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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성은 요리, 바느질 배워야” 주장에 “맹목적인 편견” 반박한 김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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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성은 요리, 바느질 배워야” 주장에 “맹목적인 편견” 반박한 김란사

입력
2019.03.01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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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사 남동생 손자 김용택씨

비난 기고문ㆍ반박문 첫 공개

“사학자 사이서도 역사적 논쟁”

[란7] [저작권 한국일보]여성독립운동가 김란사의 후손 김용택씨가 지난달 15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란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란7] [저작권 한국일보]여성독립운동가 김란사의 후손 김용택씨가 지난달 15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란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학당에 다니는 여성들은 요리, 바느질을 할 줄 모르며 시어머니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vs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거나, 맹목적인 편견에 휩싸여 있다.”

마치 인터넷 공간에 만연한 여성 비하와 이에 대한 반박 댓글처럼 보이지만 실은 108년 전 개화기의 논쟁이다. 개화파 정치인이자 교육자였던 윤치호(1865~1945년)가 1911년 7월 영문선교잡지 ‘더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에 ‘직업훈련을 위한 간청’(A Plea For Industrial Training)이라는 제목으로 학당에 다니는 신여성들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올린 게 발단이었다. 이에 이화학당 교사이자 유관순 열사의 스승이기도 한 여성독립운동가인 김란사(1872~1919년)가 4개월 뒤 같은 잡지 12월호에 ‘항의’(A Protest)라는 제목의 반박문을 올린 것이다. 김란사 남동생의 손자인 김용택(72)씨는 28일 한국일보에 두 기고문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파격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역사적 논쟁”이라고 소개했다.

독립협회 회장, 한성부 판윤(서울시장과 유사), 평양 대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윤치호는 기고문에서 신학교의 여성교육 방식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1910년 미국 방문 당시 목격한 미 공교육의 직업교육체계를 소개하며 “터스키기(Tuskegeeㆍ미 앨라배마주 도시명) 학교에서는 여성들에게 방을 빗질하는 간단한 기술부터 여성용 모자를 만드는 정교하고 복잡한 기술까지 가르친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내 신학교 여성 교육의 불만사항 6가지를 나열하면서 “여성들은 요리, 바느질, 빨래, 다림질을 할 줄 모른다”고 썼다. “경우에 따라 시어머니에게 순종적이지 않다”, “학당에 다니는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육체노동을 꺼려한다”는 표현도 덧붙였다. 윤치호는 “평균적인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들”이라며 한복 만들기, 설거지, 다림질, 요리, 자수, 뜨개질, 빗질, 먼지털기 등 12가지 교육과정을 제안한다.

김란사의 반박은 신랄했다. 그는 “(윤치호의 글을) 조심스럽게 정독해 보니 그가 슬프게도 정보를 잘못 알고 있거나 맹목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며 “학당 졸업생들이 요리할 줄 모른다고 해서 비난 받아서는 안 되며, 옷감 재단, 바느질, 빨래, 다림질을 모르는 것에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필자(윤치호)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요리와 바느질을 잘 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면서 여성 교육의 목적이 윤치호의 주장처럼 집안일 잘하는 가정주부, 고분고분한 며느리를 기르는데 있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학당 여성들은 육체 노동을 꺼려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무모한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예를 들어주기 바란다”고 쓴 소리를 했다.

김란사가 역사의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는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1897년 미 유학길에 올라, 1906년 미 웨슬리언대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은 지식인이다. 귀국 후에는 이화학당 교사로 일하며 학생자치단체인 ‘이문회’를 이끌었다. 제자 유관순 열사도 김란사의 권유로 이문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간 남편의 성을 따 하란사로 불렸지만, 후손 김용택씨의 노력으로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국가보훈처는 이름 변경 심사를 통해 지난해 2월 ‘김란사’로 표기된 건국훈장애족장 수여증명서를 발급했다. 이달 10일은 김란사가 순국한 지 100주년이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김란사의 글이 실린 영문선교잡지 '더 코리아 미션필드' 1911년 12월호. 이현주 기자
김란사의 글이 실린 영문선교잡지 '더 코리아 미션필드' 1911년 12월호. 이현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국가보훈처는 지난해 2월 남편의 이름을 따 하란사로 불렸던 김란사의 이름을 정정해 훈장수여증명서를 새로 발급했다. 서재훈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국가보훈처는 지난해 2월 남편의 이름을 따 하란사로 불렸던 김란사의 이름을 정정해 훈장수여증명서를 새로 발급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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