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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과학] ‘설탕과 전쟁’ 선포했지만… 당은 건강에 필수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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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과학] ‘설탕과 전쟁’ 선포했지만… 당은 건강에 필수 요소

입력
2019.02.09 13: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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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롭지 않은 단맛은 없을까… 액상과당ㆍ요리당ㆍ올리고당 등 다양한 개발품 나와 

정부가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3년이 돼간다. 식품업계와 과학자들은 설탕 맛을 살리면서 건강도 지킬 수 있는 ‘몸에 해롭지 않은 단맛’을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덕분에 액상과당부터 자일리톨, 말티톨, 요리당, 올리고당, 타가토스, 알룰로스 등 다양한 단맛 제품들이 나왔다. 기술이 발달하고 소비자들의 요구가 변하면서 실험실에나 있던 복잡한 당 이름들이 제품 포장지에 속속 등장하게 됐다.

단맛도 유행을 탄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단맛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대세’였던 단맛이 금세 시장에서 맥을 못 추기도 한다. 무작정 유행을 좇기보다 얼마나 단지, 어떨 때 쓰는 게 좋은지를 따져보고 쓰는 게 중요하다.

 ◇물엿과 설탕, 꿀의 정체 

가정에서 요리할 때 가장 흔히 쓰는 단맛 제품으로 물엿을 빼놓을 수 없다. 멸치 볶을 때 물엿 하나로 단맛을 내면서 점도와 광택까지 연출한다. 물엿의 단맛을 내는 당은 말토스다. 옛날 사람들이 전분과 보리씨를 섞어 물엿을 만들었기 때문에 맥아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말토스는 단맛을 내는 물질인 당류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포도당(단당류)이 2개 결합된 이당류다.

요즘은 포도당이 수백만개 연결된 전분을 원료로 물엿을 만든다. 당과 당 사이의 결합을 끊는 효소를 전분에 처리하면 말토스를 얻을 수 있다. 결합을 듬성듬성 끊으면 포도당이 여러 개 연결된 덱스트린이 되고, 잘게 끊으면 말토스가 된다. 전분이 길게 잘릴수록, 다시 말해 연결된 포도당의 개수가 많을수록 덜 달지만 맛이 농후하고 점도가 높다. 말토스보다 길게 잘린 덱스트린이 가정보다 제과공장에서 많이 쓰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덱스트린의 단맛은 반찬 만들 때 쓰기엔 약하지만, 풍성하고 농후한 느낌을 낸다.

포도당은 정식 명칭은 글루코스다. 포도에 많이 들어 있어서 포도당이라고 흔히 불린다. 포도당은 인체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과학자들은 그래서 인류가 포도당을 단맛으로 느껴 계속 찾게 되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자연에는 포도당과 닮은꼴 단당류가 있다. 과일에 많이 들어 있어 과당이라고 불리는 프럭토스다. 설탕(자당, 수크로스)이 바로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한 이당류다. 벌은 꽃에서 뽑아낸 자당을 자기 몸에 있는 효소로 다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꿀이다. 과당의 단맛이 설탕보다 강하기 때문에 꿀은 설탕물보다 더 달게 느껴진다.

먼 옛날엔 설탕이 비싸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부족한 설탕을 대신하는 단맛을 흔한 옥수수 전분에서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옥수수 전분에 효소를 반응시키면 포도당으로 분해되고, 그 중 일부가 과당 구조로 변형돼 액상과당이 만들어진다. 포도당과 과당이 대략 절반씩 섞인 액상과당은 설탕과 비슷한 단맛을 낸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삼양그룹 식품 연구소인 삼양디스커버리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액상 당류 제품을 컵에 따라 보이고 있다. 고영권 기자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삼양그룹 식품 연구소인 삼양디스커버리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액상 당류 제품을 컵에 따라 보이고 있다. 고영권 기자
다양한 가루 형태 당류와 이를 이용해 만드는 단맛 음식들. 고영권 기자
다양한 가루 형태 당류와 이를 이용해 만드는 단맛 음식들. 고영권 기자

 ◇요리당에서 올리고당으로 

물엿을 넣어 멸치를 볶아놓고 나면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점도가 너무 높아져 멸치들이 서로 달라붙는 바람에 먹기가 사납다. 그래서 식품업체들은 벌의 능력을 본떠 설탕을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한 다음 시럽 형태로 만들었다. 이렇게 나온 게 이른바 ‘요리당’이다. 과당 함량이 높아져 물엿보다 단맛이 강하지만, 덩치가 작아진 만큼 점도는 떨어진다. 묽으면서 더 단 요리당과 점도가 높은 대신 덜 단 물엿 중에서 뭘 쓸지는 소비자의 선호에 달려 있다.

요리당으로 물엿을 대체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올리고당 제품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올리고’는 단당류가 2~10개 연결돼 있는 형태를 뜻한다. 요리당의 단맛 성분보다 당이 더 많이 결합돼 있기 때문에 덜 달다. 단맛과 점도 모두 물엿과 요리당의 중간 정도다. 사람의 장에 사는 유익한 균에게 일부 올리고당이 좋은 먹이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단맛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해온 식품업계로선 올리고당을 계기로 ‘몸에 좋은 단맛’을 내세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정부까지 나서서 당류 저감 정책을 펴고 있지만, 사실 설탕을 비롯한 당류가 모두 몸에 나쁜 건 아니다. 지나치게 많이 먹는 걸 경계해야할 뿐, 당류 섭취 자체를 피할 필요는 없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당 역시 건강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가지각색 능력자 당알코올 

원하는 만큼의 단맛을 내면서 다른 장점도 있는 당류는 어디 없을까. 식품업계의 이런 고민 끝에 등장한 게 당알코올이다. 당알코올은 기존 당류의 특정 부위에 수소가 첨가된 구조다. 말토스에 수소를 추가하면 당알코올인 말티톨이 되고, 자일로스에 수소를 가하면 자일리톨이 되는 식이다.

당알코올은 기존 당류에 없는 장점들이 있다. 일반 당류에 열이나 산을 가하면 색깔이 변하는데(갈변), 당알코올은 갈변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탕처럼 투명하거나 깨끗하게 보이는 제품을 만들 때 당 대신 당알코올을 쓴다. 말티톨의 단맛은 설탕보다 훨씬 깔끔해 입 안에 오래 남지 않는다. 자일리톨은 녹으면서 열을 빼앗는다. 말티톨이나 자일리톨로 만든 사탕을 먹을 때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포도당에 수소를 첨가해 만드는 소비톨은 치약에 사용된다. 물과 유독 친해 쉽게 굳지 않고 촉촉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원인 단당류가 당알코올로 구조가 바뀌면 몸이 인식하지 못해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못한다. 당알코올을 섭취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열량이 단당류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는 이유다. 이를 이용해 식품업계는 저칼로리 콘셉트의 식품을 만들 때 당알코올을 활용해왔다. 자일리톨이나 말티톨 사탕, 껌 같은 제품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당알코올을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생긴다. 물을 끌어들이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소화기관에서 충분히 흡수되지 않은 당알코올이 대장으로 내려가 농도가 높아지면 대장 안으로 물이 들어온다. 설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당알코올 제품 중에는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일시적으로 설사가 생길 수 있다는 문구가 포장에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당알코올은 자연에 존재한다. 하지만 식품에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적어 대부분의 업체들은 당알코올을 화학공법으로 생산했다. 소비자들은 더 천연에 가까운 당을 원했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삼양그룹의 식품 연구소인 삼양디스커버리센터에서 연구원들이 당을 만들어내는 발효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경기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삼양그룹의 식품 연구소인 삼양디스커버리센터에서 연구원들이 당을 만들어내는 발효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액상과 분말 형태의 여러 가지 당류. 고영권 기자
액상과 분말 형태의 여러 가지 당류. 고영권 기자

 ◇희소당의 새 얼굴, 알룰로스 

자연에 가장 많은 당류는 포도당이다. 그 다음으로 과당, 자일로스, 아라비노스, 만노스 순서다. 이들 5가지 당은 과일이나 풀, 나무껍질 등에 많다. 동물의 젖이나 해조류에는 갈락토스, 생물의 체내에는 리보스가 풍부하다. 이들 7가지 당을 제외하면 자연에 존재하는 나머지 당은 극히 적어 희소당으로 분류된다. 최근 식품업계는 희소당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제품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희소당이 타가토스다. 과당의 일부 구조만 바뀐 타가토스는 설탕과 단맛이 비슷하면서도 열량이 낮다. 하지만 과당을 타가토스로 바꿀 수 있는 효소가 자연에 드물다. 그래서 일부 식품업체들이 타가토스와 구조가 비슷한 갈락토스를 가져다 타가토스로 변형해 제품으로 내놓았다. 갈락토스는 자연에서 단독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포도당과 결합한 유당(락토스) 형태로 존재한다. 유당은 가격이 들쑥날쑥하다. 해조류에도 갈락토스가 있지만, 정제가 어렵다. 결국 생산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타가토스는 시장에서 입지가 점점 좁아졌다. 식품업체들은 지금도 타가토스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뒤이어 등장한 희소당이 알룰로스다. 건포도와 무화과에 들어 있는 단맛 성분이다. 설탕보다 약간 덜 달지만 열량이 0에 가깝다. 몸이 에너지원으로 인식하지 않아 섭취 후 24시간 안에 배출된다. 단맛을 즐기면서도 과열량 걱정을 털어낼 수 있다. 알룰로스 역시 타가토스처럼 과당의 일부 구조가 바뀐 당이다. 과당을 알룰로스로 바꾸는 효소는 최근 기술의 발달로 자연에서 얻을 수 있게 됐다. 박성원 삼양사 신소재팀장은 “알룰로스를 만들 수 있는 효소를 식용 가능한 미생물에서 찾아내 독자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며 “다양한 액상 알룰로스를 출시했고, 내년에는 결정 형태 제품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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