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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SNS에 없는 안뻔한 얘기, 천천히 두고두고 읽고 싶어

입력
2019.02.20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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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독립 매거진들. 류효진 기자
각양각색의 독립 매거진들. 류효진 기자

미용실, 지하철 등 곳곳에서 심심한 시간을 때워주던 잡지들은 하나 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잡다한 최신 정보를 전해주던 그 역할은 이제 스마트폰과 SNS가 대체했다. 그렇게 ‘종이매체의 위기’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못해 진부해진 지금, 한 구석에서는 반대로 꾸준히 구독자를 늘리고 있는 종이 잡지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금방 읽고 버리던 기존의 잡지들과 달리 최대한 천천히, 두고두고 읽고 싶은 잡지들이다. 흔한 광고나 부록 사은품도 없다. ‘독립 잡지’라 불리는 이들은 어떻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우리의 민낯을 다룬다 

“화려하고 허황된 내용보다는 조금 더 일상에 가까운 내용을 다루니 그 자체로 흥미로워요.” 독립잡지를 즐겨 읽는다는 송미정(32)씨가 꼽는 독립잡지의 매력이다. 독립잡지는 넓게 해석하면 ‘광고나 기업 등에 의존하지 않는 잡지’다. 소규모의 인력으로 적은 부수를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량 판매를 통한 광고 수주가 주요 수입원이었던 기존 대형 잡지들과 달리, 이들의 주요 수입원은 독자들의 구독료다. 광고주 대신 소수의 마니아 층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 편집진이 관심을 가지는 작은 주제, 가치가 통용될 수 있는 환경이다.

2011년 창간해 지금은 국내 독립잡지계의 맏형 격인 ‘매거진B’도 8년간 광고 없이 버텨오고 있다. 매호당 기본 유통 부수가 2만부 정도다. 인기 요인은 한 호마다 하나의 브랜드를 선정, 소비자의 시각에서 그 브랜드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경험을 나누며 애착을 갖게 되기까지의 흐름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독립잡지다 보니 ‘광고냐, 협찬이냐’는 의심과 전혀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의 속 깊은 얘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박은성 매거진B 편집장은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잡지들은 그 콘텐츠가 광고인지, 아니면 진짜 모습인지에 대한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며 “저희는 하나의 브랜드를 둘러싼 진실한 이야기들에 더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제작진이 담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콘텐츠만으로도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독립 잡지 유행을 타고 ‘잡지 전문’을 내건 서점도 생겼다. 사진은 다양한 독립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는 서울 통의동 ‘부쿠m’. 정준기기자
독립 잡지 유행을 타고 ‘잡지 전문’을 내건 서점도 생겼다. 사진은 다양한 독립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는 서울 통의동 ‘부쿠m’. 정준기기자

 ◇가치, 취미 … 공감 이끌어내는 독립잡지 

이런 분위기 아래 독립잡지는 자연스레 전문지가 된다. 부쿠m, 스토리지북앤필름, 헬로 인디북스 같은, 이름만 들어도 톡톡 튀는 독립서점을 찾으면 다양한 취향만큼이나 다양한 독립 잡지를 만날 수 있다.

우선 ‘가치’를 담은 잡지들이 있다. ‘쓰레기 없는 삶’을 추구하는 잡지 ‘쓸’은 펼치는 순간부터 덮을 때까지 친환경 카페, 일상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법, 일회용 컵 규제 이슈 같은 환경과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눈으로 문화를 읽어내는 ‘우먼카인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를 고민하는 ‘볼드저널’, 플러스 사이즈 패션 잡지 ‘66100’, 비(非)연애인구를 위한 잡학서 ‘계간홀로’ 등은 자기만의 가치, 자기만의 고민에 집중한다.

‘취미’를 전문가 수준으로 깊이 있게 파는 잡지들도 많다. 영화잡지 ‘프리즘오브’는 매 호마다 하나의 영화만을 선정해 다각도로 분석한다. 이를테면 ‘라라랜드’ 한편을 두고 누구는 영화 플롯ㆍ기법에 대해 분석하고 재즈 전문가는 음악에 대해 평가하는 방식이다. ‘덕후’를 위한 잡지 ‘The Kooh’, 현대문화에 대한 성찰을 담는 사진 잡지 ‘보스토크’, 건축 전문가와 셀프 인테리어 입문자 모두를 위한 건축 재료 잡지 ‘감’ 역시 취미라고 부르기엔 깊은 전문적 지식을 다루는 잡지들이다.

이 밖에도 재건축으로 사라진 둔촌주공아파트의 모습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철학 담론들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뉴 필로소퍼’ 등 수없이 많은 잡지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의성 대신 참신함과 깊이를 택했다는 점. 부쿠m에서 독립 잡지를 처음 접했다는 장수연(34)씨 역시 “여행에 관심이 많은데 블로그나 sns에는 없는, 뻔하지 않은 내용들이 많았다”며 “앞으로도 자주 찾아 읽을 것 같다”고 구입한 잡지들을 꺼내 보였다.

 ◇취향의 공동체, 독립잡지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지만 종이 잡지가 어려운 것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독립잡지를 만들겠다며 뛰어든 이들은 어떤 생각인걸까. ‘우먼카인드’, ‘뉴필로소퍼’, ‘스켑틱’ 등 독립잡지들을 펴내고 있는 ‘바다출판사’의 김인호 대표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세계관이 점점 개인화되면서 동시에 그걸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전파하려는 움직임도 생길 것”이라며 “잡지 역시 그런 움직임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관점을 지닌 잡지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정보량과 속도에서는 인터넷을 따라갈 수 없다”며 “이제 그 양과 속도를 따라가기보다 관점을 분명히 하며 사람들을 모으는 자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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