구 내 등록문화재 보존은 물론이고 조선내화도 그 전체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

-목포 구도심 등록문화재 지정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지정을 앞두고 문화재청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한 내부 공청회를 했다. 사안 자체는 문화재 전문가들의 숙원 과제였지만 이제껏 안 된 일이어서 ‘부동산 자본주의 사회에서 되겠나’하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돼버리더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 지정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속도 위반’을 한 측면은 있다. 제도가 제대로 정비 안 된 상태로 덜컥 지정부터 됐다는 얘기다. 우선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용어가 모호하다. 해외의 경우 ‘지구’라고 해서 ‘면(面)’ 중심인데 ‘공간(空間)’이라고 했으니 그에 대한 구체적 정의가 필요하다. 해당 지구 내 지정된 문화재 이외의 공간에서는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현상 변경 기준을 정하면서 신축도 허용한다든지 개수 복원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문화재청은 해당 지자체가 전문가 자문을 받아서 하면 된다고 하는데 무슨 기준으로 자문을 하느냐는 거다. 그런 행정적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역사공간 등록문화재 지정으로 보존해가야 할 다른 지역이 있다면.

“1970년대 이후 조성된 신도시를 제외한 모든 도시에 적용할 수 있지만 목포 같은 개항지, 서울처럼 전통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온 내륙 도시, 나주 같이 큰 강을 끼고 있는 도시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도시가 축소되는 단계에 와 있는 인구감소형 지역이 더 유리하다. 이들 도시 중에 역사적, 근대적 성격이 잘 남아있는 구역이 중심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구의 공구거리, 부산의 초량동(옛 왜관거리), 순천의 기독교 선교기지 구역, 대전의 철도관사마을 등 주제가 뚜렷한 구역과 마을은 도시마다 있다. 이런 지역을 우선으로 문화재적 관점에서 도시재생사업을 한다면 성공적인 재생사업이 될 수 있고 문화재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수십 조의 도시재생사업 예산은 어떤 곳에 어떻게 사용되어야 바람직한가.

“기본적으로 중앙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는 것은 도시재생사업에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혹은 변형된 토건사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도시재생사업은 지역 주민,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그들의 삶터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삶터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면서 진화하듯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참여와 협력이다. 그래야 마을 혹은 도시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마을,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면서 생활환경의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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