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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병재의 ‘짤방’이 현실이 될 때

입력
2019.02.2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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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시즌만 되면 유행하는 ‘짤’(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웃기는 사진. 짤림 방지 사진을 뜻하는 신조어)이 있다. 방송인 유병재가 한 TV 콩트에서 유행시킨, 이른바 ‘유병재 짤’이다.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 온 그에게 면접관은 경력을 요구하는데, 이때 비속어와 함께 울분을 토해내는 발언이 압권이다. “아니, 무슨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어? 난 어디서 쌓나? 내 말이 틀려? 이 XX들아?” 면접 진행요원들에게 끌려나가는 도중에도 사자후를 토해내는 모습. 이를 본 청춘들의 댓글은 “ㅋㅋㅋㅋ”가 절반, “ㅜㅜㅜㅜ”가 절반이었다. 보는 동안은 배꼽 잡게 웃기지만, 다 보고 나면 눈물 나는 현실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대략 3월 즈음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 짤이 올해에는 조금 이르게 등장했다. 그리고 예년과 달리 충격과 분노의 댓글이 꽤 늘어났다. 모 대기업에서 발표한 ‘신입 공채 폐지, 상시채용으로 전환 결정’ 뉴스의 파급력이다. 대기업 공채의 이른바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기업의 변화. 가장 큰 우려는 채용 규모가 줄지 않겠냐는 점이다. 해당 기업은 기존 채용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지만, 문제는 도미노 현상이다. 변화의 포문을 열어준 대기업이 나타났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중견 이하 기업이 채용 모수를 줄이는 데 숨통이 트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결국 해당 기업의 채용인원은 당장 줄지 않겠지만,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존재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채용 권한의 이양이다. 상시 채용은 현업에서 채용을 주도하고, 인사 분야는 이를 보조하는 방식이 많다. 이 경우 즉시 배치 가능한 인재에 대한 필요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2~3년 이하의 경력을 보유한 경력직이 해당 채용에 지원할 여지가 높고, 신입 채용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전에도 타 기업에 재직 중인 주니어들이 대졸 공채에 지원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룹 차원의 공채일 경우 면접자 입장에서 이 지원자가 우리 부서로 올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비교적 타 지원자와 동일 선상에서 판단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변화에 대해 무조건 기업이 비판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이미 서구권에서는 일반화한 형태이고, 외부로는 시장 상황, 내부로는 인력 활용 방식이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양상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채용이 일반화한다면, 대학도 학생 때 미리 직무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교육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다. 비록 대학이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는 오래지만, 이것이 표면화, 본격화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실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했던 변화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만나는 청춘들은 지금도 충분히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한 명이라도 더 이런 사태를 겪지 않고 사회인이 되었으면 싶어서, 개인적으로는 최대한 늦춰질 수 있기를 바랐던 변화이기도 하다. 결국 오고야만 이날을 마주하며, 내담자 청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토록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기성세대는 여전히 그들에게 힘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우리도 꽤 취업이 힘들었기에 네 마음 안다는 말이 공감을 얻을까. 지금껏 바늘구멍이라도 뚫는 누군가가 심심찮게 있었던 것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든, 언제 그 구멍이 열리는지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점점 더 좁아지는 구멍 크기, 심지어 어디에 바늘이 있는지, 언제 나타날지조차 알 수 없어지는 시대. 내년, 내후년에도 유병재의 짤방은 올라오겠지만, ‘웃픈(웃기고 슬픈)’ 사진이 아니라, 그냥 슬픈 사진이 되어가진 않을까? 그게 걱정이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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