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를 먹는 스발바르 순록. 극지연구소 제공

만화 ‘아기공룡 둘리’는 1억년 전 빙하에 갇혀 있던 둘리가 얼음 조각이 녹으면서 깨어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만화는 만화일 뿐, 과학적으로 보자면 극지 빙산 속에 공룡이 갇히고 대한민국 서울로 흘러와 다시 살아나는 일이 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극지역의 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공룡까진 아니더라도 과거에 있었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얼음에서 깨어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14년 프랑스와 러시아 연구자들은 3만년 전 시베리아 토양 시료에서 원시 바이러스를 되살렸다. 바이러스의 먹이가 되는 단세포 원생생물 아메바를 넣어줬더니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크기의 바이러스가 증식한 것이다. 인간이 아닌 아메바를 감염시키는 종이지만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 병원성을 띄는 바이러스가 방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여름, 북극 다산과학기지를 방문했을 때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는 해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게시판엔 “순록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경고가 붙어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순록을 감염시킨 탄저균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인체 감염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소개되었다. 필자는 순록 분변을 채집해 먹이구성을 분석하던 중이라 해당 게시물을 읽은 뒤로 배설물을 모을 때 주의를 기울였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2016년 시베리아 야말 반도에선 탄저균에 감염된 12세 소년이 죽고 20명 이상의 사람들이 격리되었다고 한다. 1941년 폐사한 순록 사체에서 나온 탄저균이 토양에 얼어 붙은 채 갇혀 있다가 표층이 녹으면서 드러났으며, 그 결과 2,000마리가 넘는 순록이 균에 감염됐고 사람에게까지 전파된 것이다.

2년 이상 0도 이하로 유지되는 토양을 ‘영구동토’라 정의하는데, 이는 북반구의 4분의 1, 지구의 17%에 달한다. 동토층엔 탄소로 이뤄진 식물과 동물 잔해물이 분해되지 않은 상태로 얼어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동토층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남극과 북극의 동토층을 정밀히 측정한 결과를 보면 평균 0.3도 증가했다고 한다.

시베리아 동토에서 깨어난 피토바이러스. 위키미디어 커먼스 캡처

동토가 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서 소개한 사례들처럼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수천 년 동안 휴면 상태에 있다가 조건이 맞으면 다시 깨어나 증식할 수 있다. 그리고 미생물이 활성화되면서 병원균이 인체를 감염시킬 가능성도 생긴다. 또 다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토양의 탄소 산화가 촉진돼 이산화탄소, 메탄 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온난화 가스는 동토가 녹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한다.

학자들은 과거 50만년 동안 지구의 기후 변화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면 동토가 빠르게 녹을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1880년 이후 이미 0.8도 이상 증가했으며, 이 같은 추세라면 2100년 까지 약 3~5도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늦었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조금이라도 온난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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