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팔아 탄핵 부정, 사면 들먹이는 한국당 대표 후보들
20일 서울 종로구 채널A 스튜디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대표 후보 TV토론회에서 오세훈ㆍ김진태ㆍ황교안 후보(왼쪽부터)가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를 조사하면 아마 ‘국민’일 거다. 창당할 때도 “국민이 주인 되는 정당을 만들겠다”, 공천 제도를 개혁할 때도 “국민께 공천권을 돌려드린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도 “국민의 뜻에 따라”, 이에 반대할 때 역시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오죽하면 ‘국민의당’이란 정당도 나왔겠나. 그래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가장 난감해 하는 경우가 국민 전체 여론은 찬성인데, 자기 지역구 주민이 반대하는 정책에 태도를 정해야 할 때다.

◇국민 때문에 판단 보류하는 오세훈

그 국민이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에 또 등장했다. 철 지난 ‘박근혜 탄핵’, 때 이른 ‘박근혜 사면’을 놓고서다. 후보들은 저마다 국민을 이유로 찬성하거나 반대한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당이 ‘탄핵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사면론이 자신들의 미래에 큰 변수가 되리라는 판단에서다. 문재인 정부가 힘이 빠지는 임기 후반 ‘국민대통합’을 이유로 사면론을 부각시켜 진보 진영을 흔들고, 중도ㆍ보수ㆍ극우층을 결집시킬 수 있을 거란 계산이다. 현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당권주자 가운데선 오세훈 후보가 사면에 가장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국민공감대가 형성되면 논의를 시작해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개혁보수를 지향한다면서도 전당대회 최대 표심이자 당락의 주요 변수인 대구ㆍ경북(TK) 당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중도층을 생각하면 사면 여부를 논하는 것조차 시기 상조지만, 당내 극우층은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원할 것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김진태 후보가 자신 있게 “석방이 아닌 무죄 사면”을 주장하는 배경에도 그의 ‘국민’인 ‘태극기 부대’가 있어서다.

◇국민 들어 태도 바꾼 황교안

가장 흥미로운 건 황교안 후보다. 그는 “사면에는 법률적 절차가 필요하지만 국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사면 결정이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체이탈 화법’이다. 그런데 그는 지난달 15일 입당 기자회견 때는 “사면은 형사법적 절차지만 정치적 측면도 있다”며 “국민 통합과 화합, 하나되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찬성 의사를 내비쳤다. 불과 한 달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그런데 이유는 모두 ‘국민’이었다. 그 역시 표심을 의식해서일 터다. 황 후보는 탄핵을 두고도 “부당했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결정은 존중하되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취지”라고 말해 오락가락 했다.

한국당 대표 후보들이 탄핵과 사면에 이런 태도를 취하자,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국민을 들어 비판했다.

◇국민이란 단어 뒤에 숨는 정치
고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하고 설득하는 정치인이었다. 사진은 임기 중반인 2005년 8월 25일 ‘국민과의 대화: 참여정부 2년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라는 특별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반기 국정운영 평가, 정치구조 개혁 등 후반기 역점과제를 놓고 패널과 토론을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정치인들이 국민을 생각해준다는데 나쁠 건 없다. 그런데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국민’으로 포장은 하지만 실은 이건 지지층의 다른 말 아닐까. 또 어떤 사안에 ‘국민의 뜻’을 근거로 대지만, 실은 자기 신념이나 판단, 철학이 없는 건 아닌가.

국민은 정치인의 가장 든든한 뒷배다. 그만큼 큰 힘이 없다. 그러니 입으로만 국민을 들먹일 게 아니다. 옳은 길이라면 때로는 국민을 상대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진짜 정치의 과정이다. 국민 뒤에 숨을 게 아니라 국민 앞에 나서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그런 위험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는 뚝심 있는 정치인이 갈수록 적어져 안타깝다.

“국가가 곧 국민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압축한 말이다. 노 전 대통령만큼 국민을 상대로 논쟁하고, 토론하고, 설득에 애썼던 대통령도 없었다. 그런 그를 국민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으니, 정치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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