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메일 인터뷰… “7번째 그린 저지 입게되면 영광일 것”
이름만으로 전세계 로드 사이클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선수가 있다. 레인보우 저지가 어느 선수보다 잘 어울리는 ‘세계 최강의 스프린터’ 피터 사간(29ㆍ슬로바키아)이다.
프로 데뷔부터 특유의 파워에서 나오는 빠른 스피드로 주목 받았던 사간은 2015~17년 국제사이클연맹(UCI) 월드로드레이스챔피언십에서 사상 첫 3연패이자 최연소 3회 우승 기록을 세우며 일약 사이클계의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로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개인 통산 6번째 ‘그린 저지(스프린트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초록색 경기복)’를 획득하며 로드사이클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데뷔 10년 차 시즌을 맞은 사간은 21일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레이스에 참가할 때 10위를 목표로 두는 선수는 없다”며 “언제나 결승선을 통과하는 첫 번째 선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사간과의 일문일답.
-데뷔 10년 차다. 올 시즌 임하는 소감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모토는 ‘가장 즐길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였다. 수많은 대회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실패하기도 하고 결혼도 해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도 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또 선수로서 성장했지만 나는 프로 데뷔 첫 무대였던 2010년 투어 다운 언더의 출발선에 섰던 스무 살 때의 그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번 시즌도 여느 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매 대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난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개인 통산 6번째 그린 저지를 차지했다. 한 번만 더 그린 저지를 획득하면 독일의 에릭 자벨(48ㆍ은퇴)을 제치고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우게 되는데.
“투르 드 프랑스는 모든 선수와 팀, 스폰서의 꿈이 한 자리에 모이는 가장 중요한 대회다. 최고의 스프린터에게 주어지는 그린 저지도 그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린 저지는 매 시즌 나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다. 작년 대회에서는 낙차 사고로 레이스를 포기해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지만 괜찮다며 동료들을 속이고 완주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막판 스테이지 4개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 때문에 내 커리어에서 가장 힘들었던 경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투르 드 프랑스는 그만큼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할 가치가 있는 대회다. 올해 7월 샹젤리제의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7번째 그린 저지를 입게 되면 무척이나 영광일 것이다.”
-지난달 시즌 개막전인 투어 다운 언더 스테이지3에서 올해 첫 승리를 따냈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아직 초반이지만 투어 다운 언더와 부엘타 산 후안 대회에서 좋은 경기를 펼친 것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시즌은 10월까지 계속된다. 본격적인 시즌에 앞서 점점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3월부터 시작되는 투어 오브 플랜다스와 파리-루베 등 클래식 레이스 우승을 목표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17세 때 2007년 슬로바키안 컵에서 누나의 바구니 달린 신문 배달용 자전거를 타고 우승을 차지한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스폰서로부터 새 자전거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배송에 문제가 생겨 대회 전에 받을 수 없게 됐다. 급하게 알아봤지만 슬로바키아의 작은 도시에서 대회용 자전거를 구하는 건 쉽지 않다. 처음엔 형 유라이에게 빌리려고 했지만 그도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고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누나가 타던 자전거로 대회에 나갔다. 비록 최고의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내가 우승하기엔 충분했다.”
-대회 결승선 앞에서 윌리(자전거 앞바퀴를 공중에 띄우고 뒷바퀴로만 주행하는 방식)를 자주 선보인다.
“수많은 팬들이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조금이라도 보려고 도로변에서 수 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펠로톤(로드 레이스 중 선수들의 무리)은 단 몇 초 만에 지나가 버린다. 나는 프로 사이클 선수라면 관중을 기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팬들이 행복할 때 나 또한 기쁘다. 우리는 팬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한국에도 당신의 팬들이 많다. 2013년에는 방한해 팬들을 만난 적도 있는데.
“한국에도 내 팬들이 많다니 굉장히 기쁘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로드사이클 선수와 스폰서, 프로팀이 나왔으면 좋겠다. 언젠가 내가 시상대에서 한국인 선수의 월드 사이클 챔피언 등극을 축하하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날도 오지 않을까.”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로 불리며 로드 사이클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 가고 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난 단 한 번도 내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 없다. 최고의 스프린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경기를 즐길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았나. 어떤 수식어도 원하지 않는다. 그냥 내 이름, ‘피터 사간’으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