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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청정기는 엄두도 못 내” 취약층에 더 가혹한 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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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청정기는 엄두도 못 내” 취약층에 더 가혹한 미세먼지

입력
2019.03.06 21:45
수정
2019.03.06 21:5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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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방촌ㆍ노숙인 집결지에 가보니] 

 “좁은 쪽방엔 금세 먼지 쌓여… 피할 방법 없는데 어떡하나” 

 작년부터 마스크 무료로 나눠줘 마음 놓고 쓰는 게 그나마 위안 

 “어차피 늘 나쁜 공기 마시는데…” 노숙인들 상황은 더욱 심각 

수도권에 사상 최초로 엿새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회원들이 노인들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에 사상 최초로 엿새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회원들이 노인들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하루하루 사는 게 고된 판에 큰 병도 아닌 미세먼지까지 걱정할 여유가 있나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최인섭(56)씨는 미세먼지 얘기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뇌졸중을 앓고 있다는 최씨는 “치료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밖에 나가기는 어렵고, 좁은 집에 머무르기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해 쪽방상담소에서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한 뒤로 요즘 같이 심각한 때에 마스크라도 마음 놓고 착용할 수 있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최씨는 “그 전에는 일회용 미세먼지 마스크를 빨아서 썼다”고 했다.

최악의 미세먼지로 수도권에서 엿새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6일, 뿌연 하늘 아래 길가에는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낀 사람들로 가득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미세먼지를 걱정하고 정부의 대책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넘쳤다. 하지만 쪽방촌이나 노숙인 집결지역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모르는 이가 태반이었다. 대다수는 걱정이 된다면서도 “피할 방법이 없는 데 어떡하느냐”는 체념부터 늘어놨다.

6일 서울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만난 한 주민이 쪽방상담소에서 받은 미세먼지 마스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정준기 기자/2019-03-06(한국일보)
6일 서울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만난 한 주민이 쪽방상담소에서 받은 미세먼지 마스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정준기 기자/2019-03-06(한국일보)

이날 찾은 돈의동과 동자동 쪽방촌 골목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주민을 거의 만나보기 어려웠다. 쪽방상담소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배치해 놓고 있지만 무료 배포 사실 자체를 모르는 주민들도 많았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 나연(가명ㆍ64)씨는 착용하고 있던 마스크를 가리키며 “20일쯤 전에 2500원 주고 산 것”이라며 “상담소에서 마스크를 주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상담소에서는 “간호사들이 쪽방촌을 다니면서 마스크를 돌리기도 하지만 적은 인력으로 모든 주민들을 방문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고충을 털어놨다.

쪽방촌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기청정기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노릇이라 사실상 무방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동자동 서울역쪽방상담소 안에서 만난 이경우(50)씨는 “방이 좁다 보니 밖에 나갔다 들어가면 금새 먼지가 쌓여 있다”며 “며칠 전부터 기침 가래 때문에 고생 중이지만, 그렇다고 방 안에서까지 마스크를 끼고 있을 수도 없지 않느냐”고 탄식했다. 쪽방상담소 앞 공원에 나와 있던 주민 10여명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였다. “바깥이나 실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좁은 방 안에 머무를 의미가 없다”는 게 주민 한모(67)씨의 설명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6일 서울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용산구 ‘서울역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 붙어 있는 미세먼지 대응 행동요령 안내문. 정준기 기자 /2019-03-0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6일 서울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용산구 ‘서울역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 붙어 있는 미세먼지 대응 행동요령 안내문. 정준기 기자 /2019-03-06(한국일보)

하루 종일 바깥 공기에 노출되는 노숙인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서울시가 엿새째 비상저감조치에 들어갔음에도 서울역 주변 노숙인들의 일상은 그리 변한 게 없었다. 노숙인 진료센터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등 곳곳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었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노숙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차피 늘 나쁜 공기를 마시는데 큰 차이가 있겠느냐”는 체념 때문이다. 서울역 13번 출구 앞에서 만난 노숙인 김모(62)씨는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진료센터에서 마스크도 받았다”면서도 “이미 건강이 나빠져 있는데 굳이 불편한 마스크를 쓸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수범 서울시립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실장은 “24시간 마스크를 끼는 것도 불가능하니 가급적 주변 쉼터 등 실내로 들어가라고 안내를 하고 있지만 쉼터에서 머물면 답답하다는 이유로 야외 공간을 떠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조직적으로 전파하는 것은 물론, 미세먼지용 마스크 지급에도 행정력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쪽방촌 주민이나 노숙인들은 건강을 스스로 챙길 의지를 잃은 경우가 많은데 그럴수록 사회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며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엔 전담 인력이라도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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