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자연스러운 문장이지만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면 왜 삶이 오늘부터 시작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요.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점괘엔/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 심정적 비유로 읽는다면 문장의 표면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지요. 물론, 달력사용자들에게는 ‘어찌 되었든 삶은 늘 오늘부터’라는 시각이 가장 안정적인 해석일 텐데요.

오늘의 운세는 미래가 점 치는 과거지요. “잎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은 추상의 영역이지만,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은 ‘2168년 7월 5일 7분 26초간 계속되는 개기일식’ 예측처럼, 정확성의 영역이기도 하지요. 운명의 자리에서 보면,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물고 온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는 “너의 처음”으로 가는 방향인 것이지요.

오늘부터와 어제까지. 오늘부터는 ~까지를 포함하고 있지 않고, 어제까지는 ~부터를 포함하고 있지 않지요. 그래서 오늘부터, 오늘부터, 이 반복은 새로운 시간에는 새로운 관점, 이런 주문(呪文)으로 치환해보는 것도 가능하지요.

눈물 흘리는 솜털들, 투명한 가재알들, 이런 섬세함이 깃든 오늘의 운세를 원한다면,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이 뫼비우스 주문부터. 마지막날인 듯 보여도 새로운 주기를 품고 있는 마야 달력처럼, 오늘부터 방점은 오늘보다는 부터에. 시작은 각자의 부터에서.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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