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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하면 허위매물? 중고차 시장, '뻥카'는 옛말

입력
2019.03.06 04:40
수정
2019.03.06 11:5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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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 판치던 시절은 옛말

온라인 거래 플랫폼 활성화

발품 안 팔아도 손쉽게 구매

SK엔카에 올라온 쏘나타 중고차 매물 모습. SK엔카 홈페이지 캡처
SK엔카에 올라온 쏘나타 중고차 매물 모습. SK엔카 홈페이지 캡처

운전 경력 28년, 중고차 거래만 3차례 해본 직장인 이상선(59)씨는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아들(27)에게 이달 초 중고차를 사주려다 ‘신세계’를 맛봤다. 예전에 중고차를 살 때처럼 무작정 인근 중고차 매매단지를 가려던 이씨를 아들이 말린 것이 시작이었다. “아버지, 먼저 온라인에서 저한테 적당한 차가 있는지 검색해봐요.” 아들의 제안에 이씨는 어리둥절했다. 자고로 차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운전해봐야 하는 물건이거늘, 어떻게 온라인 상에서 차를 고른다는 말인가. “그런 거 다 사기야.”

그런 이씨를 아들은 컴퓨터 앞에 끌어 앉히더니 몇몇 중고차 사이트에 접속했다. “제가 어떤 차를 사면 될까요.” 이씨는 생각해놓은 기준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운전 연습용이기도 하니 주행거리는 5만㎞ 미만, 연비를 생각하면 디젤 엔진, 그리고 국산 브랜드 준중형 모델.” 이씨가 말한 대로 아들은 사이트에 정보를 입력했다. 컴퓨터 화면엔 기준에 들어맞는 차량 목록이 순식간에 나열됐다.

◇중고차 매매, 불쾌한 추억은 잊어라

중고차 매매 당시의 기억을 살리며 목록을 훑던 이씨가 매물 하나를 콕 집었다. 2016년형 아반떼였다. 주행거리 3만7,000㎞, 디젤 엔진 장착, 가격 1,170만원. 아들의 첫 차로는 무난한 가격대였다. 차량 정보는 상세하게 공개돼 있어 자동차 보험 이력, 사고ㆍ침수ㆍ근저당 유무 등 이씨가 중요시하는 정보는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선택한 차량은 ‘완전 무사고’였다. 차량 실내외 상태는 20장에 가까운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운전석, 동승자석, 뒷좌석 가죽이나 핸들에서 별다른 사용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씨는 최적의 선택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씨는 당장 중고차 매매상(딜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이트를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매물은 아직 있나요?” 전화를 받은 딜러가 친절하게 답했다. “네, 해당 차량은 아직 판매가 안된, 실제 저희가 소유하고 있는 매물입니다. 지금 저희가 입주해 있는 강남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시면 차량을 직접 보시고 시승도 해볼 수 있습니다.” 이씨는 당장 아들과 함께 강남으로 향했다.

매매단지에 도착해 자신이 사이트에서 직접 고른 차량을 확인한 이씨는 새삼 놀랐다. 주행 거리, 차량 상태 모두 사이트에 올라온 그대로였다. 매매단지 인근에서 시승까지 해보고 ‘이 차로 해도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씨는 딜러에게 차량 대금과 취등록세를 지불한 뒤 곧바로 차량을 인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토록 어렵고 고민스럽던 중고차 매입 작업이 단 하루 만에 이뤄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죠. 중고차 매매단지에 말을 들이자마자 ‘무슨 차 보려 오셨냐’ ‘보고만 가라’는 호객에 시달렸고, 막상 업체에 발을 들여도 내가 원하는 기준에 맞는 차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제 풀에 지쳐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차를 골랐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 기준에 맞는 중고차를 이렇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니 너무 놀랍네요. 굳이 비싼 새 차를 살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SK엔카에서 제공하는 성능점검기록부 화면. SK엔카 홈페이지 캡처
SK엔카에서 제공하는 성능점검기록부 화면. SK엔카 홈페이지 캡처

◇내 차 판매도 직접, 간편하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고차 거래는 전국 각지의 오프라인 매매단지나 딜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차량 가격과 옵션, 사고 이력 등 각종 정보를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각종 온라인 차량거래 플랫폼(SK엔카, KB차차차, 첫차 등)들도 소비자 입장에선 반길 만한 일이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들의 경쟁 아래 중고차 구매가 점점 더 쉬워지고 중고차 매매의 신뢰도는 꾸준히 향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온라인 플랫폼은 중고차 구매 시장에서 판매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 ‘헤이 딜러’가 대표적이다. 이달 초 김정훈(32)씨는 자신이 타던 폭스바겐 골프 차량을 이 플랫폼을 통해 팔았다. 김씨는 지난 1일 자신이 1년가량 운행한 차량의 사진과 상세 정보를 헤이딜러에 등록했다. 등록한 순간부터 4일 동안 김씨 차량에 관심 있는 중고차 딜러들이 사고 싶은 가격을 제시했다. 일종의 경매 방식이다. 딜러들이 응찰할 때마다 김씨 휴대폰에는 알림이 울렸다. 입찰 마감 하루를 남기고 김씨 차량을 사고 싶다고 한 딜러는 총 10명. 김씨는 이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2,500만원)을 써낸 딜러를 낙점했다. 낙찰을 위해 필요한 일은 휴대폰 화면에서 ‘이 딜러에게 판매하기’를 터치하는 게 전부다.

5분 뒤 해당 딜러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차량을 보러 가도 되는지요?” 30분이 지나자 딜러가 김씨 집 앞에 당도했다. 김씨는 차량 사진을 꼼꼼하게 찍었고 차량 앞 범퍼 스크레치도 솔직하게 밝혔기 때문에 딜러가 제시한 가격에 차량을 팔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10분 정도 차량을 꼼꼼히 살펴본 딜러가 “올려주신 사진과 설명 외에 감가할 사항이 없네요. 제가 써낸 가격으로 매입해도 될 거 같습니다”며 매입을 결정했다. “1시간 뒤 차량을 가지고 갈 탁송업체가 올 겁니다. 계좌로 2,500만원 입금해 드릴 텐데 입금 내역을 확인하시고 차량을 보내시면 됩니다.” 김씨가 낙찰자를 정하고 차량을 넘기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차를 파는 동안 김씨가 들인 수고는 자신의 집 주차장에서 차량 사진을 찍어 올린 것과 딜러를 만난 것이 전부였다.

김씨의 말이다. “아무리 중고차라고 해도 천만원 단위가 오가는 거래를 하려면 직접 만나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량을 쉽고 간편하게 팔고 나니 이전에 중고차 매매단지를 오갔던 시절엔 어떻게 중고차를 팔았는지 상상이 안되네요. 쉽게 살 수 있는 만큼 쉽게 팔 수도 있으니, 차량을 사는 것도 덜 부담될 거 같습니다.”

김씨는 중고차를 판 돈에 모은 돈을 얹어 새로운 중고차를 살 계획이다. “이젠 구매 온라인 플랫폼에서 열심히 찾아봐야죠.”

KB차차차를 통해 쏘나타 중고 매물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차량 정보들. 특히 해당 차량 시세가 얼마나 적정한 지 알려주는 그래프가 눈에 띈다. KB차차차 홈페이지 캡처
KB차차차를 통해 쏘나타 중고 매물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차량 정보들. 특히 해당 차량 시세가 얼마나 적정한 지 알려주는 그래프가 눈에 띈다. KB차차차 홈페이지 캡처

◇“폭리 취했다간 퇴출” 변하는 딜러들

중고차 매매 시장이 소비자 본위로 진화하다 보니 중고차 딜러들의 영업 행태도 변할 수 밖에 없다. 종전의 중고차 매매 과정에선 딜러들이 사기와 협잡에 가까운 행태를 일삼으며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잖았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차량 판매자나 중개인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중고차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딜러 간 경쟁이 발생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윤을 조금 덜 남기더라도 ‘평판’을 우선시하는 영업 관행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에는 딜러가 차량을 판매한 횟수나 판매 과정에 대한 품평을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자동차 커뮤니티 사이트엔 사기성 판매를 하는 딜러에 대한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15년 동안 중고차 딜러를 해온 김웅선(52)씨는 업계 생존 전략이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중고차 딜러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좋은 상태의 중고차를 최대한 싸게 확보한 뒤 이윤을 붙여 최대한 비싸게 판매하는 거죠. 이런 방식을 탓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차를 사올 땐 최대한 ‘비싸게’, 차를 팔 땐 최대한 ‘싸게’ 하는 전략을 공공연히 선택합니다. 단기간에 마진을 크게 남기기보단, 중장기적으로 좋은 평판을 쌓아서 많은 손님이 찾아오게 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죠. 말 그대로 박리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전직 국내 자동차회사 영업사원 이기범(45)씨도 동조한다. “중고차 딜러들의 생존전략이 거의 신차 딜러들과 비슷해졌습니다. 신차 딜러들은 어차피 회사에서 정해준 가격에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또 다른 판매 기회를 얻는 것을 중시합니다.” 차량 보유 기간이 짧아지면서 중고차 매매가 활발해진 것도 중고차 딜러들의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 “고객 입장에선 예전에 거래했던 중고차 딜러가 맘에 들었다면 다시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 한 번의 폭리를 위해 미래의 고객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중고차 딜러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죠.”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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