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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씨 어머니 “사람이 죽어야만 운영되는 기업은 왜 존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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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씨 어머니 “사람이 죽어야만 운영되는 기업은 왜 존재하나”

입력
2019.02.02 19:52
수정
2019.02.0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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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씨는 설 연휴가 시작된 2일에도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아들 김용균씨의 빈소를 지켰다. 홍인택 기자
김미숙씨는 설 연휴가 시작된 2일에도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아들 김용균씨의 빈소를 지켰다. 홍인택 기자

아들이 떠난 지 벌써 55일이 지났다. 어머니는 “설 전에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상경했지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장례 없이 맞았던 아들의 49재(齋)에서 어머니는 “49재는 이승과 작별하고 저승으로 가는 날이라고 들었는데,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냉동고에 둬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비참하다”며 “아직도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까지 무엇 하나 이룬 게 없다”고 한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아들 김용균(당시 24세)씨를 잃은 어머니 김미숙씨 이야기다.

“24살,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아들이었다. 아직 다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였다.” 49재 때 김씨는 아들을 이렇게 불렀다. 쳐다보기에도 아까웠던, 꽃봉오리 같던 아들은 꽃잎을 채 펼치기도 전에 세상과 이별했다.

김용균씨는 지난해 12월 11일 오전 3시 23분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9,10호기 환승타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환승타워는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발견 전날 오후 10시 36분쯤 어두운 환승타워 내부를 점검하는 모습이 김용균씨가 남긴 마지막 행적이다.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 전날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 속 김용균씨는 허리를 굽혀가며 작동하는 기계에 머리를 넣고 고장 여부를 점검했다. 지급받은 헤드랜턴은 없었고 사비로 마련한 손전등까지 고장이 나 의존할 수 있던 것은 휴대폰 불빛뿐. 사고 다음날 현장을 찾은 어머니 김씨는 “어딜 가나 위험하고 안전장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보기에 아들 같은 비정규직의 목숨을 앗아가는 환경은 어두컴컴한 발전소 환승타워가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위험이 외주화된 산업현장 속 모든 비정규직을 위해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슬픔을 가슴에 품은 어머니는 국회로, 광화문으로 나가서 아들의 죽음이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고 외쳤다.

김씨를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용균씨 빈소에서 만났다.

 ◇“비정규직, 사람이 아닌 노예 취급” 

 

 -사고 현장은 어떤 환경이었나요. 

“제가 처음 (아들이 사망한) 현장을 본 것은 아들이 죽은 다음날이었어요. 아들이 전에 저에게 (발전소 설비가) 아파트 15층 높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엄청 거대한 건물이에요. 그런데 이게 올라가는 길부터 위험해요. 진입로 경사가 수직에 가까워서 떨어질 위험이 있어요. 그리고 건물에 올라가서도 밑으로 떨어질 수 있는 낭떠러지가 너무 많아요. 그냥 총체적 난국이에요. 현장에는 석탄 가루가 너무 많이 날리고 바닥에도 쌓여있어요. 시야가 흐리고 넘어지기 쉬운데 (컨베이어벨트에) 끼면 딸려가서 죽을 수밖에 없어요. 1970년대에 있을 법한 환경이 21세기에 그대로 있다고 봅니다.”

 -그런 위험한 환경에서 일 한 거군요. 

“우리 아들이 점검한 9,10호기는 컨베이어벨트가 밖으로 직접 노출되어있지 않아요. 점검을 하려면 기계 뚜껑을 열고 허리를 구부려서 볼 수밖에 없어요. 그 안에서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력도 세고 속도도 빠른데 그 안에는 불빛이 없어요. 동료들 말을 들으면 돌아가는 회전체가 많기 때문에 이상을 점검하려면 밝은 불빛을 비추고 귀를 대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지를 확인해야 한대요. 시끄럽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이상 신호를 확인해야 하니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거죠.”

김용균씨는 컨베이어벨트가 교차하는 '환승타워'를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점검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김용균씨는 컨베이어벨트가 교차하는 '환승타워'를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점검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김용균씨는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작업하고 있어요. 

“용균이가 지급 받은 헤드랜턴은 없었고, 사비로 마련한 손전등도 고장 나 동료들에게 빌려서 썼다고 해요. 매일 빌리기에는 미안했는지, 다른 손전등이 없었는지 그날은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작업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규칙상 기계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원청업체에 보고해야 한다는 거에요. 불법파견이죠. 분진 때문에 가까이 찍어야 하고 소리도 들어야 하니 몸을 기계 가까이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런 작업 환경을 밝게 해달라는 요청들도 있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동료들이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28번을 요구했대요. 그런데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대요. 조명을 설치하는 작은 것도 바뀌지 않은 거예요. 원청에서 ‘우리는 그런 (환경 개선) 비용을 따로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줄 입장도 아니다’는 답변을 들은 동료도 있대요. 비정규직들이 ‘여기는 사람이 죽을 수 있는 환경이다’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바뀔 수 없는 현실인 거죠. 여태껏 이런 식으로 서부발전에서만 8년간 12명이 죽었대요. 이건 사람 취급이 아니고 노예 취급, 물건 취급 아닌가요.”

작업장에서 나온 김용균씨의 유품은 사비로 산 손전등과 건전지, 부족한 식사 시간 탓에 늘 끼고 살던 컵라면과 과자, 작업복 등이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작업장에서 나온 김용균씨의 유품은 사비로 산 손전등과 건전지, 부족한 식사 시간 탓에 늘 끼고 살던 컵라면과 과자, 작업복 등이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활동가’가 된 김용균씨 어머니 

 

 -어제(1일)는 서울역에서 시민들에게 김용균씨 사연을 알렸다고 들었습니다. 

“어제 다니면서 시민들을 상대로 ‘우리 용균이 아세요’하면서 묻고 말을 걸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용균이가 누구에요?’ 물으면 ‘비정규직인 아들이었는데 사회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라고 알려주면서 직접 만든 신문을 전달했어요. ‘한 번만 읽어주세요’라고 말하며 나눠주다 보면 먼저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도 있었어요.”

 -빈소를 태안에서 서울로 옮긴 것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기 위한 선택이었나요. 

“우리가 원하는 건 세 가지에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그런데 아무것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니, ‘멀리서 이야기하니 대통령이 더 안 들어주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전에는 지방에서 3시간 가까이를 승용차를 타고 올라와 투쟁을 진행했어요.”

 -55일간 투쟁하며 느꼈던 부조리는 무엇인가요. 

“지역의 고용노동청 등 기관은 우리 말을 말 그대로 듣기만 했어요.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어요. 처음 용균이가 죽고 대전고용노동청(대전청)과 보령지청을 수 차례 오고 갔어요. 대전청에 가면 보령지청에 가서 이야기하라 하고, 보령지청에 가면 ‘우리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지 어쩔 수 없다’며 대전청에 가라고 했어요. 이런 공공기관의 모습에서 나라 전체의 모습을 확인한 것 같아요.”

 -‘우리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듣고 돌아온 거네요. 

“용균이가 죽기 전에 (태안화력본부에) 안전 검사를 진행했는데 다 합격이 나왔대요, 그런데 아들이 죽고 나서는 문제가 1,029건이나 발견됐다는 거에요. 관련 기관이 그동안 현장에 가보지도 않았던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됐어요.”

 -투쟁을 통해 바꾸고 싶은 현실은 무엇인가요. 

“산재로 죽는 사람이 하루에 6,7명이라고 해요. 1년이면 2,400명이 죽는 재난인 거에요. IMF 이후 20년 넘게 지나면서 수만명이 죽었을 거예요. 이 정도면 참사 아닌가요? 이들은 안전한 환경만 갖추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도 기업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고 말해온 정부들은 국민을 우롱하는 거예요. 그건 기업만 살 수 있는 나라고 서민은 가면 갈수록 죽어나가는 나라에요. 정부는 산 사람도 지켜주지 못하면서 왜 애를 낳으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을 죽이면서 운영되는 기업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앞으로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하며 다닐 겁니다.”

 -지난해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어떻게 보시나요?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되고서 태안에 내려갔더니 용균이 동료들이 고개를 못 들어요.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조항이 들어갔는데 정작 용균이와 용균이 동료들이 일하는 발전 분야는 빠진 거예요. 또 사용자 책임으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한 최소 처벌 규정, 예를 들어 책임이 있는 사업주는 최소 징역 4년에 처한다거나, 그런 조항이 빠졌어요. 저는 앞으로 이런 부분들을 고치기 위해서 계속 투쟁할 생각입니다.”

지난달 22일 오전 충남 태안군 태안장례식장 상례원에서 고 김용균씨의 시신을 서울로 옮기는 과정을 지켜보던 김씨의 부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오전 충남 태안군 태안장례식장 상례원에서 고 김용균씨의 시신을 서울로 옮기는 과정을 지켜보던 김씨의 부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청년들에게…”다 같이 맞서 싸워야 한다” 

 -고통받는 비정규직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요. 

“우리나라가 이런 실태라는 걸 청년들이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 같이 맞서 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더 구렁텅이로 들어갈 거예요. 청년들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나라 비정규직 전체가 위험에 놓인 거고. 또 그들이 낳은 자식은 다시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높아요. 그런 이유에서 끝까지 싸워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활동을 하면서 힘겨운 청년들에게 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한 청년은 자기는 매일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는 데 자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줄 장치가 ‘나일론 끈’으로 돼 있다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아찔했어요. 그리고 군 제대 후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청년은 ‘현장에서 나는 유기견처럼 버려진 존재 같다’고 말했어요.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일을 시킬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김용균씨는 생전에 일하는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 없었나요. 

“처음에 공공기업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고 해서 당연히 좋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안전교육을 받았다고도 했고. 그래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니까 점검하러 다닌대요. 구역이 넓다는 이야기는 했고요. 취업한 지 한 달 반이 지나서 ‘힘들지는 않으냐’ 물으니 힘들대요. 그런데도 용균이는 ‘내가 원래 한전에 취업하려고 했으니까 여기서 경력을 쌓고 참는 데까지 참아보겠다’고 했어요.”

 -아들에게 ‘늘 열심히 하라’고 가르친 게 후회된다고 밝히신 적이 있어요. 

“용균이가 학교에 다니면서도 계속 공부 열심히 하라고 가르쳤어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해도 특별히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비정규직이 많이 돼요.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그래서 인간 취급받지 못하고 죽게 돼요. 애가 현장에서 일하는 CCTV 영상을 보고 저랑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한 달에 하루만 쉬어가면서 하루 12시간씩 공단에서 일을 하면서 용균이를 키웠어요. 우리 아들이 열심히 일만 하다가 죽었구나.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비정규직들을 위해서 쟁취해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직접고용이죠. 발전 5사에서 일하는 아들과 같은 비정규직이 제대로 정규직화가 될 수 있도록 싸워나갈 겁니다. 정직원이 되면 ‘내가 위험하다’ 싶은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의견을 낼 수도 있고 거부해도 해고당할 위험이 적잖아요. 반대로 비정규직은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런 문제 제기도 못하는 현실이죠. 이걸 바꾸고 싶어요.”

어머니 김씨는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혹시 정규직인가” 물었다. 그는 ‘비정규직이 노력 없이 정규직이 되려고 한다’는 기사 댓글을 많이 본다며 “IMF 사태 이전에 비정규직과 정규직 구분이 없을 땐 모두 잘 살지 않았냐”고 말했다. “정규직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너무 나쁘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꽃봉오리 같던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각자도생에서 상생의 사회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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