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미자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데뷔 60주년 기념 음반 및 신곡 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자(78).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남성은 남진과 나훈아, 여성은 이미자’라는 말은 공식과도 같다. 이미자는 트로트 장르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그의 ‘자연 창법’은 대중가요의 교본이다. 이미자가 발표한 노래만 약 3,000곡. 1964년 나온 그의 대표곡 ‘동백아가씨’가 담긴 음반은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수치인 25만장 이상이 팔리면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OST(영화 ‘동백아가씨’)로 이름나 있다. 지금도 ‘열아홉 순정’과 ‘여자의 일생’ 등 그의 히트곡들이 많은 후배 가수에게 리메이크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등장한 여성가수 중에서 가장 큰 거목”(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이라 평가받을 만하다.

이미자가 올해 데뷔 60주년을 맞는다. ‘열아홉 순정’을 부르며 국민에게 목소리를 알렸던 열여덟 소녀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미자는 2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6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 ‘노래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의 발표회를 열고 가수로서의 삶을 돌아봤다. 그는 “1960년대 초 ’동백아가씨’가 히트했을 당시에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 생각하니 노랫말이나 목소리가 그 시대와 맞았기 때문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우리 모든 부모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미자는 “언론을 통해 팬들과 만나는 날인데 앉아 있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다”며 40분간 이어진 발표회 내내 꼿꼿이 서 있었다. 트로트 한 장르만 고집했다는 자부심도 묻어났다. 1960년대에는 트로트가 하급 음악이라는 정서가 팽배했다. 일본 ‘엔카’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늘 따라다녔다. 이미자는 “트로트는 ’질 낮고 천박하다’ ‘술집 젓가락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며 “한때는 ‘발라드를 부를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잘 지탱해 온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60주년을 맞아 내놓은 신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의 가사에도 이런 생각이 녹아 있다. 그는 “(가사 중)’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함께 걸으며 동백꽃도 피고 지고 웃고 울었네’라는 말이 가장 와 닿는다”고 말했다.

60년 가수 생활에서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미자는 ‘동백아가씨’ 등 1960년대 발표됐던 3곡이 정부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됐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왜색이나 경제 발전에 저해된다는 이유였다. 이미자는 “35주간 KBS 음악차트에서 1위를 했던 곡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때, 목숨이 끊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며 “제3대 히트곡을 사랑해준 팬들이 금지곡 여부와 관계없이 한사코 불러줬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자의 삶은 한국 현대사와 결이 같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경제 고도성장기였다. 그 시절 그의 음악은 가부장제하에서 고통을 받던 여성의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미자의 노래는 거대한 ‘힐링’”이라며 “경제 성장의 뒤안길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여심을 달래주고 위로해줬다”고 밝혔다. 이미자는 1965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위문공연을 열었으며, 2002년에는 평양에서 국내 가수로는 최초로 단독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새 앨범은 CD 3장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CD에는 신곡 한 곡을 포함해 과거 사랑을 받아왔던 곡이 수록돼 있다. 이미자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CD는 세 번째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8년 발표된 ‘황성 옛터’, 해방 이후 혼란기였던 1948년에 나온 ‘잘 있거라, 단발령’ 등 트로트 원류라 할 수 있는 20곡이 수록됐다. 이미자는 “우리 가요의 뿌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다”며 “수십 년이 지나 제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뿌리가 남겨지길 원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가요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숨기지 않았다. 서구풍 음악이 가요 시장을 점령하면서, 창법의 질이 과거보다 떨어졌다는 진단이다. 이미자는 “가요의 뿌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선 노랫말을 전달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며 “최근 노래들은 가슴이 아프다고 부르는데, 가수는 슬픈 표정 하나 짓지 않고 있으며 발음도 부정확하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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